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사용자로부터 위임받은 징계해고 사건의 서면 최종 검토작업을 진행했다. 사건의 개요를 간단히 설명하면, 재택근무 중이던 근로자가 근무시간임에도 사적용무를 보고 업무를 소홀히 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 그 결과 고객사가 위탁한 PJT 일정이 계속 늦춰지게 됐고, 같은 PJT 구성원들에게도 업무상 피해를 주게 됐다.

이에 회사의 대표자가 근태 및 업무관리를 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대상자에게 사무실로 출근하여 근무할 것을 지시했다. 그런데 대상자는 근로계약서 상 본인은 재택에서 근무할 권리가 있으므로 사무실 근무명령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한달여에 걸쳐 수차례 출근지시를 무시했다. 더 나아가 대상자는 수개월 전 대표자와 나눈 남녀 성역할 등에 대한 대화를 문제삼으며, 그 과정에서 대표자가 한 말은 성희롱에 해당된다며 이에 대한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그 과정에서 대표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해 수차례 근무장소 협의를 위한 노력을 했고, 지시불이행에 따른 경고까지 했음에도 근로자는 협의를 거부하면서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았고 결국 징계해고까지 나아가게 된 사건이다.

사실 더 많은 해고사유가 있지만, 핵심적인 사유만 작성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이 징계해고 처분이 정당하다고 생각되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이 “저런 사람하고 어떻게 같이 근무를 하나. 해고가 당연하지”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이와 같이 보통 평범한 독자들의 생각이 법원 판결문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말하는 ‘사회의 통념’이다.

대법원 역시 징계해고에 있어서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입장이고 이 법리를 수십년째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대법원 1996. 9. 20. 선고 95누 15742 판결 등)

그런데 ‘사회통념상’ 해고의 정당성을 얻어내기란 정말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사용자는 대상자가 어떤 행위를 하였다는 점(그러한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증명해야 되는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행위가 해고사유가 된다는 점을 추가로 증명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사유의 정당성’에 관한 입증이다.

입증에 관한 책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직, 감봉 등 해고보다 낮은 징계가 있는데 왜 꼭 해고여야 하는지에 관한 증명(양정의 정당성)도 해야 되고,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는 점(절차의 정당성)도 증명해야 한다.

이와 같은 증명을 다 해낸다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노동위원회에서는 징계해고 사건과 관련하여 늘 사용자에게 다음과 같이 물으며 추가적인 증명을 요구한다. “해고하기 전에 경고했어요?” “개선하기 위해 기회를 주었나요?”

실제 해고사건 중 해고 전 경고를 하고 개선기회를 준 사건은 많지 않다. 노사관계를 포함한 어떤 관계든 신뢰를 쌓는 것은 어렵지만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신뢰가 무너진 사람과는 100원짜리 1회성 거래를 하는 것도 어렵다. 그런데 하루 8시간 이상 얼굴을 맞대고 지내야 하는 노사관계는 오죽하겠는가. 한순간 신뢰가 무너진 사람에게 개선의 기회를 준다는 것은 노사현장에서 쉽게 발생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행히 수임한 사건의 경우 대표자가 대상자에게 기회도 주고 경고도 수차례 했다. 소위 해고를 피하기 위해 많이 노력한 것이 증명되는 몇 안되는 사건 중 하나다. 그럼에도 경험상 이 정도로는 안심할 수 없다. 그래서 앞서 살펴본 사유, 양정, 절차의 정당성에 관한 입증 및 수차례 경고와 개선의 기회를 부여했다는 입증 외에도 추가적인 사실들을 증명해 서면을 작성했다.

① 대상자의 행위로 기업 및 동료들에게 어떤 피해가 발생하였는지
② 다른 업무 대비 대상자의 업무특성과 상대적 중요성
③ 대상자의 행위동기와 배경은 더욱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점
④ 업무수행한 결과물 또한 문제가 많았다는 사실
⑤ 개전의 정 또한 없다는 사실

이렇게 했음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다른 사례들로부터 얻을 시사점이 있는지 확인하고자 판례검색 사이트에서 징계해고와 관련된 판례를 검색했다. 그러다가 1페이지에 나온 모 지방법원의 징계해고 관련 1심 판결문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지역별로 다른 법이 적용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다를까.

검토한 판례의 사실관계는 이러했다. 모 공공기관의 사무국장으로 근무하던 자를 징계해고한 사건인데 대표적인 징계사유가 ① 자신의 업무인 결산서를 작성하지 않아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정기총회를 무산케 하였다는 점 ② 그래서 기관은 사회적 위상과 명예에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초래했다는 점 ③ 기타 해야되는 업무를 수행하지 않거나 방치해 기관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점 등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징계사유가 대부분 인정되어 해당 법원은 이 사건 징계해고는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판결문에서는 해고 전 경고를 하거나 개선의 기회를 부여했는지 여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즉, 노동위원회에서 징계해고의 정당성 판단시 반드시 심리하는 경고와 개선의 기회 부여 여부를 심리하지 않았거나, 심리를 했더라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판결문에 명시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징계해고에 관한 서울/경기지방 노동위원회 및 중앙노동위원회의 심리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위와 같은 점을 밝히지 않고 징계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했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나아가 사용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정기총회가, 일개 사무국장이 결산서를 작성하지 않아 무산됐다는 점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정기총회가 무산된 것이 신청인 탓이라는 것인데, 정기총회가 일개 사무국장의 업무누락으로 무산까지될 수 있는 회의체라는 것인가? 앞뒤가 맞지 않다.

상식적으로(사회통념상) 생각해보면, 중요한 회의체의 회의안건은 주관부서에서 챙기면서 회의 수일 전까지 확보하고 최고 의사결정권자에게 보고를 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상급자가 사무국장에게 업무지시를 했을 것이고, 사무국장이 그 지시를 불이행하였다는 것인데 왜 지시불이행은 징계사유로 삼지 않았을까. 그러한 지시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정기총회 무산의 책임을 일개 사무국장인 대상자에게 물으면서 해고사유로 삼을 수 있는 것인가.

나아가 저 사무국장의 상급자 또는 정기총회 주관부서의 장에게는 어떤 책임을 물었다는 것인지. 필자가 지금까지 겪은 업무불이행으로 인한 징계사건에서 노동위원회는 위와 같은 사정들을 전부 따져보는데 이 법원은 왜 따지지 않은 것일까. 따져봤는데 판결문에만 쓰지 않은 것일까.

같은 법이 적용되는데 시베리아와 동남아시아의 날씨보다 더 큰 차이가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역마다 해고의 정당성에 관한 법리가 달리 적용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만약 저 사무국장이 노동위원회에서 다투었거나 다른 판사를 만났다면 결과가 충분히 달라지지 않았을까.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사법적 판단이 180도 달라진다면, 그것은 과연 정의에 부합하는 것인가.

처음에 꺼냈었던 화두로 다시 돌아와보자. 해고의 정당성은 ‘사회통념 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이 있는 경우’ 정당하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고한 법리이자 수십년간 변경됨 없이 유지된 금과옥조다.

사회통념이란 ‘보통 평범한 일반적인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 즉, 쉽게 말하면 ‘우리가 갖고있는 상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즉, 해고 사건에서 대법원의 법리에 따라 충실하게 판단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옳은 판단을 하고자 한다면 해당사건에 관한 보통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을 묻고 이를 판결, 판정에 반영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판결 및 판정 권한을 가진 자들은 판결 및 판정 전 사회의 통념이 무엇인지 확인하지 않는다. 아니, 확인하려고 마음먹더라도 확인할 제도적인 방법이 없다.

해고를 당한 사람 뿐 아니라 해고를 실행한 사람 모두 ‘사회(社會)의 통념’이라는 기준에 따라 판단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극히 일부의 사람들의 개인적인 생각인 ‘사인(私人)의 관념’에 따라 판단을 받게되고, 그 사인(私人)의 관념이 잘못된 경우 그 피해는 오롯이 당사자들이 부담하게 되는 구조다. 이는 분명 잘못됐다. 고쳐야 한다.

늦은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배심원 제도 등 여러 가지 제도를 살펴보고 사회의 통념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 징계해고 사건에서라도 우선적으로 ‘사회(社會)의 통념’에 따른 판단을 실현해 나가야되지 않을까? 정부 관련 부처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 이종언 노무사는 현재 노무법인 평정의 대표 노무사로서 고려대학교 재료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2008년 공인노무사 자격을 취득한 후 LG이노텍 인사담당 과장, 노무법인 유앤 수석노무사를 역임했다.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사건을 다수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기업자문, 해고사건 수행, 관련 컨설팅 및 유튜브 채널 [해고라광장]을 운영하는 등 해고와 관련되어 활발히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