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2025년도 신년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자료=연합뉴스)
국내 투자 자금이 가상자산으로 쏠리고 있다. 지난해 가상자산 하루 거래 대금이 20조원에 육박하면서 코스피·코스닥 규모를 이미 넘어섰다. 머니무브가 무섭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에서는 여전히 가상자산 상장지수펀드(ETF) 등 투자가 막혀 있어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11일 '코리아 프리미엄을 향한 거래소의 핵심전략'을 주제로 한 기자 간담회에서 "가상자산 상장지수펀드(ETF)와 관련해 이젠 논의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정책 당국과 시장 전문가들과의 협의를 통해 적절한 시점부터 시작해 점진적으로 실행해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상 세계 가상자산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에서는 '딥시크 쇼크'에 이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으로 가상자산 가격이 등락을 거듭하는 가운데, 비트코인 전략적 비축 등 관련 법안이 차근차근 추진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법정화폐와 가치가 연동되는 가상자산) 시장 확장과 비트코인의 전략적 비축을 통해 미국 정부의 달러 패권 강화 전략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주 단위와 연방 단위에서 비트코인을 전략적 자산으로 비축하는 법안들이 빠르게 준비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2단계 법안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위기감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는 이달 들어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을 위한 국회 포럼' 등이 연이어 열리며, 계엄 등 여파로 한동안 중단됐던 가상자산 관련 법 논의도 재개됐다.
전문가들은 시장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법인 투자자의 참여라고 강조한다. 법인 투자자의 참여로 시장 효율성이 높아지면 결국 가상자산 불공정 거래도 예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규제당국도 실무 테스크포스를 통해 법인 계좌 허용시 따라올 공시 문제나 부작용 완화 조치 등을 논의 중이다. 지난달 15일 가상자산위는 2차 회의를 열고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 2단계 입법 논의에 착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자리에서 가상자산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빠른 시일 내 (법인 계좌 허용과 관련해) 가상자산위원회에 결과를 보고하고 후속 절차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법인 계좌 허용은 사실상 비트코인 등 ETF를 추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꼽힌다. 법인 계좌가 허용된 이후에나 ETF 논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들은 이미 법인 영업 준비를 시작했다. 빗썸의 경우, 가장 먼저 법인 영업팀을 꾸리는 등 관련 행보에 나섰다. 지난달 빗썸은 제휴은행을 기존 NH농협은행에서 국민은행으로 변경하고 법인 영업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도 했다. 업비트의 경우, 최근 제휴은행 변경 논의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한동안 제휴은행 찾기에 고전했던 가상자산거래소들이 파트너 은행을 골라가는 형세로 변한 셈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은행들의 가상자산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면서 "가상자산거래소들의 제휴은행과 관련해서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