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브이엔터테인먼트 밴드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만든 ‘보헤미안 랩소디’는 무려 6분이 넘는 곡이다. 곡의 퀄리티를 넘어서 분량 때문에 당시 영국 방송·음반계에서 외면을 받았다. 외부의 비판적인 시선에도 굴복하지 않은 프레디 머큐리의 신념은 결국 2019년을 살아가는 동방의 사람들에게까지도 감동을 줬다.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퀸을 놓친 제작자가 될 것”이라며 유명 제작자에게 일갈을 하고 떠나는 프레디 머큐리의 뒷모습은 홀로 길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정모에게 일종의 ‘트리거’(총의 방아쇠를 당긴다는 의미로 결정적 계기를 두고 흔히 쓴다)가 됐다. 정모는 “SM이 나를 놓쳤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퀸은 분명한 성공을 했지만, 나는 아직 결과를 모른다. 제가 음반 작업을 계속 하면서 누군가에게 ‘정모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애구나’라는 걸 알리고 싶다. 트랙스 안의 정모로 있었다면, 아마 SM에서 앨범 꾸준히 내주는 애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게 싫었다. 그럴 때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고 하필 가장 고민이 심할 때 개봉했다. 나는 지나친 운명론자다. 그래서 운명이라 믿고 확고히 결심을 했다”고 회상했다. 운명을 따름으로서 정모는 다양한 현실과 마주하게 됐다. 먼저 집을 구해야 했고, 차도 본인이 운전해야 했다. 부동산을 돌며 발품을 팔아보고, 가격을 흥정해봤으며 가구도 직접 샀다. ‘기타 천재’로 약 15년 동안 SM에서 지내다보니 세상 물정을 굳이 모르고도 편히 살 수 있었는데, 이제는 모든 것을 부딪쳐야 하는 입장이 됐다. 그래도 그 모든 것이 즐겁다고 했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숙식이 제공됐었다. 남들보다 편하게 음악한 건 사실이다. 이제는 내가 돈을 계속 내야 한다. 음반 제작도 마찬가지다. 가장 고민이 됐던 부분”이라고 말한 그는 “난 앞으로 어쩌면 진짜 거지가 될 수 있다. 내가 갖고 있던 거 다 때려박았다. 최악의 경우 정말 힘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생소한 경험인데, 사실 더 일찍 해봤어야 했다. 너무 늦은 셈이다.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아마 남아있었다면, ‘나갈까 말까’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소비했을 것 같다. 제 선택이 맞을지는 모르겠다. 무모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이 선택이 맞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려고 한다”고 의지를 다졌다. SM의 아이돌 친구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덤에 오를 때 그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정모다. 가까웠던 친구가 엄청난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 샘이 나기 마련인데 애초에 방향이 달랐던 정모는 무덤덤했다. 욕심의 방향이 달랐다. 돈 욕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돈을 추구하는 행보는 아니었다. 음악적인 표현에서만 욕심을 부렸다는 게 그의 말이다. “내겐 다른 욕심이 있는 것 같다. 내가 해야겠다는 건 꼭 해야 한다. 남의 의견보다 내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정모는 “‘어벤져스:엔드게임’은 아직도 안 봤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데 별로 안 땡기더라. ‘기생충’은 봤다. 그건 끌렸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총을 맞아서라도 해야 된다. 그 욕망이 발현된 게 희철이 형이랑 낸 앨범이다. 음악적인 욕심이 있어서 그 앨범을 만들었다. 회사를 설득했고 모든 걸 쏟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랑 희철이 형이 다 해서 앨범 제목이 ‘가내수공업’이다”고 말했다. 이 앨범에는 정모의 음악적 역량이 가장 많이 투입된 작품이다. 복고풍 댄스와 스윙 장르, 정통 락발라드에 트롯트까지 온갖 장르를 모두 섭렵한 앨범이다. 정모는 “당시 희철이형이 인기가 많아서 ‘정모를 꽂아줬네’ ‘SM 자선사업’과 같은 말이 있었다. 그런 게 아니라 희철이 형과 제가 음악적 코드가 잘 맞는다. 그래서 회사를 설득해서 만든 앨범이다. 작곡과 작사를 다 우리가 해서 돈도 별로 안 들었다”며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 같다. 돈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진 않는다. 돈은 자연스러운 존재 같다. 1년 동안 1000만원도 못 번적도 있다. SM에 있으면서 그러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브이엔터테인먼트 아이돌그룹이 핵심인 SM에서 밴드의 기타리스트의 포지션은 어쩌면 외로웠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부 동의했다. 정모는 “약간은 외로웠던 것 같다. 그래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던 거 같다. 제이 형이나 신동, 희철이 형, 헨리가 가장 속을 많이 털어놓는 사람들이다. 공통점은 내 것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이라며 “그룹 애들이랑 얘기해보면 걔들의 관심은 음악보다는 퍼포먼스에 있다. 그들 입장에선 내가 답답하고 진부한 사람일 수 있다. 알게 모르게 그런 게 쌓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새 출발을 시작하기엔 어쩌면 좀 늦은 나이일 수도 있다. 음악에 모든 걸 매진하기로 한 그 역시 남자다. 결혼에 대한 압박이 스스로에게나 주변으로부터 충분히 있을 나이다. “연애는 정말 정답이 없다”고 운을 뗀 그는 “결혼은 아직 잘 모르겠다. 최근에 그런 생각은 해봤다. 이 어려운 걸 사람들은 왜 그렇게 하려는 걸까. 도전하다보면 끝을 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계속 덤비는 건 아닐까 생각해봤다. 이런 것도 곡으로 만들어볼까 한다”고 웃음을 짓는 정모는 인터뷰 중에도 새로운 곡이 늘 맞닿아 있었다. 지나친 운명론자로서 앞으로 자신의 운명을 써내려가기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정모의 목표는 ‘지치지 않는 것’이다. 지치고 싶지 않은 그의 마지막 말은 “후회 없는 선택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살겠습니다”였다. 그 목소리에서 왠지 밝은 웃음이 나오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주보기②] 정모, 지나친 운명론자

함상범 기자 승인 2019.08.01 11:49 | 최종 수정 2139.03.01 00:00 의견 0
사진제공=브이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브이엔터테인먼트

밴드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만든 ‘보헤미안 랩소디’는 무려 6분이 넘는 곡이다. 곡의 퀄리티를 넘어서 분량 때문에 당시 영국 방송·음반계에서 외면을 받았다. 외부의 비판적인 시선에도 굴복하지 않은 프레디 머큐리의 신념은 결국 2019년을 살아가는 동방의 사람들에게까지도 감동을 줬다.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퀸을 놓친 제작자가 될 것”이라며 유명 제작자에게 일갈을 하고 떠나는 프레디 머큐리의 뒷모습은 홀로 길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정모에게 일종의 ‘트리거’(총의 방아쇠를 당긴다는 의미로 결정적 계기를 두고 흔히 쓴다)가 됐다.

정모는 “SM이 나를 놓쳤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퀸은 분명한 성공을 했지만, 나는 아직 결과를 모른다. 제가 음반 작업을 계속 하면서 누군가에게 ‘정모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애구나’라는 걸 알리고 싶다. 트랙스 안의 정모로 있었다면, 아마 SM에서 앨범 꾸준히 내주는 애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게 싫었다. 그럴 때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고 하필 가장 고민이 심할 때 개봉했다. 나는 지나친 운명론자다. 그래서 운명이라 믿고 확고히 결심을 했다”고 회상했다.

운명을 따름으로서 정모는 다양한 현실과 마주하게 됐다. 먼저 집을 구해야 했고, 차도 본인이 운전해야 했다. 부동산을 돌며 발품을 팔아보고, 가격을 흥정해봤으며 가구도 직접 샀다. ‘기타 천재’로 약 15년 동안 SM에서 지내다보니 세상 물정을 굳이 모르고도 편히 살 수 있었는데, 이제는 모든 것을 부딪쳐야 하는 입장이 됐다. 그래도 그 모든 것이 즐겁다고 했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숙식이 제공됐었다. 남들보다 편하게 음악한 건 사실이다. 이제는 내가 돈을 계속 내야 한다. 음반 제작도 마찬가지다. 가장 고민이 됐던 부분”이라고 말한 그는 “난 앞으로 어쩌면 진짜 거지가 될 수 있다. 내가 갖고 있던 거 다 때려박았다. 최악의 경우 정말 힘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생소한 경험인데, 사실 더 일찍 해봤어야 했다. 너무 늦은 셈이다.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아마 남아있었다면, ‘나갈까 말까’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소비했을 것 같다. 제 선택이 맞을지는 모르겠다. 무모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이 선택이 맞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려고 한다”고 의지를 다졌다.

SM의 아이돌 친구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덤에 오를 때 그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정모다. 가까웠던 친구가 엄청난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 샘이 나기 마련인데 애초에 방향이 달랐던 정모는 무덤덤했다. 욕심의 방향이 달랐다. 돈 욕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돈을 추구하는 행보는 아니었다. 음악적인 표현에서만 욕심을 부렸다는 게 그의 말이다.

“내겐 다른 욕심이 있는 것 같다. 내가 해야겠다는 건 꼭 해야 한다. 남의 의견보다 내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정모는 “‘어벤져스:엔드게임’은 아직도 안 봤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데 별로 안 땡기더라. ‘기생충’은 봤다. 그건 끌렸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총을 맞아서라도 해야 된다. 그 욕망이 발현된 게 희철이 형이랑 낸 앨범이다. 음악적인 욕심이 있어서 그 앨범을 만들었다. 회사를 설득했고 모든 걸 쏟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랑 희철이 형이 다 해서 앨범 제목이 ‘가내수공업’이다”고 말했다.

이 앨범에는 정모의 음악적 역량이 가장 많이 투입된 작품이다. 복고풍 댄스와 스윙 장르, 정통 락발라드에 트롯트까지 온갖 장르를 모두 섭렵한 앨범이다.

정모는 “당시 희철이형이 인기가 많아서 ‘정모를 꽂아줬네’ ‘SM 자선사업’과 같은 말이 있었다. 그런 게 아니라 희철이 형과 제가 음악적 코드가 잘 맞는다. 그래서 회사를 설득해서 만든 앨범이다. 작곡과 작사를 다 우리가 해서 돈도 별로 안 들었다”며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 같다. 돈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진 않는다. 돈은 자연스러운 존재 같다. 1년 동안 1000만원도 못 번적도 있다. SM에 있으면서 그러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브이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브이엔터테인먼트

아이돌그룹이 핵심인 SM에서 밴드의 기타리스트의 포지션은 어쩌면 외로웠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부 동의했다.

정모는 “약간은 외로웠던 것 같다. 그래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던 거 같다. 제이 형이나 신동, 희철이 형, 헨리가 가장 속을 많이 털어놓는 사람들이다. 공통점은 내 것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이라며 “그룹 애들이랑 얘기해보면 걔들의 관심은 음악보다는 퍼포먼스에 있다. 그들 입장에선 내가 답답하고 진부한 사람일 수 있다. 알게 모르게 그런 게 쌓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새 출발을 시작하기엔 어쩌면 좀 늦은 나이일 수도 있다. 음악에 모든 걸 매진하기로 한 그 역시 남자다. 결혼에 대한 압박이 스스로에게나 주변으로부터 충분히 있을 나이다.

“연애는 정말 정답이 없다”고 운을 뗀 그는 “결혼은 아직 잘 모르겠다. 최근에 그런 생각은 해봤다. 이 어려운 걸 사람들은 왜 그렇게 하려는 걸까. 도전하다보면 끝을 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계속 덤비는 건 아닐까 생각해봤다. 이런 것도 곡으로 만들어볼까 한다”고 웃음을 짓는 정모는 인터뷰 중에도 새로운 곡이 늘 맞닿아 있었다.

지나친 운명론자로서 앞으로 자신의 운명을 써내려가기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정모의 목표는 ‘지치지 않는 것’이다. 지치고 싶지 않은 그의 마지막 말은 “후회 없는 선택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살겠습니다”였다. 그 목소리에서 왠지 밝은 웃음이 나오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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