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분식점에 걸린 메뉴판. (사진=김성준 기자)

#. 서울 강동구에 사는 20대 직장인 곽모씨는 최근 가볍게 점심을 해결하려고 분식점을 찾았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곽모씨가 주문하려 했던 참치김밥과 떡볶이 가격이 각각 5000원으로, 둘을 합치니 1만원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곽씨는 “몇달 전만 해도 4000원대였던 메뉴가 5000원으로 오른 것을 보니 가격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면서 “햄버거 프랜차이즈에서 런치 할인 메뉴를 먹는 편이 더 저렴할 것 같아 그냥 되돌아 나왔다”고 말했다.

외식 메뉴와 가공식품 등 가격 인상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먹거리 물가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주요 프랜차이즈와 식품제조사들은 원자재가 급등과 환율 상승 등 가격인상요인을 더는 감내하기 어렵다며 줄줄이 가격 조정에 나섰다. 전방위적인 먹거리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 부담도 한층 가중될 전망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세븐일레븐과 이마트24는 지난 1일부터 PB커피 판매가를 100원씩 인상했다. 국제 커피 원두 가격이 크게 오르며 원가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앞서 스타벅스와 폴바셋, 할리스 등 커피 프랜차이즈도 설 연휴 전 커피 음료 가격을 일제히 200원~400원 인상했다. 동서식품도 지난해 11월 인스턴트 커피, 커피믹스, 커피음료 등 출고 가격을 평균 8.9% 인상한 바 있다.

가격 인상은 커피 뿐 아니라 식음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광동제약은 이달 1일부터 옥수수수염차와 진한헛개차 편의점 판매 가격을 10% 인상했다. 하이트진로 토닉워터, HK이노엔 헛개수와 새싹보리, 오뚜기 컵밥 등도 2월부터 편의점 판매가가 인상된다. 햄버거 프랜차이즈 버거킹은 지난달 24일 와퍼 등 메뉴 가격을 100원씩 인상했다. 대상도 지난달 16일 소스류 제품 가격을 평균 19% 올렸다.

유통업계에서 ‘도미노 가격 인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소비자가 직접 체감하는 먹거리 물가 상승률은 훨씬 가파르다. 일반 음식점들도 농산물 가격 급등과 인건비 등 제반비용 상승을 이유로 메뉴판 가격을 바꿔 쓰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점심 식사를 외부에서 할 수밖에 없는 직장인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런치플레이션(런치+인플레이션)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이미 주요 도심 상권에서는 만원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실제로 주요 외식 메뉴 가격 상승률은 물가 상승률을 웃돌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자 선호 8개 외식 메뉴 서울 기준 평균 가격 상승률은 약 4.6% 수준으로 나타났다. 냉면은 6.1% 오른 1만2000원, 비빔밥은 5.8% 오른 1만1192원 등으로 조사됐다. 김밥 3500원(5.3%), 자장면 7423원(5%), 칼국수 9385원(4.7%) 등 ‘서민 음식’ 가격도 줄줄이 올랐다.

세계적인 이상기후 여파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고환율 수입 물가까지 오르면서 먹거리 가격 인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커피 프랜차이즈에서 주로 사용하는 아라비카 국제 원두 가격은 지난해 85% 올랐다. 코코아 국제 선물 거래가격도 173% 급등했다. 라면·과자 등에 사용되는 팜유 가격 역시 1년새 약 18% 올랐다. 국내에서도 농산물 작황에 따라 채소류와 과일류 등 가격이 널뛰기하고 있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음식에 사용되는 식자재 가격과 가공식품 등 가격이 모두 오르면서 외식 메뉴 가격도 함께 치솟고 있다”면서 “일반음식점의 경우 ‘메뉴비용’ 등으로 가격을 보수적으로 책정하는 만큼, 인상 요인이 있을 때의 가격 변동폭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