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국내 제약업계에서 올해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창업주 2~4세에 이르는 경영권 승계가 본격화되고 있다.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서 보다 신속하고 효과적인 의사결정과 책임경영을 위해 가문의 후계자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모습이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제일약품과 보령은 오너 3세 체제로 전환했고 삼진제약과 동화약품은 각각 오너 2세, 오너 4세를 경영 전면에 내세웠다. 업계는 이러한 경영승계가 단순한 세대교체를 넘어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제일약품은 지난 25일 이사회를 열고 오너 3세 한상철 사장을 공동대표로 선임했다. 이에 따라 제일약품은 전문 경영인인 성석제 대표와 한상철 대표의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하게 됐다.
한상철 신임 공동대표는 제일약품 창업주 고(故) 한원석 회장 손자이자 한승수 회장의 장남이다. 연세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로체스터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지난 2006년 제일약품 부장으로 입사해 마케팅 전무와 경영기획실 전무, 2015년 부사장을 거쳐 2023년 제일약품 사장에 올랐다. 현재 제일약품 지주회사인 제일파마홀딩스 대표를 2017년부터 겸직하고 있다.
한 대표는 경영에 필요한 주요 요직을 거치면서 상품매출 중심이었던 제일약품의 체질개선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로 신약 연구개발 집중과 사업 다각화, 신사업 발굴 추진 등을 주도했다. 한 대표가 설립을 주도했던 신약개발 자회사 온코닉 테라퓨틱스가 신약인 '자큐보정'(자스타프라잔)을 허가받는 등 성과도 냈다.
보령은 지난달 28일 이사회를 열고 김정균·장두현 각자 대표이사 체제에서 김정균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했다. 김 대표가 보령 대표에 오른 것은 지난 2022년부터였지만, 제약 사업을 총괄하는 장 전 대표와 우주 사업 등 신사업을 발굴하는 김 대표의 각자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단독 대표 체제로의 변화에 앞으로는 김정균 대표가 보령의 제약 사업까지 총괄하게 됐다.
1985년 생인 김 대표는 창업주 김승호 회장의 손자로, 삼정KPMG에서 근무하다 2014년 보령제약에 합류했다. 이후 김 대표는 전략기획팀, 생산관리팀, 인사팀장 등 주요 보직을 모두 거친 뒤 2017년 1월 지주사 보령홀딩스 사내이사 겸 경영총괄로 적을 옮겼고 2022년 보령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삼진제약은 지난 21일 이사회를 열고 책임경영 강화와 미래 번영을 위한 성장 가속화를 꾀하고자 오너2세 조규석, 최지현 사장을 각자 대표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조규석·최지현 대표는 삼진제약을 공동 창업한 조의환 회장 장남, 최승주 회장 장녀로 두 사람은 2023년 정기주총에서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리고 삼진제약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했으며, 지난해 사장으로 승진했다. 조규석 대표이사는 경영관리, 재무, 생산 부문을 총괄하며 조직의 안정적인 운영과 효율성 제고에 기여해왔으며 최지현 대표이사는 영업, 마케팅, 연구개발 부서를 진두지휘하며, 삼진제약의 성장 동력 확보와 시장 경쟁력 강화를 이끌어왔다.
동화약품은 지난 26일 유준하, 윤인호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했다고 공시를 통해 밝혔다. 오너 4세 윤인호 대표는 윤도준 동화약품 회장 장남으로 2013년 8월 동화약품 재경부에 입사했다. 12년 동안 전략기획실, 생활건강사업부, OTC 총괄사업부 등 주요 부서를 두루 거친 후 최근까지 동화약품 COO(Chief Operating Officer) 및 디더블유피홀딩스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전문경영인과 오너 각자 대표 체제를 구축한 동화약품은 국내 최장수 제약회사로서 쌓은 역량과 신뢰, 업계 최고 수준 공정 거래 및 윤리경영 원칙을 바탕으로 사업 다각화에 힘쓸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약바이오 산업은 신약개발에 따른 리스크가 큰 산업인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오너가의 책임경영이 중요해 지고 있다”며 “글로벌 경쟁 역시 심화되는 가운데 기민한 의사 결정도 필요해 세대교체를 포함한 리더십 개편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