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정감사 기간 동안 가장 많은 뭇매를 맞은 공기업 사장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변창흠 사장이다. 국감장에서는 채용비리, 뇌물공여 등 모럴해저드에 빠진 공기업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고 해도 무관할 만큼 LH의 각종 비리가 터져 나왔다. 여기에 최근 들어 월 임대료 80만원 임대주택, 40~50대가 대다수인 신혼희망타운 등이 지적되면서 민간의 신의마저 잃고 있는 분위기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LH의 모럴해저드(도적적해이)를 시정하여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공기업이 될 수 있도록 조치 바란다”는 내용의 청원글이 올라오는 지경이다. LH는 왜 도덕적으로 해이한 상태가 되었을까? 그 면면을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국정감사 중인 LH 변상흠 사장 (사진=연합뉴스)
■ “반인륜적 정책” 홀몸 노인 유산 처분권 챙긴 유언장 작성
LH가 매입임대주택 거주 홀몸 노인들에게 유언장을 작성하도록 권유한 사실이 드러나 뭇매를 맞았다. 불량채권 발생이 우려되는 매입임대주택 거주 홀몸 노인들에게 LH에 유산 처분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하도록 한 정책은 국감에서 “반인륜적인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4일 LH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LH가 매입 임대주택에서 무연고 사망자가 나왔을 때 불량채권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니 홀몸 어르신들을 상대로 미리 유언장을 받고 있다”며 “이는 사람 아닌 행정 편의가 먼저인 제도”라고 비판했다.
유언장에는 ‘본인 사망 후 1개월 내 연고자가 유체동산을 처분 또는 수령하지 않을 경우 LH가 임의처분 한다’는 내용과 함께 유언 집행자로 LH를 지정하는 내용을 담도록 했다. 이는 거주 노인이 임대료 체납 등으로 임대보증금을 넘는 채무를 LH에 남기고 사망할 경우에 대비한 조치로 해석된다.
김 의원은 “LH가 ‘초고령화 시대를 대비한 임대주택 유증(유언증여)서비스 등 시행방안’을 마련해 임대주택 거주 무연고 고령자에게 유언장을 받아왔다”고 비판했다. 특히 독거노인에게 말벗, 민원 청취 등 편의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LH가 장애인 가운데 채용하는 ‘LH 홀몸어르신 살피미’가 유언장 작성 권유 역할을 맡은 것으로 확인됐다. LH는 지난해 7건, 올해 8건 등 총 15건의 유언장을 받아낸 것으로 확인됐다.
김 의원은 “지난 5년간 LH 임대주택에서 고독사한 고령자는 167명으로 이중 무연고자는 단 2명에 불과했고, 이로 인해 실제로 발생한 불량채권이나 행정비용은 없었다”며 “불량채권 회수 등은 행정절차를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주거복지를 책임지는 공기업에서 행정 편의를 위해 유언장을 받고 다닌다는 것은 반인륜 정책”이라며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변창흠 LH 사장은 “당초 ‘홀몸 어르신 살피미 사업’ 취지는 장애인을 고용해 어르신들에게 말벗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취지가 잘못된 것 같다”고 답변했다.
■ 대학생 선호 공기업 5위 LH, 뒤에서는 친인척 단독 면접해 채용
변 사장은 또 직원들의 친인척 채용 논란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변 사장은 국감 중 “과거 채용절차가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았을 때 비정규직 채용절차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며 “관련 직원들을 직위해제 했다”고 밝혔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은 LH의 채용비리 사건과 관련해 “A센터장의 친동생이 비정규직으로 지원을 했는데 A센터장이 면접위원으로 참여해 최고점을 줘서 합격했다. 또 B차장은 조카가 면접을 보는데 채용업무 담당자에게 채용을 부탁하고 조카만 단독 면접을 진행하게 해서 합격시켰고 C단장은 처제를 센터장에게 부탁해 1등으로 합격시켰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LH는 최근 대학생이 가장 들어가고 싶은 공기업 5위다. 공정과 정의가 무너진 것으로 기관장이 대국민 사과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에 변 사장은 “공정하게 절차를 마련하지 못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채용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지난 2일자로 채용비리 관련 직원 3명을 직위해제하고 심사원의 처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 뒷돈?룸살롱 향을 접대 받고 특정 업체 공사 밀어주기
가장 심각한 도덕적 해이는 뒷돈을 받고 특정 업체의 공사 수주를 도운데 있다.
국토교통위 이현재 의원이 LH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직 부장 등 직원 3명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경기, 인천 5개 신도시에서 진행되는 보도블록 공사를 특정 8개 기업이 수주하도록 도와주고, 그 대가로 각각 수 천 만원에 달하는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수수한 금품 규모는 약 2200만원에서 많게는 약 3600만원가량이다.
이들은 뒷돈 뿐 아니라 차량 리스비와 룸살롱에서 향응과 접대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직원들은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파면 당했다. 하지만 LH측은 뇌물공여가 확인된 8개 기업에 대해서는 제재나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