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고등학교 시절 나의 최대 고민은 연애였다. 부모님도 모르게 공부와 연애를 병행해야 하는 고달픔이었다. 대학시절엔 어떻게 잘 취업을 해서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있을까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취업을 하고 나서는 월세와 생활비를 해결해나가며 결혼자금을 모으는 것이 목표였지만 쉽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나니 이전의 어려움들은 그렇게 힘든 것들이 아니었다. 아이를 낳고 보니 한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그 이전의 어려움들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아이를 뱃속에 품고 마냥 태교에 집중했고, 엄마라는 실감도 하지 못한 채 조기진통에 쩔쩔 매며 행여 아이를 잃을까 겁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제대로 키워보겠다며 당당하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유식은 무조건 유기농, 무농약, 국내산으로, 모든 과정은 내 손을 거쳤다. 유별나다는 말까지 들어가며 아이를 먹고 입히고 재웠고 온 신경을 쏟았다. 그렇게 아이는 자라서 어린이집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수순인 양 나 역시 다시 일을 찾았다.
이후부터는 꼬임의 연속이다. 일과 육아의 병행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자괴감의 연속이었다. 아이는 자라나서 말을 안듣는 나이가 되었고 하지 말라는 짓을 씨익 웃으며 하는 개구쟁이가 됐다. 오직 사랑으로 대하자던 마음은 요즈음 엄마라는 ‘직업’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인생 최대의 고민으로 자리잡았다. 아이가 자라날수록 육아법 책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 여느 드라마 제목처럼 ‘이번 생에 엄마는 처음이라’ 혼란스럽기만 한 요즘이다. 대처법도 모르는 미숙한 이 엄마는 회유와 윽박과 논리를 오가며 아이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기만 한다.
요즘 들어선 매일 도망가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딱 하루만,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아이를 배에 품고부터 제대로 잠들 수 없었던 밤을 느긋하게 푹 자고 싶은 마음.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의로 눈이 떠져서 일어나는 나른함을 느끼고 싶다는 간절함은 절박할 정도다. 마음 속에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과 잘 키워내야 한다는 책임감, 도피감 등이 뒤엉키면서 정말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긴 하는 걸까, 나는 엄마로서 자격이 있는 걸까라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나는, 엄마가 되기엔 부족한 사람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끝없는 걱정과 회의가 나를 휘감았다.
(사진='엄마라서 고마워요' 책표지)
그럴 때 ‘엄마라서 고마워요’를 만났다. 다를 것 없는 엄마들의 마음을 담은 책이다. 여러 엄마들이 아이를 배에 품은 순간부터 육아를 해나가며 겪는 어려움과 감정들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뒷통수를 치는 책이기도 하다. 내가 얼마나 이 아이를 사랑했는지, 이 아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소중했는지 깨닫게 됐달까. 언제부터 그 소중한 감정을 잊고 아이와 기싸움을 벌인 건지 생각하자 아찔했다. 아이는 어땠을까. 훈육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매섭게 대하는 엄마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아이가 느꼈을 혼란을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왔다.
그래, 이 아이가 도무지 말을 듣지 않고 떼를 쓰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아이임에 분명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엄마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아이를 다그치고 혼냈다. 사랑하기 때문이란 이유였지만 이것이 진짜 사랑인가 싶었던 순간들. ‘엄마라서 고마워요’는 아이의 변화에 휘둘리는 엄마의 마음을 다잡아주는 책이다. 엄마에게 어떻게 하라고 종용하지 않고 엄마를 위로하는 책도 아니다. 그보다 엄마라는 존재가 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인지, 어떻게 사랑해줘야 할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1% 행운’ ‘죽기 전에 답해야 할 101가지 질문’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공동 집필한 잭 캔필드의 전략은 주효했다. 전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그 노하우는 ‘육아를 하는 엄마’라는 좁은 영역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세상 여러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엄마들이 전하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세상의 엄마들이 인종, 나이, 국가를 뛰어넘어 다르지 않은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은 큰 위안으로 다가온다. 엄마가 되어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자신을 보게 되는 경험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세상의 엄마들은 자신에게 너무 엄격해지지 말라고, 무엇보다 자신을 돌보는 데 망설이지 말라고 말한다. 아이가 만나는 세상의 처음이자 가장 오랫동안 아이를 사랑해 줄 엄마이기에 엄마는 누구보다 행복해야 한다고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엄마로서의 역할이 희생과 책임으로만 느껴져 고단하고 흔들릴 때마다 책장을 펼쳐보게 만드는 책이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좋을 책이라 부담이 없다. 가방에 쉽게 넣고 다녀도 될 만큼 가볍다. 여러 사람들의 에세이를 모은 형식이라 가독성은 좋지만 깊은 울림을 원하는 독자에겐 아쉬움이 남는 책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