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산 넘어 산이란 말이 맞나 봅니다. 이제야 2년전 사건으로 인한 상처를 좀 지워내나 싶었는데 경쟁에 치이고, 각종 구설수에 휘말리고, 급기야 거래 오류까지. 밤잠조차 안 올 지경입니다.

맞습니다. 솔직히 조바심나는 게 사실입니다. 이제 갓 4년 된 신생사가 점유율 1위라니요. 친정인 '슈퍼앱'을 통해 유입되는 수백만의 젊은 월활성화이용자(MAU)를 등에 업고 점령군처럼 판도를 흔드는데 신경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급하게 생각할 것 없다고? 속 좋은 얘기입니다. 금융사들에게 젊음은 늘 고민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과거 NH투자증권 전신인 우리투자증권이 자산관리 브랜드 ‘옥토’를 탄생시켰던 것도, KB증권이 ‘깨비증권’을 외치는 이유도 모두 더 젊어지기 위한 노력이란 것, 저도 압니다.

하지만 우리를 가장 짓누르는 건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무기가 ‘혁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주식투자를 단 한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몇차례 인증 절차와 파란 버튼 터치만 반복하면 별도의 앱 설치 없이도 수분 내에 주린이로 재탄생시켜줍니다. ‘어렵지 않다’며 하나씩 안내해주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든다더군요.

편리성이라는 게 얼마나 요물인지요. 분명 어제까지 당연히 했던 것들도 하루만에 바로 구시대적이고 번거로운 것으로 바꿔 놓습니다. ‘더 쉬운 것’에 익숙해지다보면 더이상 보안과 안전을 위한 절차라는 이유는 핑계가 되고 그저 게으른 기성품으로 낙인 찍히고 맙니다. 우리가 더 안전하고 완벽한 시스템이라고 강조한들 ‘편하면서도 안전할 수도 있더라’는 반문 앞에 막혀버리는 것이죠.

불과 얼마 전까지 혁신이라는 수식어는 우리의 전유물 같은 것이었습니다. 국내 최초의 온라인 증권사로 출발해 지금까지 줄곧 브로커리지 시장에서 1등 자리를 지켜낸 건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투자자들이 더 쉽고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우리는 남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고 더 완벽하게 구현해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이뤄낸 모든 것은 투자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각해 만들어낸 피와 땀의 결과물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에게 우리는 더이상 혁신이 아니랍니다. 더구나,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슈퍼앱을 통해 용돈을 받고, 현금카드를 사용하는 청소년들이 내일의 잠재 고객으로 하루하루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급해지는 마음을 다잡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브랜드 광고를 한 게 몇년 만인지 모릅니다. 우리 강점을 드러내기 위해 ‘할 거면 제대로 하라’고 외쳤죠.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거래 먹통’을 향한 고객들의 분노 앞에 고개를 들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겁니다. 고객들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고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먼저 파악하고 제공하는 것, 지난 25년을 거쳐 키움이 여기까지 올 수 있던 이유니까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지 곧 보일 겁니다.

다만, 지금은 기본부터 다시 다잡고 오겠습니다. 또 다시 ‘먹통’으로 낙인 찍히는 순간 정말 다시는 되돌리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혁신을 무기로 한 상대와 맞선다는 것이 이런 거였군요.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을 실감하는 지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