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트럼프의 관세 폭탄, 수출 흐름 뒤흔들다

미국은 자국 산업 부흥을 위해 전례 없는 수준의 보호무역 장벽을 세우고 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MASGA)까지 제조업 전반에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새겼다. IRA는 전기차·배터리에 반도체법은 첨단 칩에 보조금이 집중된다. 한국 기업에게는 현지 투자를 통한 기회의 창이지만 동시에 진입장벽이자 압박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와 10% 보편관세를 시행하자 미국의 대세계 수입 증가율은 30%대에서 2% 미만으로 급락했다. 자동차(25%), 철강·알루미늄(50%) 등 주요 품목은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반도체와 의약품까지 100% 관세가 예고되며 한국 산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상무부가 전자기기 속 반도체 칩 가치에 따라 관세율을 차등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은 “사실상 무차별 관세”라며 대응책을 모색 중이다.

의약품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공장이 없으면 모든 브랜드·특허 의약품에 100% 관세”를 선언했다. 한국은 최혜국 대우 협상이 지연되며 셀트리온, 유한양행 등 수출 기업들이 비상대책 회의에 들어갔다. 일부 업계는 오히려 중국 의존도가 높은 원료의약품(API) 시장에서 반사이익을 기대하지만 제네릭을 넘어선 개량 신약·바이오베터는 관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남는다.

(자료=한국무역협회)

■ 벼랑 끝에선 철강·틈새 노리는 방산

철강은 미주 시장에서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올해 1~8월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은 전년 대비 16% 감소해 전체 수출 감소율의 두 배를 넘어섰다. 미국이 관세를 최대 50%까지 높이고 적용 범위를 파생제품으로까지 넓히면서 포스코·현대제철은 수익성 악화와 가동률 저하를 호소한다. 국내에서는 ‘K-스틸법’이 추진 중이지만 정쟁으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어 업계의 불안이 커진다.

보호무역의 벽은 방산에서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자국 조달 규정을 강화하며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조항을 확대 적용 중이다. 그럼에도 한국 방산기업들은 틈새를 노린다. 대표 사례가 현대로템이다. 현대로템은 텍사스주 철도 차량 공급에 이어, 방산 부문에서는 K2 전차와 차륜형 장갑차의 현지 조립·부품 조달을 추진하며 미국 시장에 발을 넓히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역시 조지아주에 엔진 부품 생산 라인을 구축해 현지화 전략을 강화 중이다. 전문가들은 “현지 조달망과 기술이전 조건을 수용할 수 있느냐가 미주 방산 진출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지적한다.

■ 글로벌 균형 고려한 생존법 찾아야

현대차·기아는 IRA 보조금을 겨냥해 미국 조지아·앨라배마에 전기차·배터리 생산 기지를 세우고 한화는 MASGA 프로젝트와 맞물려 미국 방산·조선업 시장에 적극 진입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미국 반도체법에 발맞춰 현지 투자를 확대 중이다. 그러나 지나친 현지 올인 전략은 ‘글로벌 밸런스’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트럼프식 관세는 한국 기업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세계 수출 흐름을 흔들고 있다. 한국 기업의 생존 전략은 단순히 관세를 피하는 차원을 넘어 미국 시장 안착과 글로벌 균형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찾는 데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