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현대자동차 인도법인이 뭄바이 인도증권거래소에서 사상 최대 규모로 신규 상장했다. (사진=현대자동차)

자회사 해외법인 상장···대기업의 새로운 전략

최근 국내 기업들이 자회사의 해외법인 상장을 추진하면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인도법인(HMIL)을 시작으로 두산과 LG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글로벌 자본을 유치하고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외 상장을 적극 검토 중이다. 글로벌 자본을 유치하고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새로운 방식으로 보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HMIL은 지난해 10월 22일 인도 증권시장에 상장해 5개월만에 인도 국립증권거래소(NSE)의 니프티 넥스트 50(Nifty Next 50), 니프티 100(Nifty 100), 니프티 500(Nifty 500) 등 주요 자본시장 지수에 편입됐다. 두산에너빌리티 체코 자회사 두산스코다파워도 지난달 체코 프라하 거래소에 상장했다. 또 CJ대한통운 인도법인 CJ다슬은 인도 증권거래위원회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했고 LG전자 인도법인도 지난해 12월 현지에서 상장예비심사 청구서를 제출했다.

글로벌 시장 향한 도약인가, 국내 규제 회피인가?

대기업이 해외법인 상장을 추진하는 표면적 이유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장과 현지 투자자 유치다. 현지 증시에 상장하면 기업 인지도가 높아지고, 글로벌 증시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는 기업의 자금 조달을 원활하게 하며 장기적인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이를 ‘국내 규제 피하기’로 보고 비판하기도 한다. 쪼개기 상장에 대한 우리 금융당국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대기업의 부담이 커져 글로벌 IB의 도움을 받아 해외에서 상장하는 방안을 택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물적분할 후 5년 내 자회사 상장 시 강화된 심사를 적용하는 등, 기업이 투자자 보호 조치를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법인 상장은 이러한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지난 2월 24일(현지시간) 구광모 LG대표는 뉴델리에 위치한 LG전자 노이다 생산공장을 방문했다. (사진=LG전자)

'소수 지분 유지로 경영권 확보'···승계 전략의 도구 가능성

해외 증시에서는 차등의결권이 허용되거나, 기업 지배구조 설계가 국내보다 자유롭다. 오너 일가가 소수 지분만으로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셈이다. 이는 국내에서 승계 전략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이미 오랜 기간 해당 국가에서 사업을 펼쳐 온 현지법인 IPO는 물적분할 상장과는 다소 성격이 다르지만 모회사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은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국내에서 번 돈으로 해외 자회사를 키운 뒤 상장시키고, 결국 한국 증시에는 껍데기 모회사만 남길 가능성이 있다"며 강한 우려를 표했다. 이는 국내 증시에 대한 투자 매력을 감소시키고,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법인이 독립적으로 성장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국내 투자자들이 피해를 본다면 이는 기업의 장기적 가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업 성장과 주주 가치의 균형 필요

해외법인 상장 논란이 확산되면서 정부와 금융당국은 이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해외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들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투명성을 확보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해외 상장을 추진하더라도 국내 주주들의 권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감독당국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국내 증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해외법인 상장은 기업들에게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이다. 그러나 단순한 자금 조달 수단이 아니라, 지배구조 개편 및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국내 투자자와 시장의 신뢰를 저해할 수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해외 상장 기업들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국내 주주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기업들 역시 단기적인 이익이 아닌 장기적인 성장과 주주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