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반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 해결에 강한 의지를 내비쳐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선거를 앞두고는 경기 활성화에 매진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윤석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위기대응'에 더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은행을 포함한 국내 금융사들은 금융당국 주문에 따라 '변동금리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연내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변동금리 스트레스 DSR'은 변동금리 대출상품의 DSR을 산정할 때 향후 금리 상승을 예상한 가산금리를 적용하는 제도다. 고정금리와의 격차가 줄어들어 금융소비자들이 변동금리보다 고정금리를 선택할 요인이 그만큼 커지게 된다.
당국은 지난달 DSR 산정 만기를 최대 40년으로 축소하고, 부부합산 연소득 1억원 초과 차주에게 제공하는 일반형 특례보금자리론의 취급을 중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이 10월에만 약 2조5000억원 증가하는 등 가계대출 증가세가 재현될 조짐을 보이자 당국이 부랴부랴 추가 대책을 내놨다. 지난해 말부터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가계대출 증가세는 꺾였지만 올 하반기 들어 주택가격 바닥 심리가 확산되면서 가계대출 수요가 다시 증가했기 때문이다.
당국은 올 하반기 금리 고점 인식이 확산되고 내년에는 완만하게 금리인하 기조가 이어진다면 굳이 시장 개입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지만 중동에서 지정학적 이슈가 터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유가 불안정으로 물가가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이른바 'H4L(Higher for Longer)' 우려가 커진 것이다.
이에 고금리의 장기화를 가정한 '변동금리 스트레스 DSR' 도입과 함께 커버드본드(주택담보대출 등을 활용한 담보 채권) 활성화 등을 통해 단기·변동금리 중심에서 장기·고정금리 대출로의 전환을 유도하기로 했다.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상황능력 범위 내에서 대출받고, 처음부터 나눠 갚는 원칙이 견지될 수 있도록 DSR 제도 등을 지속해 보완하고 있다"며 "가계부채의 양적·질적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당국의 가계부채 규제는 부동산 시장을 냉각시켜 올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의 부실 악화를 야기할 수도 있다. 한 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 나오는 전형적인 '풍선 효과'가 나타날 우려도 있다.
일단 부동산 PF 문제에 있어선 일정 정도 금융기관의 손실이 불가피한 쪽으로 당국은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경기대응완충자본, 특별대손준비금 적립 요구권 등을 통해 금융사들의 선제적인 위기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고금리 환경으로 높은 수익률을 달성한 만큼 충당금을 충분히 쌓아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을 낮추라는 주문이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여소야대 국면에서 내년 총선이 매우 중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말 당·정·대가 가계부채 규제를 강화한 것은 정부의 상황 인식이 매우 엄중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어설프게 부동산 경기를 띄웠다가 1800조를 넘긴 가계부채가 문제를 일으키면 수습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전해왔다.
그는 "그렇다고 규제를 너무 심하게 할 경우 부동산 경기가 완전히 죽어 다른 쪽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면서 "가계부채가 단기간에 너무 급격히 늘어나 운용의 묘를 발휘하기 쉽지는 않지만 어렵더라도 최적의 조합점을 찾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대 협의회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3.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