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사옥 (사진=두산)
두산그룹이 주요 계열사 간 사업 시너지를 높이고 클린에너지, 스마트머신, 반도체 사업 등 3대 축으로 하는 형태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려다 철회했다. 주요 계열사인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가 각각 이사회를 통해 분할과 합병, 포괄적 주식 교환 등을 결정하기로 했지만, 주주와 금융당국의 반대에 무산됐다.
두산은 초대형 원전 및 소형모듈원전(SMR) 사업 추진을 위한 자금 확보와 밥캣과 로보틱스 간 사업적 시너지와 기업가치 상승을 위해 추진한 일이었던 만큼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 원전·SMR 사업 추진 에너빌리티…밥캣 분할로 1조원 재원 확보 가능
30일 두산그룹에 따르면 전날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각각 대표이사 명의의 주주서한을 통해 “사업구조 개편 방향이 긍정적일 것으로 예상되더라도 주주와 시장의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하면 추진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양사의 분할합병은 지속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두산은 “추후 시장과의 소통과 제도개선 내용에 따라 사업구조 개편을 다시 검토하는 것을 포함해 양사 간 시너지를 위한 방안을 계속 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합병이 시급했던 가장 큰 이유는 원전과 SMR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세계적 원전 호황을 맞아 전례 없는 사업 기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에 따른 생산시설 확대를 위한 현금 확보와 차입 여력이 중요한 상황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프랑스와 미국을 제치고 따낸 일이다. 이러한 경쟁력 우위를 원전 시장에서 입증한 덕분에 향후 폴란드, UAE, 사우디, 영국, 스웨덴, 네덜란드 등의 신규 원전 수주 기대도 나오고 있다.
박상현 대표이사는 “향후 5년간 체코를 포함해 총 10기 내외의 수주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 “미래성장동력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는 SMR 사업도, 최근 AI 서비스를 위한 전력 수요의 유력한 대안으로 떠올라 회사가 수립한 향후 5년간 62기 수주를 초과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현금 확보와 차입 여력이다. 향후 5년간 연 4기 이상의 대형원전 제작 시설을 확보하고, 연 20기 규모의 SMR 제작 시설을 확충하는 목표를 설정했지만, 설비 증설에 투입할 자금이 시급하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밥캣을 분할하면 밥캣이 빌린 차입금이 7000억원이 줄어들어 재원 확보를 할 수 있다. 박 대표는 “밥캣을 분할하면서 차입금이 감소해 차입금 의존도나 이자보상배율이 개선된다”며 “비영업용 자산 처분을 통해 5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1조원 수준의 신규 투자 여력이 생기기 때문에 생산설비 증설에 빠르게 투입할 수 있다.
■ 배당수익·주식교환비율 지적에…“투자수익률 창출·가치 상승 여지” 해명
그러나 에너빌리티와 밥캣의 합병 방식이 주주들의 피해를 입힌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합병은 무산됐다.
그간 두산그룹은 에너빌리티와 밥캣을 인적분할한 후 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재편을 추진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연 매출 10조원의 밥캣이 매출 530억원의 로보틱스로 흡수되면서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우려가 나왔다.
금융감독원은 두 차례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하고, 미비하면 무제한 정정을 요구할 것이라며 두산에 압박을 가했다.
두산 측은 밥캣 분할 시 배당수익이 줄어든다는 우려에 대해 “배당수익은 밥캣의 영업실적에 따라 매년 변동된다”며 “회사가 필요로 하는 투자재원에도 한참 부족한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업구조 개편을 하면 확보하는 재원 1조원을 미래성장동력에 투자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배당수익보다 높은 투자수익률로 더 많은 이익 창출이 가능하고 성장도 가속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두산밥캣 주주는 1주당 0.63주의 로보틱스 주식을 받게 되는데,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며 반발이 컸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도 알짜기업인 두산밥캣을 떼어낼 경우 주식가치 하락이 우려된다며 반대했다.
박 대표는 “분할 시 에너빌리티 주식 수는 25% 줄어드는 반면 기업가치는 10% 감소하는 것으로 판단한다”며 “재상장 시점의 에너빌리티 주당 가치는 두 비율의 차이만큼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투자재원 확보를 통한 추가 성장가능성을 고려하면 분할 후 회사의 가치는 높아질 여지가 있다”고 봤다.
두산 사업구조 개편 내용 (표=손기호)
■ 밥캣-로보틱스 결합, 사업적·실적 시너지 노려…밥캣, 기업인수 어려워져
두산은 밥캣과 로보틱스를 결합해 ‘스마트머신’ 사업으로 추진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두산밥캣 스캇 박 대표이사는 “밥캣의 로봇 기술력과 소프트웨어 역량을 로보틱스와 사업적 결합을 통해 소형장비 산업이 직면한 무인화와 자동화 트렌드에서 선도적 입지를 다지고자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주와 시장의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하면, 추진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두산로보틱스와 포괄적 주식교환 계약을 해제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두산밥캣은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다. 밥캣은 지난해 매출 9조7590억원, 영업이익 1조3899억원을 기록해 전년대비 매출 13%, 영업이익 30%가 늘며 최대 실적을 냈다. 최근엔 ‘2024년 세계 건설기계 기업 순위’에서 10위권에 들기도 했다. 밥캣의 현금성 자산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약 1조8000억원에 이른다.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매출 530억원, 영업적자 192억원의 부진한 성적을 냈다.
양사가 합병하면 로보틱스의 부진을 만회하고 밥캣은 로보틱스가 보유한 로봇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을 양사는 구상하고 있었다. 밥캣은 북미 시장에서 매출의 대부분을 올리고 있지만, 신흥시장에서는 중국기업 등과 가격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두산밥캣은 AI나 모션제어 기업을 인수하려고 했지만, 어려워졌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에서 두산밥캣을 분리하는 것은 그대로 추진하지만, 두산로보틱스에 흡수합병되는 것은 주주들의 반대로 금감원이 제동을 걸면서 진행하지 않는다.
이에 두산-두산로보틱스-두산밥캣으로 재편되고, 지주사의 손자회사는 피인수 기업 지분을 100% 인수해야 한다는 규제의 제약을 받는다. 이렇게 되면 최대주주 지분만 인수해도 경영권을 확보하는 게 안되고, 100% 지분을 인수해야만 기업 인수가 가능한 상황이라 인수를 통한 업그레이드가 쉽지 않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