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출시된 삼성페이의 "삼성페이로, 샥!" 광고
"태초에 하느님이 호모 사피엔스를 창조했다면, 스티브 잡스는 '포노 사피엔스'를 창조해냈다"
최재봉 교수가 쓴 '포노 사피엔스'에 따르면, 스마트폰을 마치 신체의 일부처럼 여기는 신인류는 금융과 산업이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 습관을 재정립하고 있다. 포노 사피엔스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생각하고, 소통하고, 돈을 쓴다. 한마디로 스마트폰은 모든 정보와 돈이 오고가는 창구다.
결국 스마트폰은 빠르게 지갑을 대체했다. 현금과 신분증은 물론 은행 지점도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중국 길거리의 거지마저 QR코드를 목에 걸고 구걸할 정도로 돈의 흐름이 디지털화 됐다. 그야말로 '화폐의 종말' 세상이다.
역사적으로 화폐는 뛰어난 기술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조개나 소금과 같은 상품화폐는 금속 화폐 주조술에 밀려났고, 동전은 다시 지폐 인쇄술에 밀렸다.
1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지급수단·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지급수단 중 현금 이용 비중(건수 기준)은 15.9%로 집계됐다. 2013년 41.3%에 달했던 현금 이용 비중은 점차 빠른 속도로 하락해 2019년(26.4%)과 2021년(21.6%) 조사에서 20%대로 떨어졌고, 지난해엔 10%대 중반에 이르고 있다.
특히 2025년 현재 세계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스테이블 코인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결제의 디지털화는 가속화되는 상황이다. 종국에는 현금 거래가 사라질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오늘날 디지털 화폐의 발명으로 지폐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셈이다.
화폐의 종말에 따라, 결제 방식이 극단적으로 단순해 지는 것도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한국에선 일찍이 삼성페이로 모바일 결제를 장악한 삼성전자가 포노 사피엔스 시대의 독보적인 승자로 자리매김했다. 2015년 삼성전자는 삼성페이를 이용해 디지털제국을 완성했다. 삼성페이는 결제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 혁명적인 서비스 중 하나로 평가된다.
삼성전자는 2015년 '삼성 갤럭시 언팩 2015'에서 갤럭시 S6와 함께 삼성페이를 처음 공개했다. 삼성페이는 당시로서는 세계 최초로 MST(Magnetic Secure Transmission)와 NFC를 동시에 지원하는 온·오프라인 핀테크 결제 서비스였다.
스마트폰을 '샥!' 쓸어올리는 것 만으로 결제가 완료되는 경험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카드사들이 갤럭시 스마트폰의 제조사인 삼성전자에 지불하는 간편 결제수수료도 없다보니 대한민국 은행과 카드사들의 삼성페이 지원도 급속도로 이뤄졌다.
삼성페이를 등에 업은 갤럭시폰은 '모바일 결제' 영역을 장악해 나갔고, 포노 사피엔스의 습관으로 정착됐다. 이제는 "삼성페이 때문에 갤럭시를 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삼성페이는 삼성금융의 필수재로 꼽힌다.
금융감독원의 통계에 따르면 삼성페이 결제액은 2023년 기준 73조원 규모다. 현대카드가 애플페이에 지급하고 있는 수수료율 0.15%를 적용하면, 연간 수수료는 1095억원에 달한다. 삼성페이가 유료화되는 순간 카드사들에게는 '헬 게이트'가 열리는 셈이다.
삼성페이 개발 이후 삼성전자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의 미래를 고민하며 결제 서비스의 ‘마케팅 플랫폼화’에 몰두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객이 쉬운 결제와 풍부한 혜택에 이끌려 결제하고, 기업이 그 결제 데이터로 맞춤 마케팅을 제공하는 ‘결제와 마케팅의 선순환’을 일으키는 것이다. 다양한 서비스를 단일 앱에서 제공하는 '슈퍼앱(Super App)' 전략이다.
슈퍼앱은 플랫폼 비즈니스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가장 최신의 비즈니스 모델로 꼽힌다. 여기에 ChatGPT가 촉발한 생성형 AI 혁신이 더해지며, 슈퍼앱은 전 세계를 관통하는 메가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향후 결제 서비스 혁신적인 목표는 스마트폰을 넘어서는 것이다. 현재는 '페이스페이'가 그 대안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토스는 안면인식 결제 서비스인 '페이스페이'를 확산시켜 '스마트폰과 지갑을 대체하겠다'고 선언했다. 페이스페이는 실물 카드나 스마트폰 없이 얼굴 인식만으로 결제가 가능한 방식으로, 삼성페이가 장악한 오프라인 간편결제 시장에 새로운 도전자로 부상하고 있다.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마저 꺼내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올까. 그 날이 오면 페이스페이가 정말 시장을 장악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한 가전업체가 광고에 사용했던 이 슬로건은 우리나라 광고사에 남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누구나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 이전에 경영자와 임직원은 수 많은 고민과 검토, 논의를 거듭한다. 그렇게 결행한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 등 경영 판단은 10년 후 기업을 바꿔놓는다. 뷰어스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업들이 지난 10년 전 내렸던 판단이 현재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추적하고 아울러 앞으로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