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검은집:죽음을 보는 눈' 스틸컷) [뷰어스=문서영 기자] “내가 어디서든 지켜보고 있을 거야. 네가 벗어나려고 어떤 행동이라도 할라치면 네가 아주 괴로울 벌을 줄거야. 널 믿는 사람은 없어. 세상 사람들에 말해봤자 사회적 신망이 두터운 나를 믿을까, 아니면 이렇다 할 증거도 없이 불안해보이기만 하는 너를 믿을까” 내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으로 인해 모든 것이 차단된다면? 인간관계도 사회적 활동도, 인간의 기본적 욕구 자체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실로 무서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 자유를 앗아간 이유가 다름 아닌 인간의 선입견 때문이라면? 섬뜩하다. 살아가며 형성되는 선입견은 무섭다. 개개인을 속속들이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이를 볼 때 그 사람의 외향과 직업, 배경을 본다. 그리고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일 거야’라고 생각한다. 표면적인 것들에 대한 신뢰는 쉽사리 깨지지 않는다. 누구나 상대의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조언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며 수없이 만나는 사람들 중 누군가의 내면을 들여다 볼 기회는 흔치 않다. 이 때문에 직업, 성별, 나이 등에 수많은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덧씌워진다. (사진='비하인드 도어' 책표지) B.A 패리스의 ‘비하인드 도어’는 바로 이런 점을 파고드는 작품이다. 세간의 선입견이 누군가에겐 얼마나 큰 공포가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잭과 그레이스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부부다. 남편 잭은 승률 100%를 자랑하는 유명 가정 폭력 전문 변호사로 영화배우와 같은 외모까지 갖춘 근사한 남자다. 그레이스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여동생이 있다. 부모마저 거부하는 여동생의 존재까지 보듬어주는 잭은 그레이스에게 있어 최고의 상대였다. 하지만 신혼여행지부터 공포는 시작된다. 잭은 공포의 냄새를 즐기는 사이코패스로 그레이스는 열려 있는 문조차 제 발로 나갈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완벽한 남편. 그러나 남편의 친구 부부 중 한 명은 완벽함 속에서 그레이스의 불안을 눈치채고 그레이스는 잭의 궁극적 목적인 동생을 지키기 위해 남편을 무너뜨릴 계획을 세운다. ‘비하인드 도어’는 심리 스릴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잭은 별다른 것을 하지 않는다. 그저 말로, 상황을 유리하게 돌리는 능력만으로 그레이스가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 초반에는 대체 왜 그레이스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의아해진다. 하지만 ‘비하인드 도어’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시점 교차로 어떻게 그레이스가 잭의 공포에 짓눌려 현재 상황에 이르렀는가를 상세히 설명한다. 특히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한 여자의 공포심만으로 스토리를 끌고 갈 수 있는 힘에 감탄하게 된다. 신선한 트릭이 가득한 정통추리소설이나 다양한 기술의 힘을 빌어 범인을 밝혀내는 범죄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공포, 사이코패스, 부부 등 배경에 으레 등장할 법한 성(性)적인 요소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 작품의 매력을 더한다. (사진=아르테) 작가는 사이코패스인 잭이 성적 흥분자가 아닐뿐더러 성행위 자체를 혐오하는 인물로 설정하며 부부와 공포의 매개체가 될 수 있는 성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다. 그 덕에 ‘비하인드 도어’는 B급 소설에서 벗어나고 더욱 깔끔한 구성과 진행으로 독자를 이끈다. 또 한순간에 보통의 삶을 앗아간 공포의 한가운데서 자신과 여동생을 포기하지 않고 주체적 여성으로서의 신념을 유지해나가는 그레이스는 잭과 더할 나위 없는 짝이다. 그레이스는 벌벌 떨기만 하는 여주인공이 아닌 자존감이 뚜렷한 여성이기에 그레이스의 시점에서, 그레이스의 감정으로만 진행되는 이 책이 자칫 단조롭고 지루하게 흘러갈 여지를 막았다. 그레이스의 자존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잭과 내가 싸운 적이 한 번도 없고 우리가 모든 것에 절대적으로 의견을 같이하며, 내가, 똑똑한 서른두 살의 여성이 아이도 없이 하루 종일 집에서 소꿉놀이하는 데 만족한다는 말을 믿는 그들의 멍청함이 경이로울 정도다” 작가는 이 대목을 통해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 여성이 주체적일 때 그 삶이 어떤 변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그 점에서 이 대목은 ‘비하인드 도어’를 단순한 공포를 물리치는 범죄소설에서 한 단계 격상시킨 것이기도 하다. ‘비하인드 도어’는 신선한 전개가 압도적이다. 유명한 추리소설가들의 작품이나 차고 넘치는 범죄 드라마가 범죄의 방식과 장치에 몰두했다면 ‘비하인드 도어’는 오직 인간의 감정만으로 결말까지 질주한다. 이것이 바로 심리 스릴러의 진수라며 선전포고를 하는 느낌이다. 318쪽에 이르지만 책은 가볍다. 읽어나가며 흐름을 막는 부분도 없다. 초반, 지루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100여 쪽을 지나면 단숨에 읽힌다. 곧 영화로도 만날 수 있다.

한길 사람 속이 가장 무서운 이유

문서영 기자 승인 2017.12.14 23:17 | 최종 수정 2135.11.27 00:00 의견 0
(사진=영화 '검은집:죽음을 보는 눈' 스틸컷)
(사진=영화 '검은집:죽음을 보는 눈' 스틸컷)

[뷰어스=문서영 기자] “내가 어디서든 지켜보고 있을 거야. 네가 벗어나려고 어떤 행동이라도 할라치면 네가 아주 괴로울 벌을 줄거야. 널 믿는 사람은 없어. 세상 사람들에 말해봤자 사회적 신망이 두터운 나를 믿을까, 아니면 이렇다 할 증거도 없이 불안해보이기만 하는 너를 믿을까”

내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으로 인해 모든 것이 차단된다면? 인간관계도 사회적 활동도, 인간의 기본적 욕구 자체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실로 무서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 자유를 앗아간 이유가 다름 아닌 인간의 선입견 때문이라면?

섬뜩하다. 살아가며 형성되는 선입견은 무섭다. 개개인을 속속들이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이를 볼 때 그 사람의 외향과 직업, 배경을 본다. 그리고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일 거야’라고 생각한다. 표면적인 것들에 대한 신뢰는 쉽사리 깨지지 않는다. 누구나 상대의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조언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며 수없이 만나는 사람들 중 누군가의 내면을 들여다 볼 기회는 흔치 않다. 이 때문에 직업, 성별, 나이 등에 수많은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덧씌워진다.

(사진='비하인드 도어' 책표지)
(사진='비하인드 도어' 책표지)

B.A 패리스의 ‘비하인드 도어’는 바로 이런 점을 파고드는 작품이다. 세간의 선입견이 누군가에겐 얼마나 큰 공포가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잭과 그레이스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부부다. 남편 잭은 승률 100%를 자랑하는 유명 가정 폭력 전문 변호사로 영화배우와 같은 외모까지 갖춘 근사한 남자다. 그레이스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여동생이 있다. 부모마저 거부하는 여동생의 존재까지 보듬어주는 잭은 그레이스에게 있어 최고의 상대였다.

하지만 신혼여행지부터 공포는 시작된다. 잭은 공포의 냄새를 즐기는 사이코패스로 그레이스는 열려 있는 문조차 제 발로 나갈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완벽한 남편. 그러나 남편의 친구 부부 중 한 명은 완벽함 속에서 그레이스의 불안을 눈치채고 그레이스는 잭의 궁극적 목적인 동생을 지키기 위해 남편을 무너뜨릴 계획을 세운다. ‘비하인드 도어’는 심리 스릴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잭은 별다른 것을 하지 않는다. 그저 말로, 상황을 유리하게 돌리는 능력만으로 그레이스가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

초반에는 대체 왜 그레이스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의아해진다. 하지만 ‘비하인드 도어’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시점 교차로 어떻게 그레이스가 잭의 공포에 짓눌려 현재 상황에 이르렀는가를 상세히 설명한다. 특히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한 여자의 공포심만으로 스토리를 끌고 갈 수 있는 힘에 감탄하게 된다. 신선한 트릭이 가득한 정통추리소설이나 다양한 기술의 힘을 빌어 범인을 밝혀내는 범죄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공포, 사이코패스, 부부 등 배경에 으레 등장할 법한 성(性)적인 요소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 작품의 매력을 더한다.

(사진=아르테)
(사진=아르테)

작가는 사이코패스인 잭이 성적 흥분자가 아닐뿐더러 성행위 자체를 혐오하는 인물로 설정하며 부부와 공포의 매개체가 될 수 있는 성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다. 그 덕에 ‘비하인드 도어’는 B급 소설에서 벗어나고 더욱 깔끔한 구성과 진행으로 독자를 이끈다. 또 한순간에 보통의 삶을 앗아간 공포의 한가운데서 자신과 여동생을 포기하지 않고 주체적 여성으로서의 신념을 유지해나가는 그레이스는 잭과 더할 나위 없는 짝이다. 그레이스는 벌벌 떨기만 하는 여주인공이 아닌 자존감이 뚜렷한 여성이기에 그레이스의 시점에서, 그레이스의 감정으로만 진행되는 이 책이 자칫 단조롭고 지루하게 흘러갈 여지를 막았다. 그레이스의 자존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잭과 내가 싸운 적이 한 번도 없고 우리가 모든 것에 절대적으로 의견을 같이하며, 내가, 똑똑한 서른두 살의 여성이 아이도 없이 하루 종일 집에서 소꿉놀이하는 데 만족한다는 말을 믿는 그들의 멍청함이 경이로울 정도다”

작가는 이 대목을 통해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 여성이 주체적일 때 그 삶이 어떤 변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그 점에서 이 대목은 ‘비하인드 도어’를 단순한 공포를 물리치는 범죄소설에서 한 단계 격상시킨 것이기도 하다. ‘비하인드 도어’는 신선한 전개가 압도적이다. 유명한 추리소설가들의 작품이나 차고 넘치는 범죄 드라마가 범죄의 방식과 장치에 몰두했다면 ‘비하인드 도어’는 오직 인간의 감정만으로 결말까지 질주한다. 이것이 바로 심리 스릴러의 진수라며 선전포고를 하는 느낌이다.

318쪽에 이르지만 책은 가볍다. 읽어나가며 흐름을 막는 부분도 없다. 초반, 지루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100여 쪽을 지나면 단숨에 읽힌다. 곧 영화로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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