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어스=김수환 기자] 영화란 매체 자체가 거짓을 말하는 도구이기에 실체를 그리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다. 하지만 영화 ‘가려진 시간’은 사실 너무도 황당한 스토리와 설정이 자칫 영화란 매체가 빠질 수 있는 자충수의 함정을 스스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란 우려가 전해졌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잉투기’를 만든 엄태화 감독의 세밀하고 감성적인 연출이 러닝타임을 매끄럽게 만드는 윤활유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영화의 톤 앤 매너가 ‘강동원’이란 실체적 판타지를 만나면서 ‘진짜’가 돼 버린 힘을 발휘했다. 이 지점은 ‘가려진 시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힘이었다. 여기에 강동원과 무려 21년의 시간차를 두는 신예 신은수의 존재감을 판타지의 마침표가 됐다.

‘가려진 시간’은 가상의 섬 ‘화노도’에서 일어난 의문의 실종사건 후 단 며칠 만에 어른이 돼 나타난 성민(강동원)과 유일하게 그를 믿어준 단 한 소녀 수린(신은수)의 특별한 얘기를 그린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른의 마음과 아이들의 마음 즉 ‘동심’의 괴리감에서 오는 슬픔과 절망 그리고 아름다운 기억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스토리의 시작은 한 정신과 전문의(문소리)의 책 머리말에서 시작된다. 이 얘기는 수린이란 아이를 통해 그의 세계 속에서 벌어진 말도 안 되는 스토리의 시작과 끝이다. 그 ‘말도 안 되는’이란 지점이 어떤이의 관점인지는 영화를 통해 공개되고 관객들에게도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판타지란 장르적 설정을 위해서 영화는 극중 공간을 세상과 단절된 외딴 섬으로 한정시킨다. 사실 공간 자체가 단절이 돼 있지만 진짜 단절은 수린의 마음이다. 재혼을 한 엄마가 사고로 죽은 뒤 새아빠(김희원)와 단둘이 살게 된 아이다. 새아빠에게 ‘아저씨’라 부르고 자신의 성을 새아빠의 성이 아닌 죽은 아빠의 성이라고 악다구니를 쓰는 아이의 마음은 어른들에겐 그저 ‘불통’으로 다가올 뿐이다. 새아빠가 “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며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데만 급급했던 점을 어른들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수린에게 다른 어른이 나타났다. 자신을 성민이라고 주장하는 어른이다. 성민은 수린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어린이’다.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아이에서 머물러 있는 성민은 세상이 바라보는 세상이 틀렸다고 말하는 거짓이다. 그 거짓을 수린은 진짜로 믿고 다른 어른들은 거짓이라고 말한다. ‘가려진 시간’은 신비한 사건 속에 숨은 그 시간 속에서만 존재했던 ‘동심’을 말한다. 그 동심이 사라진 어른들에게 그 시간이 바로 존재하지 않은 ‘가려진 시간’인 셈이다.

사실 영화 속 수린과 성민 모두는 어른으로 대변되는 ‘거짓’의 결핍을 갖고 있는 캐릭터였다. 수린은 새아빠와 살고 있지만 엄마가 사고로 죽은 뒤 사실상 고아나 다름없는 존재가 됐다. 성민은 아빠의 버림으로 어릴 적부터 고아원에서 홀로 살아왔다. 두 아이는 서로에게만 존재하는 서로만 알 수 있는 문자로 소통을 하면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가려진 시간’을 공유해 나갔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수린의 눈을 통해 기억된 세상, 그리고 어떤 사건을 경험한 뒤 수린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세상의 괴리가 만들어 낸 약간의 균열감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색다름을 주목하고 있다. 누구도 경험할 수 없고 누구도 경험해서는 안되는 그 사건 속에서 성민은 세상과 동떨어진 시간을 살아왔다. 그 외로움이 세상 속에서 홀로 살아온 그 시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외로움으로 휩싸여 있다고 해도 견뎌낼 수 있었다. 바로 수린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함이었다.

‘가려진 시간’은 그렇게 세상이 잃어버린 언제부터인가 믿으려 하지 않은 ‘동심’을 깨우는 흔들림과도 같다. 그래서 ‘가려진 시간’은 어지러운 요즘에 ‘잠시’란 쉼표처럼 다가온다. 오는 1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