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오른쪽부터)·개혁신당 이준석·민주노동당 권영국·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가 1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SBS 프리즘센터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선 1차 후보자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2025년 대선을 앞두고 원자력 발전이 다시 한 번 정치권의 중심 의제로 떠올랐다. 특히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차세대 원전 전략을 둘러싸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당 후보 모두 원전의 활용을 강조하면서 산업계의 기대가 고조되고 있다. 글로벌 투자 기준과 ESG 원칙에 비춰본 현실은 녹록지 않다.
■ 이재명 ‘신중론’ vs 김문수 ‘확대론’···관건은 지속가능성
두 후보의 차이점이 있다면 이재명 후보는 원자력 발전에 대해 경제성과 안전성, 그리고 미래 세대의 부담까지 포함한 총체적 관점에서 신중한 편이다. 이 후보는 지난 18일 열린 대통령 후보자 초청 경제분야 TV토론회에서 “에너지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며 “원전도 필요하지만 위험성과 폐기물 처리 문제를 고려해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지난 대선에서도 경제성과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반면 김문수 후보는 ‘세계 1위 원자력 강국’을 내세우며 원자력 비중 확대를 핵심 에너지 전략으로 삼고 있다. 지난달 발표한 공약에 따르면, 현재 약 32.5%인 원전 비중을 60%까지 끌어올리고, 수명 연장·신규 건설·SMR 도입을 종합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김 후보는 특히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현실적 수단이자, 에너지 안보와 수출 산업의 핵심”이라며 원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미국과의 원자력 협정 개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기술 확보 등 공세적 외교와 기술 독립을 통한 원전 수출 확대까지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유럽 설계인증 받은 3세대 원전 신고리3호기 (사진=한수원)
■ EU ‘조건부 친환경’ 인정…국내 현실은 ‘투자 사각지대’
2022년 유럽연합(EU)은 ‘그린 택소노미’에 원전을 조건부 포함시키며 “기후 목표 달성에 원자력이 일정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는 곧바로 ‘친환경 투자처’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계획과 사고저항성 핵연료 사용 등 까다로운 요건이 부과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EU 택소노미가 발표된 당일, 유럽원자력산업협회는 “사실상 투자 장벽이 높아진 셈”이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한국 역시 이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고준위 폐기물 처리 시설은 부지 선정 단계조차 지연 중이며, 사회적 수용성 확보도 요원한 상황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여전히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 중이고, 월성·고리·한빛·한울 등 주요 원전은 10년 이내 포화 상태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점에서 글로벌 금융권은 한국형 원전 프로젝트를 ESG 투자 대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평가하고 있다.
결국 핵심은 정책과 시장 간 괴리를 어떻게 좁힐 것인가다. 정치권이 단기 성과 위주의 원전 확대 공약을 내세울 때 실제 금융과 투자 생태계는 신중하게 글로벌 기준을 따지고 있다. 블랙록, 노르웨이 국부펀드 등 주요 글로벌 운용사들은 규제 투명성, 사회적 수용성, 방사성폐기물 처리 능력 등을 원전 투자 결정의 핵심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내 시중은행 및 공적 금융기관도 “ESG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프로젝트는 투자 회피 대상”이라며 원전 확대에 따른 리스크를 강조하고 있다.
■ SMR과 수출 전략…우물 안 기술 말고 글로벌 기준 고려해야
UAE 바라카 원전 수주는 한국 원전 산업의 대표 성공 사례로 꼽히지만, 이는 당시 대규모 국책 보증과 정치적 외교력을 전제로 가능했던 케이스였다. 지속가능한 민간 중심 수출 모델이 작동하기 위해선 국제적 기준이 납득할 수 있는 ESG·안전성 기준이 선행돼야 한다.
정치권은 원전을 탄소중립 실현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 도구로 삼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은 더 정교하고 냉철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정책은 확대를 외치고, 금융은 조건을 따지는 괴리 속에서 원전 정책은 시험대에 올랐다. 원전이 과연 탄소중립 해법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위해 글로벌 기준 속에서 현실 가능한 전략’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교한 정책 제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