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건설사 로고와 신사업 관련 AI 일러스트. (사진=생성형AI, 뷰어스)
국내 건설사들이 ‘건축물만 짓는 회사’에서 벗어나 미래 먹거리를 겨냥한 전략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최근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신사업 방향을 공식화하고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데이터센터, 현대엔지니어링은 전기차 충전 인프라,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수소경제에 진입하며 전통 산업에서 ‘미래 산업 설계자’로 진화하고 있다. ESG와 에너지 전환 흐름에 대응한 전략이지만, 수익 회수까지 5~7년이 걸리는 만큼 속도 조절과 재무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
■ HDC현대산업개발, 데이터센터 중심 ‘디지털 인프라 기업’ 변신
HDC현대산업개발은 마곡, 성수, 용산 등 서울 주요 도심 지역에서 대규모 데이터센터 개발을 추진하며, 기존 주택·복합개발 중심의 포트폴리오에서 디지털 인프라 중심 기업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특히 마곡 HDC디지털밸리는 7000랙 규모의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로 조성되며, 설계부터 시공, 운영까지 전 과정을 자체화한 수익형 자산 모델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2025년 3월 26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회사는 데이터센터 사업의 전략 추진 현황을 공유하며, 모바일 기반 품질관리 시스템, AI 주거혁신, 조직문화 개선, 부채비율 관리 등과의 연결고리를 강조했다. 단순한 시공회사를 넘어 디지털 기반 자산 운영 역량을 갖춘 종합 인프라 기업으로 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창사 50주년을 앞두고 HDC가 꺼낸 청사진은 단기 수익을 넘은 미래 사업 중심 재편을 상징한다.
■ 현대엔지니어링, 전기차 충전 7100기 돌파…“EVC 토탈 솔루션 기업” 선언
현대엔지니어링이 전국적으로 확장 중인 HE스테이션은 단순한 충전 기능을 넘어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 에너지관리시스템(EMS)을 통합한 미래형 충전소 모델로, 2025년 3월 기준 7100기 이상의 충전기를 운영 중이다.
특히 환경부의 ‘전기차 완속충전시설 보조사업자’에 3년 연속 선정되며, 정책 기반 확장에서도 강점을 보였다.
현대엔지니어링이 환경부가 주관하는 ‘2025년 전기자동차 완속충전시설 보조사업자’로 선정되며,?3년 연속 사업수행기관 자격을 획득했다고 26일 밝혔다. (사진=현대엔지니어링)
회사는 충전소 관제와 유지보수를 24시간 실시간으로 수행하는 ‘EVC 통합관제센터’를 구축했으며, CPO(Charge Point Operator) 사업은 물론 EV버스용 충전 인프라, 홈충전기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2030년까지 누적 4만 기 운영 목표를 설정했으며, 현대차그룹의 E-CSP 플랫폼과 연계한 시너지 확보와 더불어 북미·유럽·인도네시아 등 글로벌 진출도 동시에 추진 중이다.
산업은행 EV 인프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충전 인프라는 초기 고정비가 큰 산업이지만 일정 수준의 이용률을 확보할 경우 평균 4~5년 내 손익분기점을 달성할 수 있어 장기적 수익성이 충분한 구조로 평가된다.
■ 삼성물산, 수소·에너지 사업 공식화…글로벌 태양광·SMR 동시 전개
삼성물산은 정관에 ‘수소 발전’을 새로운 사업 목적으로 추가하며, 수소 중심 에너지 사업 진출을 공식화했다. 김천 태양광 발전소와 연계한 그린수소 실증사업을 추진 중이며, 상사부문에서는 암모니아 트레이딩과 수소 유통망 투자도 병행하고 있다.
또한, 건설부문은 중동 최대 규모인 카타르 태양광 프로젝트 수행과 함께, 유럽 SMR 사업 확대 및 한국수력원자력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원전 EPC 시장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삼성물산은 ‘친환경 종합 인프라 기업’으로의 체질 개선을 선언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EPC 역량과 신재생 기술의 융합으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 현대건설, 수소와 원자력 ‘이중 축 전략’…국내외 통합 인프라 구축
현대건설은 부안 지역에 국내 최대 수전해 수소 생산시설을 착공, 올해 6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루 1톤 이상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이 시설은 향후 청정수소의 저장·출하까지 가능한 통합형 수소기지로 확장될 예정이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협업해 하루 4톤 이상을 생산 가능한 패키지형 수소 인프라도 오는2026년까지 구축할 계획이다.
이번 3월 주주총회에서 현대건설은 원자력 부문에서의 성과도 함께 공개됐다. 회사는 미국 홀텍과의 SMR-300 공동개발, 한국재료연구원과의 원전 소재 기술 협력, 인디안포인트 원전 해체 프로젝트 등 차세대 원전사업 진출 사례를 소개했다.
이와 함께 스마트팜, 바이오가스, 조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다각화 전략을 통해, 에너지·도시·스마트 인프라 융합기업으로의 진화를 선언했다.
현대건설이 미국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업체 홀텍과 함께 미국 미시간주에 300㎿급 SMR 2기 건설을 추진한다. 지난 25일(현지시각) 미국 미시간주 팰리세이즈 원자력 발전단지에서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오른쪽)와 크리스 싱 홀텍 회장이 사업 확장 합의서에 서명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건설)
■ DL이앤씨, 미국 X-Energy와 SMR 표준화 동행…글로벌 EPC 경쟁력 강화
DL이앤씨도 미국의 SMR 전문기업 X-Energy와의 협업을 통해 글로벌 SMR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24일 주주총회에서는 X-Energy와 함께 노르웨이, 인도네시아 등에서 EPC 프로젝트를 추진 중임을 밝히며, 글로벌 에너지 전환 시장에서의 선점 전략을 강조했다.
X-Energy는 미국 에너지부(DOE)의 지원을 받는 고온가스 SMR 'Xe-100'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DOW케미컬과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들과도 협업하고 있다.
DL이앤씨는 2023년 X-Energy의 전환사채를 2000만 달러에 인수하며 파트너십을 공고히 했고, 국내 유일의 SMR EPC 통합사업자를 자처하고 있다.
이와 관련 KB증권 강민창 연구원은 “DL이앤씨는 단순 시공사를 넘어 SMR EPC 시장에서 구조적 수혜를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영증권 박세라 연구원은 지난해 말 'SMR과 건설' 보고서를 통해 "건설사들이 SMR 시장의 선도적 사업자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글로벌 EPC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에너지 전환 기조에 발맞춘 포트폴리오 다변화는 기업 가치 재평가의 촉매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 GS건설, 수소연료전지 기반 스마트팜…디지털 순환 농업 실증
GS건설은 지난 25일 주주총회에서 통신판매업을 정관에 추가하며, 모듈러 기반 B2C 사업 확대와 함께 스마트팜과 수소연료전지를 결합한 신사업 모델도 함께 추진 중이다.
경북 예천군 지보면 매창리에는 40MW급 수소연료전지 발전소와 연계된 임대형 스마트팜 단지를 조성 중이며, 총 2800억원을 투자해 15ha 규모의 농업단지를 개발하고 있다.
이 단지는 수소발전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스마트팜 난방에 재활용하는 디지털 순환 농업 모델로, 향후 수출형 스마트팜 플랫폼으로의 발전 가능성도 주목된다. 또 다른 축으로는 2560억원 규모의 수소연료발전 사업도 병행하며, 디지털 농업타운 조성에도 본격 참여하고 있다.
■ “장기 수익보다 체질 개선 목적…속도 조절 관건” 지적
신사업이 단기 수익보다는 ‘포스트 분양 시대의 생존 전략’에 가깝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수익 창출까지 장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자금 조달 리스크와 재무 건전성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투자증권 박재홍 연구원은 “건설사 신사업은 단기 실적보다는 구조 전환을 위한 포석”이라며 “수익 실현까지 평균 5~7년이 소요되고, 고금리와 자금 조달 리스크를 고려할 때 속도 조절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송유림 박사도 ‘건설기업은 플랫폼 기업이 될 수 없는가’라는 보고서를 통해 “건설업은 이제 ‘단순 시공’이 아닌 에너지·도시·데이터가 융합된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이 필수”라며, “정책 연계, ESG 기조, 기술 경쟁력 등을 고려한 선별적 확장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