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1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응우옌 홍 지엔 베트남 산업무역부 장관과 면담을 갖고, 핵심광물 공급망 기술협력센터 협의의사록(ROD) 교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한때 한국 철강·화학·조선·방산 업계에 아시아는 ‘성장 사다리’였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이 더 이상 우호적이지 않은 지금, 한국 기업들의 시선은 인도와 동남아, 그리고 중동으로 옮겨가고 있다. 새로운 기회의 땅이지만 동시에 현지화와 합작, 정치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

■ 동남아···신(新)공급망의 중심지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25년 한국 기업들의 인도네시아 투자 규모는 16억 달러(약 1.7억 달러 추가 투자 포함) 수준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롯데케미칼은 인도네시아에 연산 100만 톤 규모의 에틸렌 크래커를 짓고 있다. 39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투자로, 2025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한다. 중국의 공급과잉에 막힌 출구를 동남아에서 열겠다는 계산이다.

조선·해운 부문에서도 동남아는 생산·수리 거점 역할을 본격화하고 있다. 베트남·필리핀 조선소들은 한국 조선사의 조립·수리 수요를 흡수 중이며 특히 현대미포·대우조선 계열은 동남아 수리망 확대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방산 분야에서도 실적이 보인다. 필리핀 정부와는 2030년까지 12대의 FA-50 전투기를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필리핀군 현대화 계획의 일부가 한국 방산업체에 의해 채워지게 되었다. 또한 말레이시아도 2023년에 KAI로부터 18대의 FA-50을 구매하는 계약을 맺었고, 이 주문 물량은 2026년부터 인도될 예정이다

동남아는 중국 중심의 공급망 리스크를 헤지할 대체 거점이다. 다만, 단위 인프라 투자 규모가 크므로 기술 이전·ESG 기준 대응·현지 자재 조달 등이 핵심 경쟁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에코프로가 투자한 인도네시아 제련소의 모습 (사진=에코프로)

■ 인도···14억 내수의 기회이자 높은 문턱

인도는 세계 최대 규모의 내수 시장 중 하나다. 철강·화학 기업들은 인도 내 가공센터·소재 공급망 진입을 시도하고 있으며, 자동차 완성차 업체들의 인도 생산 확장이 주변 부품·강판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 조선업 측면에서 인도는 자국 국영 조선소 중심이지만 한국 조선사는 기술제휴·설계·부분 수주 방식으로 일부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에너지·재생 분야도 기회가 많다. 인도의 태양광·ESS 프로젝트는 외국 업체의 부품 공급망 참여 여지를 열어주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도 전력망 솔루션·배터리 부품 등으로 진입 중이다.

방산은 가장 복합적인 분야다. 인도 정부는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을 통해 기술 이전·현지 생산을 강제하고 있어 외국 무기 수출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한국 방산 기업은 합작 모델·라이선스 생산을 전제로 인도 수주를 타진 중이다.

■ 기회의 땅인가 함정인가

인도는 양의 잠재력이 크지만 진입이 쉽지 않다. 포스코는 과거 오디샤주 제철소 프로젝트 등으로 인도 진출을 시도해왔지만 환경·토지 인허가 문제 등으로 지연을 반복했다. 2022년 인도 아다니 그룹과 손잡고 다시 추진했으나 또다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인도 JSW그룹과 현지 제철소 건립과 관련한 세부적인 내용을 합의함에 따라 재진입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동남아와 인도는 중국·일본이 바꿔 놓은 아시아 내 축 이동의 중심이다. 한국 산업계는 이 흐름을 따라가야만 생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단순히 진출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기술력, ESG·환경 기준 대응, 현지화 역량, 파트너십 전략이 동시에 작동할 때 비로소 동남아·인도는 새로운 성장의 사다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