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갈리고 있다. 빈부, 이데올로기, 지역, 세대로 갈려 온 이 사회는 최근 더 세분화되는 양상이다. 온라인상에서 남성과 여성으로 양분돼 서로를 혐오하는 현상이 치열해지더니 오프라인에서 아이의 출입을 금지하겠다는 '노키즈존' 현상이 과열되고 있다. 노키즈존을 두고 대중의 의견은 첨예하게 갈린다. 아이에 대한 차별이라는 시선과 이용객들의 권리를 위한 선택이란 기로에서 노키즈존은 방황을 거듭하고 있다. 부모의 태도, 사업주의 영업방식, 더 나아가 사회적 장치가 모두 개선돼야 할 이유다.-편집자주
(사진=픽사베이)
[뷰어스=문서영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노키즈존에 대해 입을 열었다.
지난 11월 24일, 인권위는 식당에서 13살 이하 아동의 이용을 제한한 제주시 한 식당 사업주의 행위가 ‘나이를 이유로 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차별행위’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사업주에게 이용 대상에서 13살 이하 아동을 배제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결정문을 통해 ‘아동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사업주들이 누리는 영업의 자유’보다 우선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사업주인 피진정인이 일부 아동의 산만한 행동이나 보호자의 무례한 행동을 이유로 모든 아동 및 아동을 동반한 보호자의 식당 이용을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일부의 사례를 객관적·합리적 이유 없이 일반화한 것에 해당한다”고 했다.
특히 인권위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를 근거로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를 이유로 상업시설 이용과 관련해 특정한 사람을 배제하는 것을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또 유엔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제31조 ‘휴식, 여가, 놀이, 오락활동, 문화활동, 예술에 관한 아동 권리에 대한 일반논평’을 들며 “아동은 사회적 배제, 편견 또는 차별로부터의 자유 등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공동체나 공원, 쇼핑몰 등에 대한 아동의 출입 제한 조치로 인해 아동은 ‘문젯거리’, ‘문제아’라는 인식이 형성됨이 우려되고 이러한 아동에 대한 배제는 아동이 시민으로서 성장하는데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 바 있다”고 상세한 이유를 덧붙였다.
그러자 반발이 일었다. 노키즈존의 형성 배경은 아동에 대한 배제가 아니라 해당 아동을 키우는 부모에게 있다는 것이다. 아동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아동이 인지하지 못하고 하는 타인 피해 행동들을 제재하지 않는 부모를 배제하겠다는 것이 왜 나쁜 것인지 모르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설문조사만 보더라도 노키즈존에 대한 대중의 생각은 뚜렷이 드러난다.
(사진=인크루트)
■ '노키즈존' 찬성과 반대
1년여 전인 지난해 6월 만 5세 미만 아동 인구 비율이 17.8%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경기도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경기도민 1000명 중 93.1%가 공공장소에서 아이들 때문에 불편을 겪었다면서 63.5%가 ‘고객으로서 소란스런 아이들로부터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응답했다.
연령에 따른 노키즈존에 대한 생각과 종사하는 직종에 따른 생각도 눈여겨 볼만하다. 지난 11월 15일,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여론조사업체 두잇서베이가 전국 20대 패널 95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키즈존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3.4%는 ‘공공장소에서 아이들로 인해 불편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전체의 51.1%는 노키즈존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특히 노키즈존이 고객의 행복추구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20대 응답자의 56.0%는 ‘그런 편’이라는 입장이다. 노키즈존이 사회적 차별이냐는 질문에는 44.2%가 ‘그렇지 않은 편’이라고 답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10월 구인·구직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알바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키즈존’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7명꼴로 유아 혹은 유아 동반 부모로 인한 어려움을 겪은 적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알바생들이 가장 난처했던 경험으로는 “소란 피우는 아이를 부모가 제지하지 않는 상황(60.4%)”이 꼽혔다. 해당 근무지로는 음식점(48.6%), 카페(27.3%), 쇼핑센터(6.2%)가 꼽혔다.
이같은 설문조사들은 왜 노키즈존 업소가 확장되고 노키즈존에 대한 찬성 목소리가 높아지는지 알게 한다. 이와 더불어 노키즈존이 왜 논란인지도 피력한다. 일부 아동의 행동으로 인해 피해가 클 수밖에 없는 알바생들 중 24.1%는 노키즈존 사업장 확산을 반대했다. 그 이유로 “일부 개념 없는 부모들의 행동을 일반화하는 것 같아서(40.1%)”, “서로 조금씩 배려하면 해결 된 문제라 생각해서(22.2%)”를 들었다. 인권위의 ‘일부의 사례를 객관적·합리적 이유 없이 일반화한 것’이란 입장과 다르지 않다. 대체적으로 노키즈존이 사업장의 편리와 고객의 공간적 활용을 용이하게 한다는 데 동의하는 동시에 노키즈존 논란이 일부 무개념 부모들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어떨까. 인터넷 유명 육아 커뮤니티 두 곳에 노키즈존에 대한 입장을 확인하는 글을 올려봤더니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100여개의 댓글 중 80%가 넘는 비율로 대다수가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단순한 찬성이 아니라 “대찬성”이라는 말을 붙이는 이들도 더러 보였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대부분 “애당초 부모들이 잘 제재만 했어도 노키즈존이 생기지는 않았을 거다” “너무한 사람들 많아 이해간다” “다 부모 잘못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 가운데 일부는 “노키즈존 웰컴키즈존 확실한 구분이 더 됐으면 좋겠다”는 등 노키즈존 확대로 키즈존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보이기도 했다.
(사진=KTV)
■ 아이는 정말 잠재적 위험 집단인가
노키즈존을 바라보는 대다수는 아이의 잘못을 방관하고 바로잡지 않는 부모로부터 이 문제가 시작됐다는 데 의견이 일치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노키즈존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아이를 부모의 부속이 아닌 주체로 봤을 때 이는 분명 아이의 권리를 침해하는 부분인 탓이다. 그런 점에서 ‘이슈&진단’ 221호에 실린 경기연구원 논문 김도균 유보배 저 ‘노키즈존 확산, 어떻게 볼 것인가’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저자들은 헌법 제 15조에 의거, 영업방침은 업주의 고유한 기본권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공정거래법 제23조 1항 1호 ‘부당하게 거래를 거절하거나 거래의 상대방을 차별해 취급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조항에 빗대면 노키즈존은 정당한 이유없는 거래 거절과 차별적 취급에 해당한다고 명시했다. 또 아이의 출입 제한이 정당화되는 장소는 PC방 밤 10시 이후 출입금지 등처럼 사회적으로 합당한 이유가 필요하다며 기본권 침해까지는 아니더라도 과잉조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내 노키즈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부분을 주목할 만하다. 특정 집단 전체를 잠재적 위험 집단으로 간주하고 사전 차단하고, 유해한 사물 동물과 같은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논문에서 “흡연이 문제가 될 경우 흡연자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흡연이라는 구체적인 행위를 규제한다”면서 “노키즈존은 어린이라는 특정 집단 전체를 잠재적 위험 집단으로 간주하고 사전 차단한다는 점에서 기본권 침해 소지가 발생한다”고 지적한 부분이 그렇다. 특히 아이 출입을 금지하는 픽토그램 역시 노키즈존이 아이를 담배나 애완견 등과 등치하는 것으로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꼬집었다.
(사진=SBS)
그러면서 아이라는 집단 전체가 아닌 아이의 특정 행위만을 문제 삼아야 하되 아이의 출입을 ‘통제’하기보다 ‘아이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한다. 모든 아이가 아닌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 이를 방치하는 부모들에 대한 제재를 하자는 것이다. 또 공공기관 차원의 인성교육 및 육아 네트워크 다변화의 필요성도 주창한다.
결국 사회 전반적으로 다각도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키즈존의 탄생은 분명 사회에 대한 매너를 배워가야 할 아이를 가르치지 않는 일부 부모들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일부가 그렇다고 해서 노키즈존이란 장치를 마련한다는 것이 다수의 행복을 추구해나가는 사회에서 옳은 일인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노키즈존이라는 용어 자체가 ‘아이는 안된다’는 뜻인 것도 차별적 선긋기에 무게를 더한다. 이 부분에 대해 몇몇 전문가들은 노키즈존이 아닌 어덜트존을 마련하자는 말을 하기도 한다. 단순한 말 바꾸기로 비춰질 수 있지만 성인의 권리를 위한 공간으로서의 용어 사용이 노키즈존 등으로 팽배해진 아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는 권리를 차단하고 사회에서 배제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말만 바꿔도 그 의미는 조금 다르게 와닿는다. 각기 다른 입장의 모두가 완벽히 편해지는 길은 없다. 다만 용어의 순화, 대상이 아닌 행동에 대한 제재 등 방식은 ‘차별’이란 그늘 아래 뾰족해진 신경으로 야기하는 논쟁의 여지를 조금이나마 없어지게 만들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