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어스=김수환 기자] 갬블(도박)영화는 소재 자체 흥미성이 높다. 어떤 사건 결과에 대한 가치 또는 금전상의 ‘모험’을 ‘갬블링’이란 행위 자체에 포함시켜 그려낸다는 지점이 장르 영화가 선보일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의 카타르시스로 작동하기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반대급부의 위험성도 크다. 일단 스토리 포맷 자체가 완벽하게 맞춤식으로 설정돼 있다. 1980년대 후반 홍콩영화계를 장식해 온 도박영화의 트렌드는 그렇게 순간적인 화력을 뽐냈지만 그 강렬함 만큼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국내에선 ‘타짜’를 통해 도박 영화의 흥행 가능성이 점쳐졌었다. 이어 ‘신의 한수’가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으며 팝콘무비로서의 자극성과 함께 흥행성까지 보장된다는 선례를 남겼다. 하지만 국내에선 아직 레퍼런스 자체가 풍부하지 못한 탓에 기시감을 넘어 장면의 데자뷰 현상까지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도박 영화는 위험하다. 물론 ‘스플릿’은 그 양면의 장단점을 모두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장점을 찾아낸 영화가 ‘스플릿’이다.
‘스플릿’의 정의는 극중 대사 한 마디로 정리가 된다. 배우 권해효가 연기한 캐릭터는 “볼링이 왜 사람을 미치게 하는 줄 알아? 다음에는 꼭 스트라이크를 칠 것 같거든”이라고 전한다. ‘도박 볼링’에만 사실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어떤 도박이든 그 다음에는 꼭 한 탕을 할 것 같은 그 보이지 않는 가능성에 대한 얘기를 전하는 한 마디다. 그것이 비단 도박에만 한정된 말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미 ‘스플릿’의 결말은 대부분의 관객이 유추할 수 있다. 장르 스토리의 교과서인 권선징악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갈지가 관건이다. 그것이 ‘볼링’이란 다소 의외의 스포츠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에 유추자체가 약간(?) 불안정하지만 말이다.
한때는 천재적인 실력을 갖춘 국가대표 볼링 선수 철종(유지태). 하지만 지금은 불의의 사고로 볼링 선수에겐 치명적인 다리 불구가 됐다. 그의 눈에 어느 날 천재적인 능력의 소년 영훈(이다윗)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소년 ‘자폐증’을 앓고 있다.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것을 완벽하게 선보일 수 없는 장애가 두 사람을 옥죄고 있다.
가짜 석유를 팔며 생계를 유지하고 희진(이정현)의 중계로 때때로 도박 볼링 선수로 돈을 만지는 철종이다. 그의 결핍이 무언지 영화 중반까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저 과거 스승의 딸인 희진과 희진의 아버지이자 스승이 운영하던 차압된 볼링장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고만 영화는 소개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영훈이 등장한 것이다.
여기에 이런 장르의 필연적인 악역 ‘두꺼비’(정성화)가 끼게 된다. 철종과 같은 동료였고 희진의 아버지 제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관계로 인해 이들과 고개를 돌린 사이다. 철종과 두꺼비 그리고 희진 세 사람의 관계 속에 숨은 얘기가 일종의 엑셀레이터다. 물론 ‘도박’이란 흥미성이 ‘스필릿’ 자체의 동력임은 부인할 수 없다.
철종과 두꺼비의 관계가 그리는 선악구도 그리고 ‘조력자’로 등장하는 희진, 여기에 ‘히든카드’로 선택된 영훈의 균형미는 도박 영화 전작 ‘타짜’ ‘신의 한수’ 속 라인업과 별반 다르지는 않다. 구성력과 진행 방식의 차이점도 큰 변별력을 찾아보긴 힘들다. 하지만 의외의 지점에 단 한 가지가 눈에 희미하게 보여 진다. 그 지점은 중후반 이후 색채가 더욱 짙어진다. ‘스플릿’은 볼링이란 다소 생소한 스포츠와 ‘도박’의 흥미성에만 집중시킨 점이 아니란 것이 다가오게 된다. 철종과 영훈의 관계가 ‘도박’이 가진 비인간성의 치우침에 균형감을 주게 된다. 다소 신파성이나 고리타분한 인간적인 면을 강조한 것이라고 예측한다면 판단착오다. ‘스플릿’으로 상업 영화 데뷔에 나선 최국희 감독의 고민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그 지점은 악역 ‘두꺼비’에게서도 다가오니 말이다.
‘스플릿’은 철종과 영훈이 만들어 내는 사제지간 혹은 형제지간에서 볼 수 있는 브로맨스, 그리고 철종과 두꺼비가 그리는 ‘살리에르 증후군’ 같은 ‘2인자 콤플렉스’의 날카로움이 ‘도박’이란 자극성 속에 보이지 않게 눈치 채지 못하게 녹아 들었다.
특히 마지막 대결에서 ‘두꺼비’가 철종을 향해 ‘왜 증오를 했는지’에 대한 속내를 털어 놓으며 보이는 떨리는 눈빛이 ‘스플릿’의 차별점을 느끼게 하는 한 장면이다.
분명 기존 도박 영화의 흐름과는 다른 지점을 바라보고 만들었단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 결과물이 세련되고 매끄러운 모습에서 조금 모자란 느낌이 들어도 말이다. 그래서 ‘스플릿’은 기존 도박 영화의 새로운 레퍼런스가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