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차까지 진행된 보험개혁회의가 마무리 수순이다. 금융당국은 마지막 7차 회의에서 미래 대비 방안을 논의한 후 상시개혁 체제로 전환할 방침이다. 그 동안 수많은 이슈가 쏟아져 나왔지만 사실 담당기자 본인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이가 이 정도인데 생업에 바쁜 소비자나 투자자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지난해 9월 진행한 [보험개혁 Why] 시리즈에 이어 [보험개혁 How] 시리즈를 통해 그 간극을 좁혀본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미국조차 부러워할 정도로 잘 정착이 된 제도다. 다만 뚜렷한 한계도 있다. 보다 많은 질병에, 보다 많은 지원을 하지 못하는 예산상 한계다. 예를 들어 감기에 걸렸을 때 동네 병원에서 진료비 영수증을 받아보면 미안한 마음이 생길 정도로 ‘정말 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희귀암에 걸렸을 땐 얘기가 달라진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말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보험 적용(급여)과 비적용(비급여)의 차이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 보장률(급여율)은 2023년 말 기준 64.9%다(이후 데이터도 2023년 기준).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공백 상태의 진료 영역이 여전히 35.1%란 의미다.
이 공백을 파고든 것이 실손보험이다. 의료비는 크게 급여 항목과 비급여 항목으로 구성된다. 급여 항목은 다시 본인부담금과 공단부담금으로 나뉜다. 실손보험은 공단부담금을 뺀 본인부담금과 비급여 항목을 보장해 준다. 공공의 한계를 민간이 보완해 주는 상품이다. 초기에는 특정 상품에 특약 형태로 판매되다 2013년부터 단독 상품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국민 필수 보험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실손보험 가입자 수는 3997만명으로, 의무 가입인 국민건강보험(5145만명)의 78% 수준까지 왔다.
비교적 단기간에 실손보험이 국민 필수템으로 자리잡은 배경에는 보험사들의 피 터지는 경쟁이 있었다. 특히 자동차보험에서 만년 적자로 시름하던 손해보험사들이 탈출구로 실손보험을 주목하면서 판매 경쟁이 과열됐다. 이는 전체 계약(3579만건)의 83%(2973만건)를 손해보험사가 점유한 결과로 이어졌다. 생명보험사 보유 계약은 606만건(17%)에 그친다. 손해보험사들 중에서도 현대해상이 더 열심히 팔았다. 주력 상품이 효자 상품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으련만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 가입자 4000만명에도 보험사는 '울상'
실손보험은 판매시기, 보장구조 등에 따라 1세대(~2009년), 2세대(~2017년), 3세대(~2021년), 4세대(현행) 상품으로 구분된다. 세대별 비중은 1세대 19.1%, 2세대 45.3%, 3세대 23.1%, 4세대 10.5% 등 1~2세대(64.4%)가 전체의 3분의 2 수준이다. 문제는 1~2세대의 경우 재가입(약관변경) 조건 없이 팔았다는 점이다. 이는 소비자가 보험계약을 유지하는 한, 계약 체결 당시의 보장 조건이 100세까지 유지됨을 의미한다. 실손보험 판매 경쟁이 치열했던 2010년 전후 보험사들은 고객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내세우며 계약을 유치했다. 추후 손실 발생 우려보다 시장점유율을 올리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결과는 참혹했다. 최근 5년간 실손보험 적자 규모를 살펴보면 2019년 2조5133억원, 2020년 2조5009억원, 2021년 2조8581억원, 2022년 1조5301억원, 2023년 1조9738억원 수준이다. 평균 2조2761억원 규모다. 손실의 대부분은 판매 비중이 높은 손보사에서 발생하고 있다. 생보사의 경우 2022년부터 실손에서 소폭이나마 이익이 나는 반면, 손보사는 전 세대 상품 모두에서 손실이 이어진다. 2021년까지는 1~2세대 상품이 문제지만 2022년부터는 3~4세대 상품에서도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추세다.
실손보험 상품을 열심히 팔았던 현대해상은 실적에 치명상을 입었다. 지난해 4분기 실적 컨퍼런스 콜에서 현대해상 재무담당자는 현재까지 손실 부담 계약 비용이 약 1조4000억원이라고 밝혔다. 세부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아 전체 손실 비용에서 실손보험이 차지하는 규모를 정확히 알긴 어렵지만 증권가에서는 4000억원 안팎으로 추정한다. 업계 1위인 삼성화재의 약 2배에 달한다. 실손 손해율(발생손해액/보험료수익)을 살펴보면 세대 합산 평균 130%에 육박하며 업계 최고 수준이다.
생보사의 경우 실손에서 흑자를 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상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는 해석 외에 다르게 볼 도리가 없다. 문제는 정부가 나서지 않는 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대해상은 지난해 당기순이익 1조원 돌파 소식에도 불구하고 자본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155.8%)은 오히려 17.3%포인트 후퇴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배당을 실시하지 못했다. 밸류업 수혜주로 부각되며 지난해 3만원 위에서 움직이던 주가는 올 들어 2만원대 초반까지 급전직하했다.
■ 해마다 2조원 넘는 손실...현대해상 '치명타'
손보사들이 실손 상품에서 치명적인 손실을 보는 배경에는 ‘과잉 진료’ 이슈가 있다. 의료계의 ‘모럴 해저드’와 결합해 일부 가입자들은 꼭 필요한 진료만 받는 것이 아니라 도수치료, 백내장, 줄기세포주사 등 백화점에서 쇼핑하듯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다. 보험사의 보험금 지출이 급증하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새로운 의료기술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비급여 지출이 급증했다. 14조원 보험금 지출 가운데 비급여 보험금은 8조원(57%)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자연스럽게 실손이 과다 보상하는 분야로 의료인력 쏠림현상이 나타났고, 필수의료는 기피 분야로 전락했다.
무엇보다 보험료 공정성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실손 가입자의 상위 9%가 가져가는 보험금이 전체 지급보험금의 80%를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보험에 가입하고도 10원도 청구하지 않은 가입자는 무려 65%에 달한다. 일부 소수 가입자의 과잉 진료가 절대 다수의 보험료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보험사뿐만 아니라 소비자인 다수의 보험 가입자들도 피해자인 셈이다.
그 동안 정부는 실손보험 문제의 해결을 ‘보험료 인상, 보장범위 축소’ 중심으로 접근해 왔다. 하지만 현 정부는 접근 방식을 조금 달리했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의료개혁을 진행하면서 필수의료 회생 방안의 일환으로 실손보험 문제를 인식한 것. 단순하게 표현하면 보건복지부와 금융당국이 공동으로 대책을 마련토록 했다고 보면 된다. 특위 산하 전문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지난 1월 초 관련 정책토론회가 열렸는데 ‘비급여 관리개선 방안’은 건강보험공단이, ‘실손보험 개혁방안’은 금융위원회가 각각 발표를 맡았다.
■ '비급여+실손' 동시개혁 "시너지 기대"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비급여 방안의 핵심은 ‘관리급여’ 신설이다. 꼭 필요한 치료는 원칙적으로 비급여를 없애 모두 급여화하되, 급여 전환이 되지 않은 비급여 중 의학적 필요도를 넘어 남용 우려가 큰 경우 별도의 급여체계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서남규 건보공단 비급여관리실장은 “의료 이용의 오남용을 방지하고 국민들이 합리적 비용으로 의학적 필요에 따른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실손보험 개혁의 핵심은 중증·비중증 보장을 차등화하는 5세대 실손보험의 출시로 볼 수 있다. 중증 질환자의 경우 기존 수준으로 보장을 두텁게 유지하고, 일반 비중증 질환자는 건강보험 본인부담률과 연계해 자기부담금을 높이는 방안이다. 약관 변경이 불가능한 1~2세대 상품의 경우 재매입(보상 후 계약 해지)을 노력하되 필요할 경우 법을 개정해서라도 재가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개혁의 예외가 인정될 경우 실손보험의 근본적인 개혁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에 따른 조치다.
임희연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그 동안 보험업계는 비급여 빈도와 심도가 동시에 증가해 손해율 상승이 불가피했지만 비급여 관리 방안을 통해 심도가 줄어들고 실손보험 개혁안으로 빈도가 감소하면서 실손 손해율이 개선될 전망”이라며 “비급여 관리방안과 실손보험 개혁안이 동시에 적용됨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난 1월 9일 열린 '비급여 관리 개선 및 실손보험 개혁방안 정책토론회'에서 고영호 금융위원회 보험과장이 정리한 <실손보험 개혁 기대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