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1904~1989년)는 녹아 흘러 내리는 듯한 시계 등이 기이하게 등장한 ‘기억의 지속’(1931년)으로 초현실주의 대표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초현실주의가 추구하던 무의식, 꿈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해 내는 천재, 상상의 세계를 예견한 선지자”라는 평가를 당시 받았다. 달리는 자신을 꾸미는 것도 초현실주의를 가미했다. 그의 용모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그려지는 치솟은 콧수염은 누군가는 중력을 무시하는 초현실적 발상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신은 또 하나의 예술가이다, 나처럼 말이다”라고 스스로를 신격화하기까지 한 달리의 예술적 영감을 끝없이 분출시킨 원천은 그의 아내 갈라(Gala,1894~1982년)였다. 달리는 데뷔작 ‘음산한 유희’(1929년)을 내놓은 해에 10살 연상인 갈라를 만나 5년뒤 1934년에 결혼하고 이후 여생을 같이했다. 달리에게 갈라는 처음이자 마지막 여자였고 절대적 존재였다.
브라질의 한 전시회에서전시되고있는살바도르 달리의사진(자료=연합뉴스DB)
▶대통령 선거운동이 본격 진행중인 지금, 다소 생뚱맞게 달리와 갈라를 끄집어낸 건 최근 대선정국의 초현실주의적 몇몇 장면 때문이다. 먼저 달리를 차용해본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해 내는 초현실주의적 정치판’이 며칠 전 펼쳐졌다. 이 광경을 국민의힘 인사의 SNS상 글로 묘사하면 이렇다. “지난 밤 비대위는 고작 60여명의 국회의원을 찬성을 기반으로 당의 공식적 경선을 통해 선출된 대선후보를 교체하는 ‘비대위 계엄’을 선포하였다.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비대위가 당의 대선후보 절차를 바꾸고 정할 수 있다는 당헌을 내세워 새벽 1시에 대선후보 선정을 취소하고, 새벽 3시에 후보자 등록공고를 내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김문수 후보의 국민의힘 대선후보 지위를 박탈하고, 한덕수 후보를 단독후보로 내세웠다”
지난 10일 국민의힘은 새벽 3~4시까지 단 한 시간만 대선후보 신청등록을 받는다고 공고하고, 이후 3시20분에 대선 후보로 유일하게 등록한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당헌에 따라 자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추대했다. 한 후보는 이날 새벽 입당후 당비 1만원을 냈다고 한다. 후보 4강에 든 이들은 경선 비용으로 최소한 2억원씩 지출했다. 진흙탕 싸움마저 불사하면서 그들만의 당심과 민심으로 확정된 대선후보를 교체해야만 하는, 교체하겠다는 특정 집단의 속내를 어림짐작은 하지만 이런 초현실주의 정치꼼수가 표출될 지는 달리도 놀랐을 만 하다.
하지만 하루 뒤인 11일 국민의힘 당원들은 지도부의 ‘강제 단일화’‘한덕수 추대론’에 반대표를 던져 다시 김문수 후보를 당의 대선 후보로 세웠다. 상식적 보수층들이 ‘쌍권’이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지난해 12월 현직 대통령이 군 헬기 등을 동원해 국회를 침탈, 비상계엄을 발동했다는 게 아직도 현실감이 없을 지경인데 ‘자고나면’ 대선후보가 바뀌는 작금의 보수정치판을 유권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황당하고 부조리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들이 오히려 득세하는 현실이 너무 초현실적 정치판이 아닌가.
▶갈라는 달리의 과대망상적 행동과 기발한 상상력, 자기애, 강박증을 천재의 특권으로 이해하고 존중한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달리의 천재성을 간파한 갈라는 치유 천사, 매니저, 딜러, 비평가, 후원자, 뮤즈 등 다양한 역할을 하며 스페인 시골 출신 남편을 세계적 거장으로 만들었다.
“달리는 갈라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달리의 작품 전시와 일정 조정을 총괄하는 매니저 역할은 물론 작품판매까지 모든 과정은 갈라의 손을 거쳤다. 달리의 세계화, 상업화, 스타화의 길에 갈라의 영향은 지대했다. 달리에게 갈라는, 그녀의 일반인이 쉽게 납득하기 힘든 연애관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뮤즈로 남는다. 갈라가 달리를 초현실주의 최애급 작가로 이끌었다는 관점에서 이번 6월 대선에서 대한민국을 달리화할 수 있는 ‘갈라’는 누구일까. 어느 후보가 갈라가 되어 대한국민을 달라의 위치로 끌어올릴까.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총 7명의 후보가 나섰다. 후보자 기호는 1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2번 국민의힘 김문수, 4번 개혁신당 이준석, 5번 민주노동당 권영국, 6번 자유통일당 구주와, 7번 무소속 황교안, 8번 무소속 송진호 후보로 결정됐다. 기호 3번은 원내 3당인 조국혁신당이 후보자를 내지 않으면서 결번이 됐다. 대국민 청혼에 나선 주요 정당 후보들은 10대 공약 등을 담은 화려한 청첩장을 돌리고 있다.
▶올해 말 은퇴한다고 발표한 전설적인 투자자 미국의 워런 버핏(94)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기업 인수는 결혼과 비슷하다”며 “즐거운 결혼식으로 시작하지만, 현실은 결혼 전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때로는 놀랍게도 새로운 결합이 양쪽 모두의 기대를 뛰어넘는 행복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환멸이 급히 찾아오기도 한다. 이를 기업 인수에 적용해보면 불쾌한 놀라움을 마주하는 쪽은 대개 인수자일 것이다. 기업 인수 합병과정에서는 환상을 품기가 쉽다”는 것이다.
대국민 청혼에 나선 대선 후보들중 1인을 선택하는 유권자들은 ‘환상적 결혼’을 꿈꾸나 결혼 후 현실은 환상적이지 않을 수 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법원 지상으로 걸어 출석한 12일에 우리는 불행한 결혼의 쓰디 쓴 맛과 참담함을 오감, 육감으로 다시 느꼈다. 새 교황 레오 14세는 자신을 “하느님과 형제들을 섬기는 겸손한 종”이라고 밝혔다. 오는 6월3일 우리가 선택한 최고의 공복은 겸손과 오만의 선상에서 어느 쪽에 가까울련지. 달리는 혈연과 결별하면서까지 갈라를 선택했다. 선택에는 어느 정도 희생도 감내해야 한다.
■명재곤은 헤럴드경제, 뉴스핌, 브릿지경제 등 언론사에서 30여년 간 기자 및 데스크로 활동했다. 석재조합에서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취재하며 소통해 왔다. 소비자들 입장에서 세상을 들여다 보는 편이지만 한때 기업에서 일한 터라 공급자 처지도 이해한다. 경제나 정치에서 극단을 멀리하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