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업들은 분주하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국내외 정치·경제 불확실성 속에서도 AI시대에 순응할 사업 전략을 짜야하고, 매년 연초 이뤄지는 회계결산 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특히 회계결산은 지난 1년 임직원들의 열정과 땀의 결실인 만큼 투자자 및 채권자 등 회사와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에게 보여줘야 하기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국내 상장사들과 일정 규모 이상의 비상장사들은 외부감사법에 따라 연초가 되면 외부감사를 받아야 한다. 기업은 이를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적정 감사의견을 받기 위해 엄격한 감사를 받아야 한다. 수준 높은 외부감사는 투자자 보호와 기업 모두를 위해서도 매우 필요한 일이다. 이에 정부는 회계법인이 수행하는 외부감사와 관련해 기업 회계투명성을 강화하고 감사품질을 글로벌스탠다드 수준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지난 2017년 외부감사법을 전면 개정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감사인의 독립성 향상과 전문성 제고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도입 6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실무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외부감사의 중요성만큼 기업의 현실적 애로가 더 커졌다. 또 외부감사 결과가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만큼 기업은 기본적인 결산감사 외에도 다양한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상장기업과 일부 비상장대기업들은 IFRS(국제회계기준)를 적용받는다. 원칙 중심의 회계인 IFRS는 국내에선 일선 회계사들도 해석에 어려움을 겪곤 한다. 기업의 내부통제를 고도화한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한 검토 혹은 감사 역시 전반적인 시스템 구축 및 감사를 위한 조직 정비 등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이 소요된다. 이 외에 우리나라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표준감사 시간제도, 주기적 지정제도 등은 여전히 기업들에 큰 부담이다.
표준감사 시간제도 도입에 따른 표준화의 오류, 일정기간이 지나면 새 회계법인 감사를 받아야 하는 주기적 지정제도에 따른 비용과 비효율성은 중소 상장사들로선 더 가혹하게 다가온다. 회계투명성과 감사품질 제고를 위해 도입된 제도들에 대한 부작용을 재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외부감사 결과 제시되는 감사의견이 충실한 감사절차 수행의 결과인지 기업들로선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점도 문제다. 조서를 리뷰해 볼 수 있는 권한도 없다. 결국 어느 회계법인이 더 충실하게 감사조서를 작성하는 지를 알기 어렵다는 의미다. 외부감사에 필요한 감사시간의 경우 전문성을 가진 회계법인이 산정하면 기업 실무진이 이의 적정성을 검증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장에선 실제로 감사인이 제시하는 감사시간에 맞춰 감사계약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곧 기업의 감사비용과 직결된다.
감사인의 독립성 제고를 위해 기업은 6년간 자유수임을 하면 무조건 이후 3년은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하는 회계법인과 외부감사 계약을 맺어야 한다. 제도의 효과를 논하기에 앞서 기업은 당장 2배 이상의 비용 부담을 져야한다. 자유시장 질서에 반해 강제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기업으로선 협상력이 없다.
비용 부담 외에도 감사인 지정으로 인한 감사인 변경은 전기 감사인과 당기 감사인간 의견 불일치라는 문제도 종종 일으킨다. 회계처리 방식이나 회계기준 해석 및 적용 등에 대한 의견 차이가 주요 쟁점이다. 이는 적정한 결산을 통해 투자자에게 정확한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 가장 기본인 기업에게 매우 답답하게 다가온다. 1년간 열심히 일한 기업들이 분식회계가 아닌 단순한 회계처리 방식의 차이 등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은 감사인의 독립성 이슈와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 역시 문제가 많다. 기업의 재무제표가 적정하게 작성됐다는 외부감사 의견과 별개로 내부회계관리제도 의견이 부적정하게 나오면 투자자 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 재무보고를 위한 내부통제가 잘 이뤄지지 않았는데 최종 재무제표는 신뢰할 수 있다고 의견을 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적인 오류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런 면에서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는 오히려 감사인에게도 큰 리스크일 수 있다. 감사의견보다는 내부통제가 잘 이뤄지도록 시스템에 대한 점검 및 보완이 더 중요한 이유다. 현재 상장기업 기준 자산총액 1천억원 미만 기업에만 감사가 면제되고 검토만 하는 상황인데 향후 전 기업을 대상으로 '검토'로 낮출 필요가 있다.
규제관련 이슈보다 더 중요한 지점이 있다. 현재 외부감사와 관련해 최근 가장 큰 이슈는 '디지털 감사'다. 최근 딥시크(DeepSeek)로 화제가 된 AI 기술이 모든 산업분야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디지털 감사 확산으로 감사시간은 획기적으로 단축될 가능성이 열렸다. 그럼에도 감사의 품질은 더 높아질 것이란 기대가 높다. 첨단 기술로 비용 부담 없이 양질의 재무제표가 만들어지고 투자자보호가 용이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앞으로 외부감사의 한단계 레벨업을 위해선 얼마나 더 꼼꼼하게 규제하느냐의 이슈보다는 AI기술과 디지털 감사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의 문제에 달려있다고 본다.
기업과 회계는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굳이 선후를 나눌 것도 없다. 동반성장이 가장 이상적이다. 건강하고 지속성장하는 기업에게는 글로벌스탠다드에 부합하는 회계서비스가 필수다. 수많은 제도가 도입돼 기업에 적용되고 있지만 모두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기업에게 꼭 필요한 것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반대로 기업에게 피해가 더 큰 제도들에 대해선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
불필요한 규제들은 본래 취지와 달리 기업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 한 해 동안 열심히 일한 기업들이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고 투자자와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보다 투명하게 다가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외부감사와 관련된 모든 이들의 더 깊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김종선 대표는 경영학박사로, 현재 기업 경영 자문 및 밸류업 관련 전문컨설팅회사를 운영 중이다. 30여년간 코스닥협회 등에서 상장회사관련 제도개선 및 상장회사 지원 업무를 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초기기업부터 상장회사까지 성장 과정 전반에 관한 전문적 자문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아울러 벤처 및 상장회사 관련 제도개선에도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등 기업 애로사항 해소를 위한 부분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