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하준 오비맥주 대표가 '카스 올림픽 에디션'을 들어보이고 있다비맥주 대표가 '카스 올림픽 에디션'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오비맥주)
올해 국내 맥주 업체들이 신제품을 쏟아내며 길었던 여름을 한층 뜨겁게 달군 가운데 배하준 오비맥주 대표의 리더쉽이 조명받고 있다. 비결은 소통 경영에서 비롯된 혁신. 오비맥주는 치열해진 경쟁 속에서도 줄곧 국내 맥주 1위를 수성하며 성벽을 더욱 두텁게 쌓는 모습이다.
26일 오비맥주에 따르면 ‘카스 프레시’는 올해 상반기 가정용 맥주 시장에서 점유율 44%를 기록하며 13년 연속으로 맥주 브랜드 1위 자리를 지켰다. 최근 5년 중 가장 높은 점유율을 기록했던 지난해 상반기(42.3%)와 비교해도 1.7%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카스’ 선전에 힘입어 오비맥주 전체 점유율도 55.3%로 2.2%포인트 성장했다.
■위기 속 ‘혁신’으로 지킨 1위
배하준 대표가 취임한 2020년, 오비맥주는 녹록지 않은 환경을 맞닥뜨리고 있었다. 2019년 초 하이트진로가 출시한 ‘테라’가 돌풍을 일으키며 시장을 잠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9년 말부터는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며 전체 시장을 위축시켰다. 실제로 오비맥주 매출, 영업이익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 연속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2018년 매출은 1조6982억원, 영업이익은 5145억원이었지만, 2021년엔 각각 1조3445억원, 262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카스 점유율도 2019년 41.3%에서 2021년엔 38.6%까지 감소했다.
특히 테라가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유흥 채널에서 존재감을 확장한 것이 오비맥주의 위기감을 키웠다. 앞서 2011년 카스가 1위로 올라서기까지 주로 사용한 전략이 대학가 등에서 젊은 층을 겨냥한 마케팅을 통한 충성 고객 확보였기 때문이다. 젊은 소비자를 놓친다면 당장에는 시장 지배적 위치를 유지하더라도 장기적으로 1위 자리가 흔들릴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배 대표는 과감한 혁신을 돌파구로 삼았다. 대표적인 것이 2021년 카스의 투명병 도입이다. 당시 국내 맥주 대부분은 특유의 갈색병을 사용하고 있었다. 유통 과정 중 직사광선 노출에 따른 맥주 맛 변질을 일정 부분 막아주기 때문이었다. 배 대표는 ‘올 뉴 카스’를 새롭게 선보이며 투명병을 도입했다. 단순한 용기 변화를 넘어 청량감과 신선함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브랜드에 ‘심플함’과 ‘투명성’ 이미지를 입힌다는 전략이었다. 용기 변화에 발맞춰 맥주 원재료, 공법 등에도 전면적인 변화를 줬다. 목표는 ‘MZ 세대’ 입맛 공략이었다.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 트렌드와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배 대표의 생각이었다. 배 대표는 ‘카스’ 혁신에 더해 비알코올 음료와 저도수 제품을 확대하며 주류 소비 트렌드 변화를 따라잡는 데 집중했다. 배 대표가 취한 혁신은 곧 결과로 드러났다. 카스 점유율은 2022년 41.3%로 반등했다. ‘리오프닝’ 효과에 카스 점유율 확대가 더해지면서 3년간 하락세를 유지하던 실적도 상승세로 돌아섰다. 매출과 영업이익, 영업이익률은 각각 16%, 38.1%, 3.7%포인트씩 증가했다. 오비맥주의 상승세는 올해 상반기까지도 이어졌다.
■성공적 혁신 원동력은 ‘소통 경영’
배하준 오비맥주 대표. (사진=오비맥주)
배 대표의 혁신 전략이 성공을 거둘 수 있던 원동력은 ‘소통 경영’이라는 평가다. 배 대표가 취임과 동시에 ‘벤 베르하르트’라는 본명 대신 ‘배하준’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지은 것도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임직원 및 소비자와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진심을 담은 소통 의지는 외국인 최장수 대표로 오비맥주를 5년간 이끄는 밑바탕이 됐다.
벨기에 출신인 배 대표는 2001년 AB인베브에 입사한 이후, 벨기에 영업 임원, 룩셈부르크 사장, 남유럽 지역 총괄 사장 등 다양한 역할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영업과 물류를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 성과를 올렸으며 2017년부터는 인도·남아시아 지역 사장을 역임한 바 있다. 20년 이상 글로벌 맥주 비즈니스 경력을 가진 전문가로, 맥주 업계에서도 혁신과 전문성을 두루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배 대표가 지닌 글로벌 경험은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오비맥주에 곧장 이식됐다. 배 대표는 먼저 임원실을 없애고 모든 임직원이 같은 공간에서 업무를 보게끔 했다. 수평적 기업문화를 지향하기 위해서다. 조직 문화를 강화하고 자유롭고 활발한 소통 분위기를 조성해 팀워크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업무 능률도 향상시킨다는 복안이다. 지난해 3월부터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근무지 자율선택제’를 도입해 근무환경 선택의 탄력성을 높였다. 직급 대신 ‘닉네임’을 부르도록 해 직원들 간 장벽도 허물었다.
배하준 오비맥주 대표는 “경영진이 포용적이고 격식 없는 환경을 추구해야 직원들이 더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질문하면서 과감하게 반대 의견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배 대표가 이식한 선진적 기업문화는 오비맥주 임직원 소속감을 결집하고, 창의적 아이디어와 효율적인 업무 수행을 촉진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통 중심 경영 철학이 혁신적인 마케팅으로 이어진 셈이다.
■“품질 타협 없다”…다음 목표는 ‘글로벌’
국내 입지를 다시금 탄탄히 다진 오비맥주는 이제 해외 시장을 눈에 담고 있다. 이를 위해 배 대표가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품질 강화’다. 배 대표는 오비맥주 이천 공장에 있는 이노베이션 센터에서 직접 제품에 대한 연구와 테스트를 진두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뉴 카스’에 도입한 비열처리 공정(가열 대신 필터로 효모를 걸러내는 방식)과 콜드브루 공법(0℃에서 72시간 저온 숙성으로 품질을 안정화하는 과정)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라거맥주 특유의 톡쏘면서도 깔끔한 맛을 구현하기 위해 오비맥주 ‘브루마스터’ 역시 손을 거들었다. 이를 통해 오비맥주는 해외 맥주들과도 경쟁할 수 있는 맛을 갖췄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배 대표는 ‘국내 1위 맥주’라는 상징성을 활용해 ‘카스’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특히 올해 개최된 ‘2024 파리 올림픽’은 절호의 기회였다. 배 대표는 올림픽 공식 파트너로 선정된 ‘카스’와 '카스 0.0'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맥주 브랜드 논알코올 음료가 파트너로 참여하는 첫 사례기도 했다. 파리 현지에서는 카스 전용 홍보 공간인 ‘카스 포차’를 운영하며 ‘한국 맥주’로서 카스를 적극 홍보했다. 접이식 간이 테이블과 플라스틱 의자 등 한국식 포장마차 특유의 감성을 현지에 고스란히 전달했다. 단순히 맥주 브랜드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 주류문화를 홍보한다는 전략이었다.
배 대표는 올림픽 홍보 캠페인을 마친 뒤 최근 다시 한번 글로벌 진출을 위한 ‘과감한 혁신’에 나섰다. ‘맥주 전문 기업’을 표방하던 오비맥주가 지역소주 업체인 ‘제주소주’를 인수한 것. 게다가 소주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제주소주가 생산 및 수출하던 리큐르 소주 제품을 활용해 ‘카스’를 해외에 알린다는 도전적인 발상이었다. 로컬 맥주가 강세를 보이는 맥주 주종의 특성상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소주가 ‘K-증류주’로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는 만큼, 카스를 함께 소개해 제품이 아닌 ‘한국 주류 문화’를 수출한다는 복안이다.
배하준 오비맥주 대표는 “카스는 대한민국 맥주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으며, 단순한 맥주를 넘어 사람들 사이에서 축하와 소통, 추억을 만드는 매개체로서 역할을 해왔다”면서 “타협하지 않는 최고 품질 맥주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것이며, 맥주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서 전세계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