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사진=우리금융그룹)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2023년 3월 24일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2년 6개월의 시간이 지나 내년 3월이면 3년 임기가 끝납니다. 6개월여 남은 임기. 그리 넉넉한 시간은 아닙니다. 금융감독원이 2023년 12월 발표한 ‘지배구조 모범관행(Best Practice)’에 따라 우리금융은 ‘임기 만료 최소 4개월 전’에 최고경영자 경영승계 절차를 개시하도록 내부규범을 마련했거든요. 늦어도 오는 11월 말에는 절차가 개시돼야 합니다. 만약 임 회장이 연임 도전 생각이 있다면 이사회 일정 등을 고려했을 때 지금쯤은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임 회장이 지휘봉을 잡은 지난 2년 6개월을 보면 연임에 긍정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우선, 경영의 총괄 성적표인 주가가 좋습니다. 전임 손태승 회장 시절인 2022년 하반기 우리금융 주가는 1만원대 초반에 머물렀습니다. 임 회장이 바통을 물려받은 2023년에도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임기 2년차 들어 전고점을 돌파하더니 올해에는 수직 상승하며 2만7000원을 터치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7월 2분기 실적 발표 이후에도 긍정적인 평가가 따르며 현재 2만원대 중반에서 거래됩니다. 취임 전에 비해 2배 정도 올랐습니다. ‘밸류업 흐름을 잘 탄 덕’이라는 평가절하 시각도 있습니다만, 시대적 흐름이란 것도 실적이 뒷받침돼야 타든 말든 하는 것이니 너무 박하게만 볼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굵직한 M&A를 성사시키며 그룹 포트폴리오 다각화에도 성공했습니다. 한국포스증권을 합병해 지난해 8월 우리투자증권을 재출범시켰습니다. 여러 난관을 뚫고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에도 성공해 지난 7월 그룹에 편입시켰습니다. 이로써 우리금융은 다른 금융지주들과 마찬가지로 증권업과 생명보험업을 영위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금융지주 재출범 7년 만에 비로소 은행·증권·보험·카드·캐피털을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의 면모를 갖췄는데요. 추후 계열사 간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면 은행에 집중된 수익 구조를 꽤나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KB금융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은행의 수익 기여도가 60%까지 떨어지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여하튼 수익 다각화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는 긍정적 요인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런 플러스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임 회장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분명 존재합니다. 시작부터 투명하지 않았습니다. 취임 과정이 선명하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경제부총리와 국무총리까지 제안받은 인물이 몇 달 뒤 우리금융 회장직에 노크했을 때 부담을 느끼지 않을 이사진이 과연 얼마나 될까. 게다가 임종룡은 금융위원장 재직 당시 우리금융만의 독특한 과점주주 지배구조를 설계했습니다. 정부가 부실기업을 정상화해 새로운 주인을 찾아줬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새 경영진이 회사를 책임지는 게 당연합니다. 매도인이 매각 후 회사의 경영까지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것은 누가 봐도 볼썽사나운 처신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설계한 과점주주 체제가 아니었다면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시도였다고도 볼 수 있겠죠.
당시 심판이 선수로 뛰겠다는 신호에 경영진은 강력 반발했습니다. 정권의 압력으로 받아들이기 충분했기에 이사회 분위기도 부정적인 기류가 강했습니다. 이는 사외이사 찬반투표에서 찬성(4)과 반대(3) 표가 비등했다는 점에서 잘 드러납니다. 노조 또한 완전 민영화 후 관료를 수장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과거의 관치금융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강한 우려를 표출했습니다. 임 회장은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지원을 했을지 모르나 우리금융 입장에선 ‘평지풍파’로 다가온 사건이었습니다.
취임 후에도 논란은 지속됐습니다.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단행하면서 자신이 졸업한 연세대 출신들을 중용해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지주 경영진 9명 중 8명을 교체했는데 절반 가량을 연세대 출신들로 메꿨습니다. 교체되지 않은 유일한 1명도 연세대 출신이었지요. 임 회장은 쇄신 경영을 위한 조직·인사혁신이라고 강조했지만 기존 임직원들에게는 ‘연세대 출신 점령군’으로 비치기에 충분했습니다. 특히 언론사 출신의 모 임원은 윤석열 정부 고위층과의 연결고리까지 거론되며 대표적인 낙하산 인사로 거론된 바 있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정권과의 관계가 틀어지고 우리금융에 대한 박해가 시작됐습니다. 전임 손태승 회장의 부당대출 건이 트리거가 됐는데, 이에 대한 임 회장의 처신이 부적절했다는 증언이 잇따랐습니다. 관련 사실을 일찌감치 접하고도 후폭풍을 의식해 의도적으로 뭉갰다는 겁니다. 벌을 내릴 시점에 상을 주는 결정도 내립니다. 취임 과정이 투명하고 인사 과정이 적절했다면 그렇게까지 크게 확산될 이슈가 아니었지만 CEO의 잘못된 판단과 맞물려 일은 겉잡을 수 없이 흘러갔습니다. 이복현 원장이 이끄는 금융감독원은 사냥감을 포착한 매처럼 CEO 교체를 작심한 듯 문제를 키웠습니다. 관련도 없는 동양·ABL생명 인수까지 불허하겠다고 나섰죠. 우리금융이 왜 이렇게까지 ‘괘씸죄’에 걸려들었는지 주변인들은 이유도 모르고 어안이 벙벙한 채 지켜봐야 했습니다.
임 회장의 불명예 퇴진이 기정사실화될 무렵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고 박해의 근원지인 대통령실이 힘을 잃습니다. 희한하게 여야 모두에 미운털이 박힌 이복현 원장의 태세도 점차 누그러집니다. ‘원래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며 코미디 같은 사진도 연출했죠. 우리금융은 정권 공백기에 무사히 보험사 인수를 허가받았고, 임 회장 퇴진론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임 회장은 사실상 ‘비상계엄’ 덕분에 불명예 퇴진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선 탄핵 사태로 기획재정부 장관 영전이 좌절됐지만, 윤석열 정부에선 반대로 탄핵 사태가 CEO 임기를 되살렸습니다. 인생사 새옹지마의 교과서 사례로 손색이 없습니다.
개정된 ‘최고경영자 경영승계 내부규정’에 따라 우리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내부 5명, 외부 5명 등 총 10명의 최고경영자 후보군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금감원이 제시한 ‘지배구조 모범관행’에서는 공정성 확보를 위해 평가 주체 및 방식을 다양화하고 외부 후보에게 불리하지 않게 진행할 것을 주문하고 있지만 현실에 구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재임 중인 CEO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경영승계의 투명성과 공평성을 보장해야 하지만, 사외이사 선임에 CEO 입김이 작용하는 경영 환경에서 이사회 독립성을 기대하긴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과점주주가 빠진 자리들을 교수들이 채워 현 우리금융 이사진은 임 회장에게 매우 우호적인 인사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범인(凡人)의 눈에 임 회장은 모든 것을 이룬 사람입니다. 공직의 끝판인 장관직을 두 번이나 수행했고, 민간에서도 금융지주 회장을 두 차례나 역임했습니다. 커리어의 마지막을 불명예스럽게 마무리할 뻔했지만 천운도 따라 임기 만료 시점까지 무사히 건너왔습니다. 실적도 좋고, 주가도 좋고, M&A 고비도 넘긴 지금이 떠나기 적절한 시점인 듯한데 당사자는 어떤 마음일까요. 항룡유회(亢龍有悔)를 가슴에 새기며 67세에 멈춤을 택한다면 많은 이들이 박수치며 덕담을 건네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