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수소환원제철개발센터 전경 (사진=포스코)
국내 철강·석유화학·정유업계가 앞다투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목표 시점은 멀리 있고, 정작 2030년까지 달성해야 할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수소환원제철, CCUS(탄소포집·활용·저장) 같은 해법이 제시되지만 기술 성숙도‧원가 경쟁력‧공급 인프라 모두 미완성 단계다. 장밋빛 청사진 뒤에 숨은 한계가 한국 장치 산업의 최대 위험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 선언 앞서가지만 현실은 파일럿 단계
포스코는 2050년까지 전량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고, 현대제철도 자체 기술 체계 ‘하이큐브(Hy-Cube)’를 내세우며 2045년 탄소중립을 공언했다. 하지만 실제로 가동 중인 것은 1~2기의 파일럿 설비에 불과하다.
포스코는 독자적 수소환원제철 기술 ‘하이렉스(HyREX)’를 2030년까지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2024년 포항제철소에 시간당 1톤 규모의 전기용융로(ESF) 데모 플랜트를 준공했다. 그러나 연간 3800만톤 규모 철강 생산을 전부 그린수소 기반으로 전환하려면 370만톤의 수소가 필요하다. 이는 정부가 2040년까지 목표로 한 전체 수소 생산량의 70%에 해당한다.
또한 수소환원제철은 공정 특성상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포스코 자체 분석에 따르면 기존 고로 대비 전력 소요가 6.4배 늘어나는데, 이는 원전 한 기 용량의 3~4배에 달한다. 결국 수소 공급뿐 아니라 전력 인프라 확충 없이는 상용화가 어렵다.
현대제철 역시 공정 효율화와 저탄소 제품 생산에 나서고 있으나 근본적 한계는 크다. 하이큐브는 전기로-고로 복합 공정을 통해 탄소배출을 줄이고, 남는 탄소는 CCUS로 상쇄하겠다는 구상이지만, 기술 완성과 상용화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 석유화학·정유, CCUS·바이오 전환 지연
석유화학·정유업계도 CCUS와 바이오 원료 전환을 앞세우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LG화학·롯데케미칼은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기반 케미컬 리사이클링을 시험 중이고, 금호석유화학은 연간 7만6000톤 규모의 CCUS 설비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DL이앤씨·포스코홀딩스 등은 삼척 폐광산을 활용한 CO₂ 저장 실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소규모에 불과하다. 서해 대륙붕 저장소 확보 실패, 해외 저장소 활용 제약 등으로 국내 CCS 인프라의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탄소를 단순히 포집·저장하는 수준을 넘어 고부가가치 소재로 활용하려는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크다. 업계 안팎에서는 “투자 부담에 보릿고개를 겪는 기업들이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나온다.
사우디 아람코는 최근 AI 신소재 기업과 손잡고 포집 탄소를 항공기 부품·고기능성 플라스틱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단순 저장이 아니라 ‘팔 수 있는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모델이다. 동시에 연간 900만 톤 규모의 CCS 허브를 2027년 완공할 계획이다.
유럽은 이미 상업용 인프라를 구축 중이다. 노르웨이의 ‘노던 라이트(Northern Lights)’ 프로젝트는 북해 해저에 CO₂를 저장하며 유럽 산업계 전반의 탈탄소 거점이 되고 있다. 쉘·에퀴노르가 참여하는 이 사업은 노르웨이 정부가 27억 달러를 투자한 ‘롱십(Longship)’ 프로젝트의 핵심 축이다. 호주 ‘고르곤(Gorgon)’, 아이슬란드의 지하 탄산염 저장 등 글로벌 실증 사업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 “2050년은 있는데 2030년은 없다”
파리협정에 따라 한국은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온실가스 감축을 약속했으며, 산업 부문 감축 목표만 2억톤 이상이다. 향후 5년 안에 중간 경로를 구체화하지 못한다면 한국 철강·석화 제품은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인증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국내 장치산업의 기후전략은 선언적 목표에 치우친 채, 당장의 10년 과제를 비워둔 상태다. 선언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에서 기술적 허들, 원가 경쟁력, 글로벌 표준 대응 모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실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