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한 가전업체가 광고에 사용했던 이 슬로건은 우리나라 광고사에 남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누구나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 이전에 경영자와 임직원은 수 많은 고민과 검토, 논의를 거듭한다. 그렇게 결행한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 등 경영 판단은 10년 후 기업을 바꿔놓는다. Viewers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업들이 지난 10년 전 내렸던 판단이 현재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추적하고 아울러 앞으로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6일 경기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그룹 신년회를 갖고 있다. (사진=연합)


"현대차도 세계적 고급차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하겠다"

지난 2015년 11월, 당시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를 론칭하며 밝힌 포부다. 기존의 '가성비' 이미지를 넘어,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프리미엄·럭셔리 시장에서도 인정받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다만 원대한 포부에도 불구하고, 초기 '제네시스'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국내·외 시장에서 회의적인 시선이 쏟아진 것도 모자라, 일본차 '짝퉁'이라며 혼다, 렉서스 등 해외 브랜드와 비교당하기 일쑤였다.

실적 역시 순탄치 않았다. '제네시스'는 론칭 첫 해 530여대 판매고를 올린 것에 그쳤으며, SUV 없이 세단 모델만으로는 고급 브랜드 시장에 안착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제네시스'는 명실상부 독립된 프리미엄 브랜드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제네시스'의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판매량은 22만9532대로, 올해 1월 기준 누적 판매량 130만대를 돌파했다.

특히 지난해 미국에서 전년 대비 8.4% 증가한 7만5003대를 판매한 점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였다는 평가다. 미국에 처음 진출한 2016년(6948대) 이래 10년도 되지 않아 10배가 넘는 성과를 거둔 셈이다.

이제 '제네시스'는 북미, 유럽, 중동 등 주요 시장에 독립 전시장을 열며 확고한 이미지를 키우고 있으며, 세단 G80, G90을 비롯해 SUV GV80, GV90 등 풍부한 라인업을 갖췄다. 이에 더해 2025년부터는 모든 라인업을 전기차로 전환해 친환경 시장에 대응하고,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제네시스 GV80 블랙, GV80 쿠페 블랙. (사진=제네시스)

정의선 회장 '품질경영'으로…'디자인·품질·기술력' 확보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제네시스'가 본격적인 반등에 나선 배경에는 정의선 회장의 '품질 경영'이 자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24시간 운영되는 '글로벌 품질 상황실'을 비롯해, 전 세계 각지에 설립된 연구센터, 인공지능(AI) 기반의 품질 검증 시스템 등을 통해 개선을 이어가고 있다. 그 결과 디자인, 품질, 기술력이라는 세 박자가 맞아떨어지며 '제네시스'의 브랜드 이미지 상승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으로 정의선 회장은 브랜드 론칭 전부터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들을 대거 영입해 '제네시스'의 정체성을 재정립했다. BMW의 M 개발을 담당했던 알버트 비어만, 폭스바겐과 아우디에서 디자인 총괄로 일하던 피터 슈라이어, 벤틀리의 수석 디자이너 루크 동커볼케 등이 주요 영입 사례다.

이들은 G80의 2세대, 3세대를 거치며 '역동적인 우아함'이라는 디자인 철학을 정립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제네시스'의 디자인은 글로벌 시장에서 각종 어워드를 휩쓸며 고유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제네시스가 지난 3일 '2025 서울 모빌리티쇼'에서 공개한 제네시스 엑스 그란 쿠페(왼쪽), 엑스 그란 컨버터블. (사진=현대차그룹)

'제네시스'는 지난해 독일 국제포럼디자인이 주관하는 '2024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오픈카 콘셉트' 제네시스 엑스(X) 컨버터블로 프로페셔널 콘셉트 부문에서 본상을 수상했으며, 올해 역시 같은 부문에서 제네시스 네오룬이 본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외에도 독일 베스트팔렌 디자인센터가 주관하는 '레드닷 어워드', 미국 '굿 디자인 어워드' 등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에서 꾸준한 수상이 이어지고 있다.

품질 측면에서도 '제네시스'는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정받는 모양새다. 올해 '제네시스'는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가 발표한 충돌평가에서 GV70과 GV80이 '톱 세이프티 픽 플러스(TSP+)' 등급을 받으며 고급 브랜드 중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 2021년부터 5년 연속으로 달성한 등급이다.

평가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JD 파워 조사에서도 BMW, 포르쉐, 렉서스 등 해외 브랜드와 밀리지 않는 결과를 보였다. 지난 2022년 JD파워 신차품질조사(IQS)에서는 프리미엄 브랜드 1위를 기록했으며, 지난해 역시 포르쉐, 렉서스의 뒤를 이어 3위에 오르며 여전한 최상위권의 품질을 증명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 (사진=현대차그룹)

갈 길은 멀지만…트럼프 시대 대비 '기본기' 강조

물론 아직 '제네시스'가 갈 길은 멀다.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와의 종목별 경쟁에서는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유무형의 가치를 따지는 종합평가에서는 한 단계 아래로 평가받는 경우도 잦다.

특히 올해는 트럼프 발 관세가 현실화되면서 미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제네시스'의 주요 수출 시장인 미국의 경쟁력 약화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정의선 회장 및 주요 경영진들의 역할이 강조되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호세 무뇨스 사장은 최근 '기본기'를 강조하며 트럼프 시대를 헤쳐나가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기본에 충실한 좋은 품질의 차, 소비자가 원하는 차를 만들어 공급하면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그는 "완벽하지 않은 제품은 시장에 출시하지 않아야 한다"며 "특히 품질과 안전은 양보와 타협이 없는 최우선의 가치"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비전이 '제네시스' 브랜드에도 이어지길 바라며,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