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미스틱 스토리
가수 윤종신이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난다. 단순히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닌 음악장비들을 모두 들고 정처 없이 떠돌며 새로운 감성을 느끼고자 함이다. 4개월 전에 공표했던 10월이라는 시간이 다가오면서 윤종신은 자신의 소회를 밝히는 콘서트를 28일 열었다. 올림픽 체조경기장은 그의 떠남을 배웅하러 온 수 천 명의 팬들로 가득 찼다.
‘오래전 그날’, ‘애니’, ‘환생’ 등 숱한 히트곡들만으로도 2시간 30분을 채울 수 있는 그이지만, 대다수의 대중이 알고 있는 곡은 ‘좋니’ 하나 뿐이었다. 대부분 ‘월간 윤종신’을 통해 발매됐거나, 아주 오래전 자기도 모르는 상황에 이별과 새로운 곳에서 떠돌고 싶다는 내용의 노랫말이 담긴 곡들로 이뤄졌다.
윤종신은 “떠남을 앞두고 저의 팬들에게 띄워드리고 싶은 노래로 리스트를 짰다. 왜 떠나게 됐는지의 메시지가 가사에 담겨 있다. 수 많은 히트곡을 배제하고 제 마음이 담긴 노래로 20시간 반을 꾸미겠다”고 말했다.
‘사랑의 역사’로 서막을 올린 그는 ‘지친 하루’와 ‘루시(Lucy)’, ‘떠나’로 1부를 채웠다. 혼란스러운 삶의 여정 속에서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의미가 담긴 듯 했다.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노래들이었지만, 윤종신의 옛 감성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윤종신의 대명사는 ‘찌질’함이다. 이별 후에 괴로워하는 심정의 노랫말과 진한 감성이 윤종신의 시그니쳐다. 윤종신은 “나는 ‘찌질’함이라는 표현이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이별을 하면 다 그렇게 되지 않나. 가기 전에 이별 엑기스를 띄워드리고 가겠다”면서
‘이별하긴 하겠지’와 ‘워커 홀릭’, ‘못나고 못난’을 불렀다. 이별을 앞두거나 이별한 뒤 연인을 잊기 위해 일에 몰두한다거나, 잊지 못해 괴로워하는 심리가 그대로 녹아있다. 연인을 위한 글이기도 하지만 팬들에게 전하는 윤종신의 진심 같기도 했다. 연이은 그의 노래에 관객의 감성은 촉촉해져갔다.
그리고 하림과 조정치가 선배 윤종신을 배웅하기 위해 콘서트장을 찾았다. 윤종신은 두 사람을 두고 게스트가 아닌, 자신의 친구들이었다고 했다. 윤종신이 작사한 ‘난치병’과 ‘출국’을 비롯해 가사만 두고 보면 윤종신의 미래를 예언한 것 같다는 ‘여기보다 어딘가에’와 하림의 히트곡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가 울렸다.
이어 창작자 이규호씨가 윤종신을 위해 전해준 ‘몰린’과 ‘몰린2’를 윤종신과 함께 열창한 하림과 조정치는 “윤종신의 내일을 응원한다”는 말로 현장을 떠났다.
‘늦바람’, ‘도착’, ‘이방인’으로 이 공연의 메시지를 전한 윤종신은 ‘너를 찾아서’와 ‘좋니’, ‘탈진’, ‘기억의 주인’, ‘슬로우 스타터’, ‘오르막길’, ‘버드맨’을 통해 셋 리스트를 마무리했다. 앵콜을 연호한 팬들을 위해 ‘끝 무렵‘과 ’나에게 하는 격려‘로 2시간 40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제목만 보더라도 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앞으로의 모험을 준비하고 있는지, 어떤 굴곡을 거쳐 내딛는 발걸음인지 전달된다.
이번 윤종신의 선택에 가요계는 주목한다. 워낙 활발한 활동을 수 맡은 히트곡을 낸 것은 물론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날카로운 심사를 통해 슈퍼스타를 배출하는데 일조했을 뿐 아니라 현재 유통사를 중심으로 꾸려진 음원사이트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대중과 소통하는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를 선보인 그는 가요계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예능인으로서도 정점에 올라 있었다. 각 채널은 그를 모시기에 바빴다. 그랬던 그가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이방인이 되어, 앞으로 한동안 가까운 채널에서 보기 힘들게 됐다는 점에서 아쉬움과 함께 새로운 음악을 갖고 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공존한다.
윤종신은 “‘이방인 프로젝트’를 다짐한 게 3~4년 정도 됐다. 멈추고 쉬거나 다른 환경 속에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행 중에 곡을 12곡 이상 만들 거다. 창작자로서 ‘월간 윤종신’을 안 하면 지쳐 쓰러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늙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선택을 한 거다. 무르익은 음악으로 찾아오겠다”라고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