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위한 플레이리스트 짜기‘라는 미션이 주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도 참여자 대부분은 비슷한 분위기의 곡으로 채울 것이다. 예컨대 유난히 희망적인 가사, 밝고 경쾌하거나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멜로디의 노래들 말이다. 이러한 경향은 언어와 국경을 초월한다.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 해당 주제로 무수히 올라와 있는 플레이리스트만 봐도 그렇다. 카운트다운과 환호, 그리고 새로운 다짐이 어우러져 구축된 새해의 이미지처럼 이 시기의 음악에도 암묵적인 가이드라인이 생긴 셈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연도가 바뀔 때마다 첫날의 음악들은 새해를 상징하는 분위기에 협조적인 방향으로 선곡됐다. ‘시작’, 혹은 ‘변화’의 의미가 도드라지는 순간이다 보니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하다. 특히 보잘것없는 계획과 결심조차 ‘사람은 한결같아야지.’라는 자기합리화를 내세워 무효화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진취적인 노래는 잠시나마 새사람이 되는 유체이탈을 경험하게 해준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해에 어울리는 음악이라는 개념은 어쩌면 사회적인 합의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꽤 많은 사람들에게 새해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시점일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의 피로가 오늘로 넘어오고, 작년의 고민이 새해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설렘만큼이나 막연함이 크며, 기대만큼이나 두려움도 많다. 그런 때에 밝은 음악만이 정답일 리 없다.
오히려 차분하거나 애수 어린 음악이 더 잘 어울릴 때가 있다. 조용히 말을 건네는 듯하며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는 노래들. 이런 어긋남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새해를 개인적인 시간으로 되돌려 놓는다. 모두가 비슷한 방향을 바라보는 순간에도 음악 안에서는 각자의 시간이 흐른다. 나 역시 그랬다. 새해를 맞아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는 시간을 원했던 때에 그런 음악은 적잖은 위안을 주었다.
비단 새해뿐만 아니라 음악은 일상에서 우리에게 가해지는 여러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영역이다. 음악 앞에서는 굳이 의욕적이지 않아도 된다. 계획적일 필요도 없다. 미디어와 SNS를 가득 메운 환희와 기세에 동참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음악은 감정을 정돈하고 무언가를 희망하는 과정을 서두르지 않게 도와준다.
그래서 새해에 어울리는 음악이란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날의 마음에 어울리는 음악이 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워줄 곡이,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다치지 않게 지켜줄 한 곡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음악은 미래를 향하기보다 현재에 붙잡혀 있는 것과 같다. 그 순간의 기분, 그날의 공기, 그때의 마음 상태를 고스란히 품기 때문이다.
나의 새해 플레이리스트에는 변화와 지속이 공존한다. 신곡 옆에 오래된 노래가 나란히 놓이고, 힙합부터 발라드까지 혼재한다. 그렇게 앞으로 가고 싶은 마음과 여전히 품고 있는 과거가 함께 재생된다. 그리고 이 같은 모순이야말로 새해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싶다. 새해가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오지 않듯이 어떤 리듬으로 새해를 시작하고 통과할 것인지도 결국 각자의 선택이다.
그래서인지 이맘때 즈음이면 새해 첫날에 들었던 사람들의 플레이리스트가 매우 궁금해진다. 나는 2026년의 첫날, 인생곡인 자베타 스틸(Jevetta Steele)의 ‘Calling You’, 영화 ‘러브레터’ OST의 ‘A Winter Story’, 3호선 버터플라이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향’,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케데헌’ 헌트릭스(Huntrix)의 ‘Golden’을 (아이와 함께) 들었다.
■ 강일권은 뚜렷한 주관과 근거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활동 중인 음악평론가다. 힙합/알앤비 전문 미디어 ‘리드머’의 편집장을 역임했고, 여러 음악 시상식과 지원사업에 선정위원으로 참여해왔다. 저서로는 [K-POP 신화의 그림자: 투올더뮤직키즈]가 있으며, 에릭 모스가 쓴 [힙하게 힙합]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