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빙그레)
“알고 보면 똑같은 아이스크림이 아닙니다. 투게더는 원유가 들어있는 아이스크림만 고집합니다.”
빙그레가 지난 1999년 ‘투게더’ CF에서 사용했던 문구입니다. 원재료를 핵심 광고카피로 내세울 만큼 50%가 넘는 국내산 원유 함량은 ‘고급 아이스크림’으로서 투게더 브랜드의 정체성인데요. 1974년 출시 이후 무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같은 원료로 같은 맛을 유지했다는 점은 빙그레가 품은 자부심이기도 하죠. 투게더가 ‘고급 아이스크림’이라는 부분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시중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친숙한 제품인 데다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기 때문이죠.
‘프리미엄’을 표방한 브랜드들과 비교하면 가격대가 훨씬 낮은 편이고, 900ml라는 용량을 고려하면 ‘바’나 ‘콘’ 형태 아이스크림보다 훨씬 저렴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투게더는 출시 이후 줄곧 ‘고급 아이스크림’을 표방해 왔습니다. 1974년 국내 최초 ‘정통 아이스크림’으로 시장에 선보였던 당시 투게더 가격은 600원이었는데요. 그 시절 빙과시장 주류 제품은 흔히 '아이스께끼'로 불리던 저가 샤베트였는데, 이들 제품 가격대는 10원대에 불과했습니다. 투게더는 특별한 날 가족들이 ‘함께’ 모여 겨우 맛볼 수 있던 귀하신 몸이었죠.
물론 단순히 가격이 비싸서 ‘고급’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투게더는 첫선을 보였을 때부터 50%가 넘는 원유 함량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원유보다 훨씬 저렴한 탈지분유를 사용하는 제품이 많지만, 빙그레는 원유만으로 구현할 수 있는 맛과 식감을 유지하기 위해 51년째 국내산 원유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사실 투게더는 빙그레에서도 마진율이 그다지 높지 않은 제품으로 꼽힙니다. 좋은 원재료는 필연적으로 높은 원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수익성보다 품질력을 우선한 결단은 떠먹는 아이스크림 시장 부동의 1위라는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출시 이후 누적 판매량만 7억개를 넘어섰을 정도죠.
세월이 흐르면서 투게더가 지닌 ‘고급 아이스크림’이라는 이미지는 상당 부분 흐릿해졌지만, 빙그레의 품질에 대한 고집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투게더 출시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먹거리가 다양해진 요즘이지만, 여전히 비슷한 가격대에서 투게더와 비견되는 맛을 제공하는 제품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꾸준히 유지한 맛과 품질은 투게더가 '국민 아이스크림'으로 오랜 세월 인기를 끄는 원동력이 됐죠. 이같은 고집은 국내 최초 정통 아이스크림이라는 자부심과도 연결돼 있습니다.
빙그레 '투게더' 패키지 변천사. (사진=빙그레)
빙그레(당시 대일유업)는 1972년 분유가 아닌 생우유를 원료로 사용해 ‘미국 아이스크림을 능가하는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을 개발하겠다는 대담한 도전에 나섰습니다. 당시 국내에는 유제품인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기술이 없었을뿐더러, 생산원가도 비싸서 우유가 함유된 ‘정통 아이스크림’은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이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설탕물을 얼린 ‘아이스께끼’가 빙과 시장에서 주류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죠.
당시 빙그레는 미국 퍼모스트 멕킨슨사와 기술제휴를 맺고 있었는데, 이들조차 빙그레에 협조하지 않아 독자적으로 기술개발에 나서야 했습니다. 투게더는 이후 2년여간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힘겹게 탄생하게 됐는데요. 국내 최초로 ‘정통 아이스크림’을 자체 개발했다는 점은 이후 빙그레의 자부심이 됐습니다.
기존 아이스께끼의 수십배에 달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투게더는 출시와 동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대리점 차량들은 매일 투게더 제품을 먼저 공급받기 위해 빙그레 공장 앞에 길게 늘어섰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비싼 가격 때문에 아버지 월급날이나 각종 기념일 등 특별한 날에 온 가족이 모여야만 먹을 수 있었지만, 이로 인해 ‘고급 아이스크림’이라는 인식은 보다 빠르게 자리 잡았습니다. 제품명에 담긴 ‘온 국민이 함께, 온 가족이 함께 정통 아이스크림을 즐기자’는 취지도 자연스럽게 확산됐죠. 오늘날까지 ‘함께’라는 기치는 투게더 브랜드 정체성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빙그레는 원재료에서부터 맛과 품질, 패키지 디자인까지 투게더에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유지해 왔는데요. 우유 가격이 요동칠 때마다 내부에서 원재료를 분유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빙그레 역사와 자부심’이 담긴 제품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소비자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이유로 낮은 수익성을 감내했습니다. 덕분에 충성 고객도 탄탄해서, 투게더가 잠시 단종됐던 시기엔 “왜 제품을 찾아볼 수 없느냐”는 고객 문의가 빗발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오래도록 정체성을 고수해 온 장수 제품이지만, 최근 투게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아이스크림 주요 소비층인 유소년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1인가구 비중이 확대되는 등 시장 상황이 격변을 맞고 있기 때문인데요. 소용량 아이스크림 시장을 겨냥해 기존 제품 대비 용량을 3분의1 수준(270ml)으로 줄인 ‘투게더 미니어처’ 제품을 선보였고, 젊은층 소비자와 접점을 확대하기 위해 독창적인 세계관으로 꾸민 팝업스토어 등 마케팅에도 혁신을 더하고 있죠. 맛과 품질은 유지하되 소비트렌드 변화를 반영하면서 50년을 넘어 100년을 이어갈 수 있는 브랜드로 자리 잡겠다는 포부입니다.
빙그레 관계자는 “투게더는 본격적인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을 개척한 대표 제품으로 오랜 기간 고객 사랑을 받아 왔다”면서 “대표 브랜드로서 정체성은 지켜가되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다양한 형태 제품을 출시하고 고객에게 새롭게 다가가기 위한 새로운 마케팅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