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세일가스 혁명,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 강화, 천연가스 의존도 감축 등의 이유로 국내 조선업이 장기불황 터널을 빠져나와 초호황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소식은 침체된 경기에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이러한 때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과정에 있고,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신고 및 심사 절차를 진행 중이다. 유럽연합(EU)‧일본‧베트남‧중국‧싱가포르‧영국‧튀르키예 등 7개 해외 경쟁당국에서 이미 해당 기업결합을 승인했기에 이달 말 예정된 공정위 전원회의 심의에서 마무리 될 전망이다. 이에 공정거래법상 기업결합 통제가 이뤄지는 절차나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기업결합 통제는 크게 기업결합의 신고(절차적 규제)와 기업결합의 심사(경쟁제한성 판단)로 구분된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기업결합을 할 수 있으나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결합은 규제를 받는다. 즉, 공정거래법은 회사에 대해 기업결합 신고의무를 부과하고, 특히 대규모 회사(자산총액 또는 매출액 규모가 2조원 이상인 회사)에 의한 기업결합의 경우 경쟁 제한성이 문제될 소지가 높아 사전신고 의무를 부과한다.
공정위가 기업결합의 신고를 받으면, 신고일로부터 30일(최장 120일) 내에 기업결합의 위법성 여부를 심사하고 그 결과를 신고자에게 통지해야 한다. 기업결합 규제의 목적은 둘 이상의 기업이 기업결합을 통해 하나의 관리체제 하에 통합됨으로써 야기되는 경쟁제한적 효과를 방지하는 데 있다.
이에 공정위는 ①해당 기업결합으로 인한 지배관계의 형성 여부, ②일정한 거래분야(relevant market, 이하 “관련시장”)의 획정, ③관련시장에서 경쟁제한적인 기업결합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심사하게 된다. 즉, 기업규모가 커지면서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을 제약해서 신규 업자가 진입하는 것은 제한하거나 독과점 형태가 돼 공정한 거래가 저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심사다.
당초 한화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은 순조롭게 승인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초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시도했을 때는 ‘LNG 운반선 시장’ 독과점으로 특정 산업 분야 시장 지배력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로 인해 인수 불허 결정이 나왔지만 한화와의 기업결합은 이러한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화가 기업결합 승인 신청을 한 이후 약 한 달 만에 튀르키예 당국이 인수 건에 무리가 없다며 조속한 기업결합 허가를 냈고, 다른 경쟁당국도 연이어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그런데 공정위는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경우 ‘군함 시장’에서 일부 수직 결합이 발생한다고 판단, 이에 따른 ‘봉쇄효과’ 발생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경쟁사인 HD현대의 수차례에 걸친 이의제기도 공정위에 압박을 줬다.
‘수직 결합’이란 서로 다른 거래단계에 속하는 사업자 사이의 결합을 의미하는데, 군함 시장에서 경쟁사업자의 다른 거래단계에 대한 접근성을 봉쇄하거나 제한하는 시장봉쇄의 경쟁제한 효과가 나타날 우려가 있을 때 규제를 한다. 즉, 관련시장을 ‘국내 LNG 운반선 시장’으로 획정하는 경우와 ‘국내 군함 시장’으로 획정하는 경우의 기업결합의 유형이 다르게 평가되고 그에 따른 경쟁제한성 심사 기준도 달라지므로, 이번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 심사에서도 관련시장의 획정이 중요한 전제가 됐다.
대법원에 의하면 ‘관련 상품에 따른 시장’은 일반적으로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상품들의 범위를 말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거래되는 상품 가격이 상당 기간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수준으로 인상될 경우 그 상품의 대표적 구매자가 이에 대응해 구매를 전환할 수 있는 상품의 집합을 의미한다. 그 시장의 범위는 거래에 관련된 상품의 가격, 기능 및 효용의 유사성, 구매자들의 대체가능성에 대한 인식 및 그와 관련한 구매행태는 물론, 판매자들의 대체가능성에 대한 인식 및 그와 관련한 경영의사의 결정행태, 사회적·경제적으로 인정되는 업종의 동질성 및 유사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이 밖에도 기술발전의 속도, 그 상품의 생산을 위하여 필요한 다른 상품 및 그 상품을 기초로 생산되는 다른 상품에 관한 시장의 상황, 시간적·경제적·법적 측면에서의 대체의 용이성 등도 함께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6두6659 판결 등).
한화가 레이더‧항법장치 등 군함 부품‧소재 시장에서 독점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군함 시장에서 함정 수주 입찰시 대우조선해양에 비해 타 경쟁사가 불리해질 수 있으므로 공정위의 지적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번 기업결합의 주된 목적이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경영 정상화를 이루고, 궁극적으로 국내 조선업의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에 있었던 만큼 신속한 기업결합 승인이 요구됐다는 점이다.
행정절차의 신속한 진행은 절차적 정의로서 보호돼야 하고, 유럽연합 등 7개 경쟁당국은 이미 조속한 합병 승인 결정을 했다는 점에서 신속성 필요가 있다. 실제로 기업결합 승인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대우조선해양의 LNG 운반선 수주량은 감소했고, 이는 결국 국내 조선시장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대규모 회사에 의한 기업결합에 경쟁제한성이 나타날 경우 그에 따른 폐해가 중대하므로, 기업결합 심사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산업의 사이클, 국제 경기 흐름 등에 민감한 조선업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늦은 의사결정은 오히려 이해관계자의 분란을 조장하고 기업결합의 당초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 신속한 의사결정이야 말로 당사회사들이 속한 시장은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사안이다.
■ 김경렬 변호사 프로필
케이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현), 서울대 법대, 사시 46회, 법무법인 세종,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 전문위원(현), 금감원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자문위원(현),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이의신청위원회 위원(현), 손해보험협회 자동차사고 과실비율심의위원회 위원(현), 성남수정.용인동부.용인서부 각 경찰서 경미범죄심사위원회 위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