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지난 1월 정부서울청사에서 제6차 보험개혁회의를 열어 보험판매채널 책임성 강화방안 등을 논의했다.(자료=금융위원회)
6차까지 진행된 보험개혁회의가 마무리 수순이다. 금융당국은 마지막 7차 회의에서 미래 대비 방안을 논의한 후 상시개혁 체제로 전환할 방침이다. 그 동안 수많은 이슈가 쏟아져 나왔지만 사실 담당기자 본인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이가 이 정도인데 생업에 바쁜 소비자나 투자자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지난해 9월 진행한 [보험개혁 Why] 시리즈에 이어 [보험개혁 How] 시리즈를 통해 그 간극을 좁혀본다. -편집자 주-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한화생명금융서비스가 2022년 한화생명 보험상품을 1조2400억원을 팔 때 타사 상품은 1억원도 채 안 팔았다”고 지적했다.
한화생명금융서비스는 한화생명의 자회사형 GA(법인보험대리점)다. 2021년 이른바 ‘제판분리(제조-판매 분리)’가 시작되며 탄생했다. 자회사형 GA라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GA는 GA다. 특정 회사에 소속된 전속설계사와 달리 GA설계사는 상품 비교설명 의무를 갖는다. 보험업법상 500명 이상 대형GA 설계사의 경우 보험상품 판매시 3개 이상의 상품을 비교·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한화생명금융서비스 설계사들은 모회사인 한화생명의 상품만 99.9% 팔았다. 소비자들이 한화생명 상품을 선호한 결과로 해석하기에는 숫자가 너무 크다. 상황은 2023년과 2024년에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법과 규정도 GA 영업 현장에선 아무 소용이 없었다.
■ GA 규모 큰 한화생명, 자사상품 판매 최대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발표한 ‘경영인 정기보험 점검 결과’를 보면 가히 충격적이었다. 경영인 정기보험은 법인이 경영인 유고 등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장성 보험. 법인 CEO 또는 경영진을 피보험자로 해 사망 등을 보장한다. 하지만 일부 설계사들은 상품 판매 과정에서 상품의 본래 취지를 벗어나 편법·위법 판매에 열을 올렸다. 해약환급률 100% 도달까지 10년 이상이 소요되는 보장성 상품이지만 마치 저축성 상품인 것처럼 오인토록 유도했다. 해약환급금을 수령할 경우 법인세가 부과된다는 사실을 감추고 절세 효과가 큰 상품인 것처럼 안내하는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보험 가입의 대가로 리베이트(특별이익)를 제공하는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피보험자가 주부, 자녀인 것도 모자라 CEO의 자녀를 보험설계사로 둔갑시켜 부모가 보험에 가입하면 자녀에 판매수수료를 지급한 사례까지 확인됐다.
앞서 단기납 종신보험처럼 보험사 간 과당경쟁이 발생하자 금감원은 지난해 4월 경영인 정기보험에 대해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보험계약 유지보너스 설계 금지, 개인사업자 판매 금지 등 불완전판매 예방을 위한 현장 감독에도 나섰다. 문제는 영업 현장에서 설계사들은 당국의 감독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장감독 직후인 지난해 12월 23일부터 31일까지 경영인 정기보험 판매 실적이 있는 15개 생명보험사를 대상으로 일(日) 단위 모니터링을 실시했는데, 절판마케팅이 가동되며 상품 판매량이 감독 이후 오히려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판매에 가장 열을 올린 곳은 한화생명이었다. 모니터링 기간 중에만 644건(초회보험료 22억5200만원)을 판매해 생보사 총 판매 규모의 32.5%를 차지했다. 실적 증가율은 직전월 일평균 대비 152.3% 상승했다. GA에 지급한 평균 모집수수료는 초회보험료의 872.7% 수준이었고, 1053%(초회보험료 2900만원, 수수료 3억500만원) 사례까지 확인됐다. 신한라이프와 KB라이프생명도 절판 마케팅에 편승했지만 한화생명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일평균 판매 건수는 한화생명이 107건으로, 신한라이프(56건)와 KB라이프생명(49건)의 두 배에 달했다. 일평균 초회보험료 역시 한화생명(3억7530만원)이 신한라이프(2억660만원)와 KB라이프생명(1억8730만원)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해당 상품의 판매규모가 많은 것은 사실이나, 이는 금감원 감독행정을 활용한 절판마케팅의 결과는 아니다"며 "향후 진행될 검사를 통해 성실히 소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당국 현장감독 직후 '절판마케팅'... 간 큰 GA
지난 1월 열린 제6차 보험개혁회의에서는 ‘보험 판매채널 책임성 강화 방안’이 집중 논의됐다. 주요 내용은 보험회사의 GA 판매위탁 관리 강화, GA 자체 내부통제 및 판매책임 강화, GA 제재체계 개편, 보험중개사 책임성 강화방안 등이었다. 앞서 2차 회의(국민신뢰 제고방안)와 3차 회의(건전경쟁 확립방안), 5차 회의(판매수수료 개편방안)에서도 관련 논의가 진행된 점을 감안하면 거의 모든 회의에서 GA 대책이 논의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GA의 불건전 영업 행태는 감독당국을 괴롭히는 골칫거리였다.
6차 회의에서 발표된 주요 대책을 보면 우선 보험사의 GA 관리책임 강화 내용이 눈에 띈다. 그 동안 보험사는 GA와의 원활한 관계 유지를 위해 불완전판매 등 일탈이 발생하더라도 묵인·방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 보험사의 경우 단기실적 달성을 위해 GA의 일탈을 독려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에 금감원은 ‘GA 운영위험 평가제도’를 신설하기로 했다. 모든 보험사를 대상으로 위탁 GA의 보험계약유지율, 불완전판매비율 등 판매품질, 수수료 정책, 채널집중 위험 등을 평가해 등급(1~5등급)을 부여한다. 대형 GA 대상의 내부통제 실태 평가와 연계해 우수·양호 등급 GA와의 위탁계약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평가 결과가 저조한 보험회사에 대해서는 지급여력비율(K-ICS) 요구자본 증액 등 자본비용을 부과할 방침이다.
GA 스스로 판매책임을 강화하는 방안도 담겼다. 대형 GA의 경우 내부통제기준 세부절차와 준법감시 지원조직을 의무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GA의 배상책임 강화를 위해 영업보증금 최저한도가 신설되고, 불완전판매 등 배상책임 발생시 보험사의 GA에 대한 구상권 행사를 활성화시키기로 했다. 증권·카드업계에서 시행 중인 과징금 제도를 도입하고, GA 등록취소 사유도 확대할 방침이다. 등록취소, 업무정지 등 제재 처분을 피하기 위해 GA 간 보험계약을 이관하는 관행도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당국은 법규개정 없이 추진 가능한 과제의 경우 곧바로 실행하고, 관련 법령과 감독규정이 필요한 방안은 속도감 있게 개정 작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소비자가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는 ‘GA의 상품 비교·설명의무 강화 방안’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김병기 의원의 국감 지적에 따라 마련된 대책이다.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설계사는 보험상품을 소개할 때 소비자가 비교·설명을 원하는 보험회사를 직접 선택하도록 하고, 선택된 상품(3개 이상)은 반드시 비교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상품별 판매수수료 정보를 별도로 안내함은 물론, 특정 상품 권유시 추천 사유를 반드시 설명토록 했다. 고수수료 상품 추천 관행을 바꾸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이 같은 방안이 실행되려면 한화생명금융서비스와 같은 자회사형 GA의 경우 모회사 외 다른 보험사와 대리점 계약 체결을 확대해야 한다. 이에 특정 보험회사와 대형 GA 간 독점 계약 체결이 앞으로는 어려워질 전망이다.
■ 최대 수준 제재 경고도 '무용지물'
금감원은 보험개혁회의 일정과는 별개로 경영인정기보험 불완전판매와 관련, 한화생명과 관련 모집채널을 우선 검사 대상으로 지정하고 고강도 검사를 예고한 상태다. 금감원은 지난해 수수료 부당 지급, 특별이익 제공 등 보험사와 GA의 악성 위법행위에 대해 법상 허용하는 최대 수준의 제재를 내리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에 일부 보험사의 경우 법에서 규정된 최고 한도의 과징금·과태료와 함께 업무정지·등록취소 등 고강도 징계 위기에 노출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A의 영업 관행이 크게 개선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안팎의 중론이다. 보험회사의 경쟁력을 좌지우지할 만큼 GA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약 60만명 보험설계사 중 GA 소속 설계사는 30만명에 달한다. 설계사의 절반이 GA 소속이다. 업계 1위 상장사 인카금융서비스의 설계사 수와 매출액은 각각 2만명과 1조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GA 업계는 당국의 규제 강화 움직임에 반발해 최근 ‘삼성생명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보험사는 이제 GA의 도움 없이 신계약 목표치를 달성하기 어려운 처지다. 보험사가 역성장을 감수하기로 마음먹지 않는 이상 어떻게든 규제 리스크를 회피하며 GA와 공조해 영업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경영전략을 짤 수밖에 없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보험개혁회의의 초점이 GA 규제에 많이 맞추어진 듯한데 최근 몇 년 동안 GA의 영향력이 막강해진 점을 고려하면 규제 일변도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디지털 채널, 방카 채널 등 판매채널 다변화로 설계사 의존도를 낮춰야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자료=금융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