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업계가 안전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주요 건설사들의 공사 현장에서 사망자가 전년 대비 25% 증가하며, 산업재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HDC현대산업개발은 학동참사 항소심을 앞두고 법적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건설업 전반에서는 ‘중대재해 제로’를 목표로 안전 대책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대형 사고 속에서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21년 6월9일 광주 동구 학동의 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 도로 위로 건물 잔해가 쏟아져 시내버스 등이 매몰됐다. (사진=연합)
■ HDC현대산업개발, 학동참사 항소심 총력전...행정처분 앞두고 대응
HDC현대산업개발은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 참사(17명 사상)와 관련된 항소심 선고를 오는 6일 앞두고 총력 대응을 펼치고 있다. HDC현대산업은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전관 출신 변호사를 대거 선임하고, 두 차례에 걸쳐 변론재개를 신청하는 등 법리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연이은 붕괴 사고로 인한 행정처분을 최소화하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현산은 2021년 발생한 학동참사와 관련해 '부실시공' 혐의로 8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으며, ‘하수급인 관리의무 위반’ 혐의로 추가 8개월의 영업정지를 받았다. 하지만 하수급인 관련 처분은 4억원 규모의 과징금으로 변경됐고, 부실시공 혐의에 대해서는 현재 가처분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번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지 못할 경우 HDC현대산업은 8개월 영업정지 처분이 확정되면서 회사 경영에 악재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서울시가 조만간 결정할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7명 사상)의 행정처분과도 연결될 가능성이 있어 HDC현대산업으로서는 항소심 결과가 중요한 상황이다.
■ 대우건설·GS건설·포스코이앤씨·현대건설, 지난해 사망자 발생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건설 현장 안전 문제는 이처럼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용갑 의원실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시공능력평가 상위 20위 건설사들의 공사 현장에서 186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중 사망자는 35명으로 전년 대비 2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건설사 중 지난해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한 곳은 대우건설(7명)이었으며, GS건설과 포스코이앤씨가 각각 5명, 현대건설이 3명의 사망자를 기록했다.
반면, 삼성물산, 호반건설, DL건설, 중흥토건 등 4개사는 사망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삼성물산은 부상자가 273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DL건설(172명), 현대건설(141명), SK에코플랜트(141명)가 뒤를 이었다.
현대건설 서울 계동 사옥 전경 (사진=현대건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3년간의 통계를 보면, 사상자 수 기준으로 삼성물산(682명)과 현대건설(349명)이 매년 1, 2위를 차지하며 지속적으로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건설업계의 안전 대책 강화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박용갑 의원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에도 건설 현장의 사망사고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처벌 중심이 아닌 예방 위주의 법 개정과 정부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건설사들, 연초 대표이사 직접 현장 안전 점검…"실질적 조치 필요" 지적
연초부터 주요 건설사들은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서 안전 관리 체계 강화와 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롯데건설은 ‘안전하지 않으면 작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대표이사가 직접 전국 현장을 방문해 안전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대우건설도 대표이사와 최고안전책임자(CSO)가 참여하는 ‘안전보건 소통간담회’를 운영하며, 안전 예산을 확대하고 소규모 현장의 안전 기준을 개선하는 조치를 도입했다. DL이앤씨와 DL건설은 공동으로 ‘DL 안전보건 협의체’를 운영하며, 정기 회의를 통해 안전보건 목표를 점검하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안전 교육 확대에 집중하며, 협력사 관계자뿐만 아니라 본사 직원과 외국인 근로자까지 교육 대상을 확대했다. 서희건설은 ‘중대재해 사고 ZERO’를 목표로 안전실천 결의대회를 개최했으며, 동부건설은 ‘안전관리감독자’ 제도를 새롭게 도입해 현장 안전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건설업계는 산업재해 발생률을 낮추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사망자 증가와 대형 사고가 반복되고 있어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부의 감독과 건설사들의 자발적이고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건설산업연구 관계자는 “건설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기업 신뢰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법적 리스크도 커진다”며 “형식적인 안전 조치가 아닌 실질적인 사고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