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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소유함으로써 나타나는 각종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선택하고 정제하며 배열해서 가치를 더하는 행위는 오늘날의 과잉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수많은 책이 쏟아지지만, 그중에는 너무 허술하게 쓰인 책도 있고 지나치게 장황한 책도 있으며 불필요한 내용을 너무 많이 담아낸 책도 있다. 축소 및 정제 과정을 거칠 때마다 어떤 형태로든 큐레이션은 제 몫을 한다. -경제학자 마이클 바스카 ‘큐레이션’ 中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가 늘어났다는 것이 곧 소비자의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이클 바스카는 지난해 ‘책 생태계 비전 포럼’에서 “너무 많은 제품이 있다는 것은 선택할 게 너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선택권이 많으면 많을수록 소비자들은 선택지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당황스러워한다”면서 콜롬비아 대학 쉬나 아이엔가 교수의 ‘잼 실험’을 언급했다.
쉬나 아이엔가 미 컬럼비아대 경영학과 교수의 선택지 실험(2000)에 따르면 슈퍼마켓 진열대 한 쪽에는 잼 6종류를, 다른 편에는 24종류를 놓고 사람들이 어느 쪽에서 더 많이 구입하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10명 중 4명은 6종류 진열대를, 6명은 24종류 진열대를 찾았지만 6종류 진열대를 찾은 이들의 30%가 잼을 구입한 반면 24종류 진열대를 방문한 사람들 중에서는 단 3%만 잼을 구입했다. 결국 더 많은 선택이 주어지는 것이 꼭 긍정적 결과를 이끌어낸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5만 3795종(만화책 제외)의 신간이 발행됐다. 이 가운데 아동용 도서(6698종)와 학습참고 도서(1203종)를 제외한다고 해도 4만 5000여 종에 달한다. 하루에 약 123권의 책이 발행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북 큐레이션’이다.
대형서점의 경우는 ‘신간’ ‘베스트셀러’ ‘추천도서’ 등의 메인 서가에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주요 서점의 경우는 MD(머천다이저)를 적극 기용하여 독자들의 선택을 돕는다. 앞서 언급한 ‘류’의 책들을 선정하고, 서가에 어떻게 배치하는지가 이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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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에는 단순히 책을 ‘배치’하는 것에 그쳤던 북 큐레이션이 다양한 플랫폼, 각자의 ‘취향 맞춤형’으로 세분화 되고 있다. 사람들의 취향과 관심사가 다른 만큼 흔히 ‘베스트셀러’로만 만족시키긴 어렵다. 다양한 책을 읽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니즈에 발맞춰 북 큐레이션도 나날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서점도 배치 수준에 그쳤던 큐레이션에 변화를 맞고 있다. 온라인, 앱에서 AI·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각자의 성향을 고려한 책을 추천해준다. 인터파크도서는 책 추천 인공지능(AI) 서비스 ‘도서톡집사’를, 예스24는 미슐랭처럼 맛있는 책을 골라준다는 ‘북슐랭’ 서비스를 내놓았다. 또 온라인 쇼핑몰 옥션은 2016년부터 북큐레이션 서비스인 ‘책 읽는 옥션’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서비스가 도서를 추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AI의 경우는 책 제목과 저자 등의 기본 메타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큐레이션을 진행하려면 책의 내용을 분석하고, 의미 있는 데이터를 끄집어내야 한다. 결국 아직까지는 사람의 손 또는 입을 거쳐야 비로소 소비자들이 원하는 ‘진짜’ 큐레이션이 완성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