추석 연휴를 앞둔 1일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과일가게 (사진=연합뉴스)

■ 유가=물가… 상식 뒤집힌 대한민국

통상 국제유가는 소비자물가와 직결된다. 유가가 오르면 휘발유·경유 등 에너지 가격과 물류비가 상승하고, 이는 식품·가공품·서비스 전반에 파급돼 물가를 끌어올린다. 반대로 유가가 떨어지면 물가 압력이 완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은 역설적 상황에 놓여 있다. 국제유가는 내려갔지만 물가는 오히려 올랐다. 8월 두바이유는 배럴당 69.39달러로 2.1% 하락했지만, 원·달러 환율이 1.1% 오르며 수입물가를 끌어올린 것이다.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8월 수입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3% 상승했다. 광산품 가격은 내렸으나 화학제품·전자기기·소비재 등은 일제히 올랐다. '유가 하락 → 물가 안정' 공식이 환율 변수에 의해 깨진 셈이다.

■ 추석 전 물가 반등…기업 체감경기 여전히 ‘비관’

게다가 추석 연휴 직전 휘발유·경유 가격이 7주 만에 반등하고, 달걀·가공식품 가격까지 급등했다. 국가데이터처가 2일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 물가지수는 117.06(2020년=100)으로 1년 전보다 2.1% 올랐다. 외식을 포함한 개인서비스 물가는 2.9% 올랐으며 체감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는 2.5% 상승하며 전월(1.5%)보다 오름폭이 커졌다.

연휴 이후에는 계절적 수요 감소에도 불구하고 원재료 가격 전가 압력이 커져, 가계와 산업 모두 부담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가계가 물가 상승으로 숨이 가빠진 만큼 기업들도 경기 전망을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은행 ‘9월 기업경기조사’에 따르면 전 산업 CBSI는 91.6으로 소폭 상승했으나 10월 전망치는 88.5로 다시 하락할 것으로 나타났다. CBSI는 제조업과 비제조업의 주요 지표를 합산해 산출하는 경기 심리지표로, 장기 평균치(100)를 웃돌면 낙관, 밑돌면 비관으로 해석된다. 장기 평균치인 100을 밑돈 지는 이미 3년째다. 기업들이 추석 연휴로 영업일수가 줄고, 대외 통상 불확실성이 커진 점을 반영한 결과다. 제조업과 비제조업 모두 전망이 어둡다. 제조업 CBSI 전망은 89.4, 비제조업은 87.9로 나타났다. 한은은 “추석 이후 경기 흐름이 뚜렷한 반등세를 보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2025년 추석 3주 전 대비 1주 전 제수용품 가격 증감률 (자료=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 환율부담 커진 철강‧석유화학…대외 불확실성 ‘잠재 리스크’

석유화학 업계는 환율 고착이 가장 직접적인 부담이다. 나프타 가격은 국제유가 하락으로 안정됐지만, 환율 효과로 원료 구매 비용이 다시 상승세다. 이미 중국발 공급과잉과 글로벌 경기 둔화로 수요가 위축된 상황에서 원가만 치솟으면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주요 기업들이 추진하는 ‘탈유화’·고부가 전환 전략이 속도를 내지 못하면 실적 하방 압력은 한층 커질 수 있다.

철강업계도 마찬가지다. 환율 상승은 원료인 철광석·원료탄 수입단가를 끌어올리지만, 중국 철강의 저가 공세로 수출 판가는 오히려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 특히 건설경기 둔화와 조선·자동차 수요 둔화 가능성이 맞물리면서, 추석 이후에는 재고 부담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OPEC+의 증산 가능성,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 등 대외 변수도 산업계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국제유가는 최근 16주 만에 최저치를 찍었지만, 단기간 반등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환율·원자재 가격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추석 이후 한국 산업계는 ‘원가 상승-수요 위축’이라는 이중의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