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성동구 청계리버뷰자이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중국 국적의 50대 근로자가 15층 높이에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시공사는 GS건설. 회사는 즉시 해당 현장의 공사를 전면 중단하고 전국 모든 현장에 대한 특별 안전 점검에 돌입했다.

이번 사고는 전날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건설현장 추락사고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강하게 질타한 직후 벌어진 일이어서 그 충격이 크다. 특히 최근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건설업계에 국내 인력이 줄어들고 고령화되면서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이 높아진 탓이다. 하지만 언어 장벽 등 현실적인 문제로 외국인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대응이 부족해 사회적 우려가 크다.

허윤홍 GS건설 대표이사가 고용노동부와 주요 대형건설사 간 중대재해 대책 관련 간담회가 열린 가운데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

■ 반복되는 외국인 인명 사고…외국인 재해 중 건설업이 '압도적'

허윤홍 GS건설 대표이사는 사고가 일어난 날 곧바로 사과문을 통해 "안전 사고를 막지 못한 데 대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이번 사고를 용납할 수 없는 사태로 인식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사고는 고용노동부와 대형 주요 건설사와 인명사고 등 중대재해에 대한 대책 간담회가 열린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났다. 고용노동부는 즉각 사고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아울러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안전관리 실태도 함께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건설업계에서는 "GS건설이 그간 외국인 노동자 보호를 위한 조치를 취해왔음에도 사고가 발생했다"는 말이 나온다. 현장 관리 체계에 대한 구조적 재검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GS건설 외국인 노동자 사망사고 관련해선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작업 전 충분한 안전교육이 이뤄졌는지 등 사고 경위와 안전 교육 여부 등을 조사 중이다.

이번 사고는 단일한 사례가 아니다. 지난달 4일에도 포스코이앤씨의 경기 광명~서울고속도로 연장공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의 30대 노동자가 지하 18m 지점 양수기 펌프 점검 중 감전 추정 사고를 당해 중태에 빠지기도 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민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외국인 근로자 업무상의 재해 현황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2023년까지 7년 연속 외국인 산재 사망자는 연간 100명을 넘었다. 부상, 질환자 수도 같은 기간 6186명에서 8677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지난 2023년 기준 외국인 노동자의 사고 중 39.8%가 건설업에서 발생했다. 전체 외국인 근로자 중 건설업 종사 비율은 12%에 불과함에도 사고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다.

고용노동부 조사 2025년 2분기 중대재해수 (자료=고용노동부)


■ 고령화 대체한 외국인 노동자…안전망은 '제자리'

건설업계는 고령화와 내국인 기피로 인력난이 심화되면서 이를 메우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 비율이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안전관리 시스템은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올 상반기(1~6월) 고용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는 287명, 그 중 외국인 노동자 사망자는 38명(13.2%), 건설업 사망자만 18명으로 업종별 비중이 가장 높았다. 전체 취업자 중 외국인 비중이 약 3.4% 수준임에도 이들의 산재 사망률은 2~3배에 달한다.

실제 현장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어로 된 교육자료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절차만 거치고 작업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대기업은 다국어 매뉴얼 제작과 현장 통역 인력 배치, 관리자 동행 등을 통해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중소기업에서는 여전히 실효성이 떨어지는 실정이다.

이번에 사고가 난 GS건설도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별도의 안전관리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 측은 "다국어 교육 콘텐츠, 통역 인력 배치, 고위험 작업 시 관리자의 현장 동행 등의 방식으로 외국인 안전 강화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용직 노동자가 많은 건설업계에서는 이러한 노력들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GS건설은 건설현장 곳곳에도 이동형 CCTV를 설치하기도 하고, 현장 외국인 근로자들과 소통을 위한 AI 기반 번역 프로그램인 '자이 보이스'를 개발해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지난 5월에는 허 대표가 직접 인천 송도 공사 현장을 찾아 추락 사고 예방에 대한 릴레이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GS건설은 "추락재해 관련 체크리스트 활용한 현장 안전점검, 안전 조회 시 추락재해관련 위험성평가 교육, 추락 사고사례 동영상 교육 등을 진행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인명 사고는 발생했다. 번역기를 써도 추락예방 캠페인을 벌여도 말이다. 그간 안전 대책에 구멍이 있는 셈이다.

허윤홍 GS건설 대표(가운데)가 지난 5월 추락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 점검에 나서서 현장을 둘러보고 직원들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있다. (사진=GS건설)

대통령실은 최근 건설사들의 사고와 관련해 "건설 현장 사고는 대부분 예방 가능한 것들"이라며 "반복되는 사고는 총체적인 시스템 점검이 필요하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적 책임을 넘어 실질적인 안전 문화 정착을 위해 정부와 민간이 함께 나서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고용노동부도 오는 10월에는 외국인 노동자 대상 교육 확대와 중소기업 안전교육 예산 지원 등을 포함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 "외국인 안전 보장, 자국 인력 유입 제도적 전환 필요"

전문가들은 강압적인 처벌 위주의 대책보다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 현장에 외국인 근로자가 많고 이들이 험한 작업을 주로 맡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번 사고는 보다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며 "단순히 감정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어느 공정, 어떤 단계에서 사고가 반복되는지를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관리자나 근로자 모두 인식전환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 연구위원은 "건설사들도 다국어 자료, 번역기, CCTV 설치 등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일용직 비중이 큰 현장의 특성상 안전 인식이 체계적으로 자리잡기 어렵다"며 "관리자와 근로자 모두 '이 정도면 된다'는 관행이 남아 있는 만큼, 이를 점검하고 바꾸는 시스템 전환이 시급하다"고 했다.

최근의 처벌 위주 접근에 대한 비판도 있다. 그는 "사고가 터질 때마다 처벌에만 초점을 맞추는 방식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사고 원인을 단계별로 분석해 위험 요소를 줄이는 구조적 개선이 필요한데, 이는 건설사 노력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정부, 산업계, 현장 모두가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업의 노동력 구조 자체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장 전문 인력의 고령화 속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커지고 있는데, 단기적으로는 불가피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 경쟁력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자국 인력이 현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유인책을 마련하고,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서는 안전을 보장하면서 비용 분담이 가능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