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은 재난이 됐다. 그 재난의 규모와 심각성은 해가 갈수록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수많은 기후 기상 전문가들이 올 여름, 폭염이 가장 길고 오래 지속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비단 국내 뿐 아니다. 프랑스, 독일, 폴란드, 스페인 세계 각지의 6월 기온이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지구촌 곳곳에서 폭염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은 상황이다. 비단 일반인 뿐 아니라 빈곤층에 더욱 가혹하기에 폭염은 ‘차별적 재난’으로도 분류된다. 앞으로 어떻게 여름을 나야 할지, 무사히 폭염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우려와 대책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피할 수 없는 폭염의 습격 속에 정부와 민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아본다.-편집자주
사진=안양시 제공
지난해 국내에서는 폭염으로 인해 4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질병관리본부가 집계한 결과로 2011년 감시체계 운영을 시작한 이래 최고치다. 지난 한 해 기록적인 폭염으로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로 접수된 온열질환자수도 4526명에 이른다.
1970년 기상 관측 시작 이래 111년 만에 폭염일 수가 가장 많았던 2018년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그보다 더 오래 폭염이 이어질 것이라 관측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폭염과 더불어 열대야까지 그 기간이 길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기후·기상 전문가들은 올해 여름이 역대 최장기간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부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폭염의 심각성, 점점 최악을 향해 간다
앞서 밝힌 질병관리본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나이가 많을수록 더위에 약하며 실내에 있다가 온열질환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연령별로는 65세 이상이 71%(34명)로 과거 5년 평균(55%, 6명)에서 16%p 증가했으며 지난 5년에 비해 지난해 온열질환 사망자 중 실내가 22.7%p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결과에 질병관리본부는 올해 일찌감치 감시체계를 가동하면서 “작년도 온열질환자는 특히 대도시의 집에서 발생한 사례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쪽방촌 등 폭염에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여 있는 취약계층과, 노인, 어린이 및 다른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등 거동이 어렵거나 보살핌이 필요한 대상자에게 무더위 쉼터 연계, 차량 안 어린이?노약자 확인 등 취약계층 맞춤형 폭염예방을 지자체, 관계기관과 협력을 통해 지속적으로 강화해가겠다”고 밝혔다.
점점 길어질 폭염 기간도 공포에 가깝다. 서울·인천·대구·부산·목포 등 기상 관측 기간이 100년 이상 된 도시들의 기후변화 분석 보고서를 보면 미래는 더욱 암울하다. 최근 10년간 평균 10일 안팎을 기록한 폭염 일수는 20년 후 평균 32일, 50년 후엔 평균 55일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 폭염을 ‘언젠가 지나갈 자연현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사진=보건복지부
더욱이 폭염은 사시사철 기승을 부리는 미세먼지와도 관계가 깊기에 쉽사리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폭염연구센터에 따르면 미세먼지가 뒤덮인 대기상황은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밤사이 지표면에 머무르던 열이 빠져나가지 못해 폭염은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폭염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인 셈이다.
■ 폭염, 작물생산·100조 단위 의료비로 이어지는 재앙
폭염은 이제 이례적 현상이 아니기에 일상적이고 주기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무엇보다 폭염은 갖가지 재앙을 부르는 요인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미국 코넬 대학 연구원들은 가뭄이 아닌 폭염이 지구상 곡물생산을 감소시킬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기후변화가 일으킨 열 스트레스가 가뭄 스트레스보다 21세기 말 미국 곡물 생산을 감소시키는 더 큰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 및 기타 자료원으로부터 받은 수십 년 간의 자료를 토대로 실험에 나섰다. 연구팀은 지난 40년간 옥수수나 콩, 밀 등 작황이 활발하게 이뤄져 온 반면 현재 기후 변화에 대한 미래 시나리오를 적용한 결과 작물 수확량은 점차 감소할 것이며 2050년쯤 되면 최대 48%까지 작물 감소가 이어질 것이라 내다봤다. 작물감소의 상황은 식물이 살기 힘든 환경이라는 말과 같다. 인간과 동물의 먹거리 고갈부터 숨쉬는 일까지도 위기가 올 수 있는 무시무시한 전망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증가와 더불어 온열 질환자들에 대한 누적 의료비가 국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안길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심각해지는 기후재앙:포럼 어떻게 극복하나’ 토론회에서는 정해관 성균관대 의과대학 사회의학교실 교수가 앞으로 폭염 등 기후변화로 인해 향후 30년간 100조원을 넘는 의료비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진=폭염이 지속된다면 곡물은 더이상 자랄 수 없는 환경이 된다, 픽사베이
정 교수에 따르면 폭염 등 기후변화로 2050년까지 누적건강비용 101조 4000억원이 발생한다. 2020년까지만 봐도 16조원에 달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 그는 온실가스 저감 정책이 상당히 실행되는 경우(RCP 4.5 ·이산화탄소 농도 540ppm) 2050년까지 기후 변화로 인한 누적건강비용은 반토막에 가까운 62조9000억원으로 줄어든다면서 ‘폭염 대책’이 바로설 때 수십조의 의료비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폭염이 재난이라는 말에 더 이상 의문을 품을 수 없는 지점이다.
■ 정부 대책,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심각해지는 기후재앙:포럼 어떻게 극복하나’ 토론회에서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거주 환경에 따른 폭염 취약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토론회에서 채여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안, 보성, 임실 등 농촌지역이 대도시인 대구보다 폭염지속기간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폭염으로 인한 발병률은 높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결국 폭염은 기온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지역, 소득, 직업, 공간 특성에 모두 촉각을 세우고 대책을 수립해야 하는 것이다.
형편이 어려울수록, 나이가 어리거나 많을수록 폭염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기에 지역 단위로 세분화된 폭염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국내 기상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폭염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 지적한다. 이후 폭염에 대응할 수 있는 쉼터, 햇빛가림막, 살수차 가동 등 사소한 가이드라인을 구축하는 것이 순서라는 조언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해가 갈수록 막강해질 폭염 앞에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을까.
행정안전부는 지난 8일, 본격적인 폭염과 열대야가 시작됨에 따라 ‘맞춤형 무더위 쉼터’ 운영 등 긴급 폭염대책 추진을 위해 특별교부세 35억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맞춤형 무더위 쉼터’는 지난해 서울 노원구 등 일부 지자체에서 운영하며 효과가 높았던 사업이다. 이같은 결과를 토대로 행안부는 쉼터를 전국 774개소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폭염피해 예방을 위한 국민행동요령 알림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시행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는 자연재해에 대비한 철도상황반을 운영한다. 지난해 레일 온도가 상승하며 서행 운전, 탈선 사고가 일어났던 탓에 온도를 낮추기 위한 시설물을 설치하고 자동살수장치, 차열성 페인트 사용 등 설비 강화에 나섰다.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은 6월, 장마·폭염 대비 회의를 개최하고 각 학교에 냉방장치와 보건실 등을 점검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는 한편 폭염 특보에 따라 등·하교 시간을 조정하거나 휴업 등을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폭염 예보시 시도교육청이 전날 하교시간 1시간 전까지 결정하고 불가피한 경우 가급적 당일 등교시간 2시간 전까지 결정해 안내한 후 교육부에 보고하는 방식이다. 폭염 경보 이상의 돌발상황이 발생할 때에는 시·도 교육청이 조치를 한 후 CBS(재난안전문자시스템) 적극 활용해 학부모에게 안내할 수 있도록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고, 중대본-교육부-시·도 교육청-기상지청 간 핫라인도 운영한다고 알려진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이달 초, 폭염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전력수급 안정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 밝힌 상태다. 이 밖에 각 지자체별로 지역 특성과 인구밀도 등에 걸맞는 폭염 대책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사진=행정안전부 홈페이지
그러나 여전히 예방보다는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책들만 즐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홍수, 지진, 태풍과 더불어 폭염을 자연재난으로 지정한 바다. 이후 폭염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고, 폭염으로 인한 사망시 최대 1000만원 피해보상금 지급안을 마련하는가 하면 정부 재난관리기금을 폭염 대응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가운데 사망보상금이나 질병보상금의 경우는 ‘대책’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받는다. 사람이 사망한 후에야 지급되는 보상금은 대책이라 할 수 없다. 온열 관련 질병 보상금의 경우도 우선 병원에서 의사의 진단이 필수인데다 음주나 지병 등 귀책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 취약계층에겐 증명이 어려운 사안에 속한다.
‘폭염 대응 매뉴얼’ 역시 기존 지진, 화재 등 재난문자 발송과 별 차이가 없는 폭염주의 문자 발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수준이라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 보는 이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국민재난안전포털에 명시된 폭염 특보 기준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폭염주의보는 ‘일 최고기온 33℃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이며 폭염 경보는 ‘일 최고기온 35℃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발령된다. 폭염특보는 전국 40%~80% 이상 지역이 35℃가 넘는 날이 사흘 이상 이어질 때다. 그러나 다수 사회복지사들은 33℃~35℃의 더위는 환기나 냉방이 쉽지 않은 취약계층에겐 40℃ 이상의 체감온도로 다가온다면서 정부의 폭염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꼬집는다. 기상전문기관의 예측 온도가 아닌 실제 시민들의 체감온도를 기준으로 대응해야 사후처리가 아닌 예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이들의 실생활에 파고들어 주거환경 개선, 한낮 더위나 열대야에 대응할 수 있는 복지시설 및 제도 확충이 폭염으로 인한 피해를 막을 실질적 방법이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