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한 가전업체가 광고에 사용했던 이 슬로건은 우리나라 광고사에 남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누구나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 이전에 경영자와 임직원은 수 많은 고민과 검토, 논의를 거듭한다. 그렇게 결행한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 등 경영 판단은 10년 후 기업을 바꿔놓는다. Viewers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업들이 지난 10년 전 내렸던 판단이 현재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추적하고 아울러 앞으로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KT&G 신탄진공장에서 생산된 해외 수출용 ‘에쎄’가 자동화 설비를 통해 적재되는 모습. (사진=KT&G)

KT&G와 KGC인삼공사가 해외 시장 비중을 꾸준히 높이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오래전부터 수출에 공을 들여왔던 양사는 지난해 나란히 사상 최대 수출액 기록을 갈아치웠다. 특히 최근 10년간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는 중이다. 눈부신 해외 성과의 기반에는 제품력으로 한층씩 쌓아 올린 ‘명품’ 인식이 있었다. 과거 전통적인 교역품으로 꼽히던 담배와 인삼이 다시 ‘수출 효자상품’으로 돌아온 모습이다.

21일 KT&G와 KGC인삼공사에 따르면 양사는 해외 매출이 해마다 신기록을 내고 있다. KT&G는 지난해 해외궐련 수출액이 1조4501억원, 수출량은 586억4000만 개비로 역대 최대 매출 및 수량을 기록했다. 담배사업부문 전체 매출에서 해외가 차지하는 비중도 42.9%로 늘었다. 지난해 KGC인삼공사 해외 매출 역시 3765억원으로 매년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해외 매출 비중은 28.9%로 30%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같은 성과는 10년 전인 2015년과 비교하면 한층 두드러진다. 2015년 KT&G와 KGC인삼공사 수출액은 각각 6810억원, 수출액은 817억원이었다. KT&G 순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24.1%, KGC인삼공사 해외매출 비중은 8.9%에 불과했다. 2024년 기준 10년간 KT&G 해외 매출은 2.5배, KGC인삼공사는 4.6배 껑충 뛰었다.

■내수시장 위기, 해외 개척 원동력으로

(자료=KT&G)

KT&G와 KGC인삼공사는 이전에도 꾸준히 해외 시장을 공략해왔다. 하지만 2015년은 이들에게 보다 발빠른 변화를 요구하는 해였다. KT&G의 경우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국내 흡연율은 꾸준히 감소하는 시대변화 흐름에 부딪혔고, KGC인삼공사는 시장에 뛰어드는 경쟁자들이 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실제 2010년 27.5%였던 국내 성인 흡연율은 2015년 22.6%까지 하락, 담배 수요 역시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흡연율 감소를 명분으로 담배 1갑 가격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하면서 위기감은 더 커졌다.

2010년대 홍삼시장 역시 참여 업체수가 1500여개 달할 정도였다. 국내 시장 대안으로 여겨졌던 수출도 신통치 못했다. KGC인삼공사 수출액은 2012년 1001억원에서 2013년 922억원, 2014년 837억원, 2015년 817억원으로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주력 수출국이었던 중국의 경기 악화 등으로 현지 뿌리삼 수요가 감소한 탓이었다.

이에 KT&G는 2015년부터 중동과 러시아, 몽골 등 신시장 개척에 속도를 내면서 궐련사업 무게추를 해외로 옮겨 갔다. 수출국 현지 판매 확대에 있어 대면영업 중요성이 큰 만큼 튀르키예, 러시아, 이란, 인도네시아 등 일찌감치 현지에 설립한 해외법인들은 든든한 뒷배가 됐다. 특히 초슬림 담배 ‘에쎄’가 해외에서도 승승장구하면서 전체 판매량을 견인했다. 2015년 KT&G 궐련 해외판매량이 처음으로 국내판매량을 넘어선다는 점도 해외시장 개척의 전망을 밝게 했다. 주요 글로벌 담배 브랜드가 영미 기업인 만큼 서구권 브랜드에 친밀도가 낮은 지역에서 틈새시장을 적극 공략하며 진출 국가를 꾸준히 늘리자, 지난해 기준 전체 궐련 판매량에서 해외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육박하는 결실을 맺었다.

KGC인삼공사도 2015년 미국 최대 창고형 유통업체인 코스트코에 홍삼음료 ‘정관장 홍삼원’을 입점시키며 영토 확장에 힘을 실었다. 홍삼원은 국내 홍삼음료 매출 1위를 차지하는 베스트 셀러였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한인 슈퍼마켓이나 정관장 매장 등에서만 판매되고 있었다. 미국 주류 유통업체에 한국식품이 입점하기 위해선 여러모로 까다로운 과정을 뚫어야 했다. KGC인삼공사는 코스트코 입점을 위해 꾸준히 문을 두드렸고 납품에 성공했다. 전통적인 홍삼 수출국이던 중국 등 아시아권을 넘어 미국·유럽 등에서 신규 수요를 발굴해 내면서, KGC인삼공사 수출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제품력·기능성 무기 삼아 ‘명품’ 인식 구축

(자료=KT&G)

이러한 노력이 성과로 이어진 배경에는 탄탄한 제품력이 꼽힌다. KT&G는 1996년 선보인 ‘에쎄’를 무기로 삼았다. 두께 7.8mm 내외의 레귤러형 담배가 주류였던 시장에 두께 5.4mm 내외 초슬림형 담배를 선보이며 차별화했다. 레귤러형 담배 대비 타르 함량이 낮다는 점도 건강에 관심이 커진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부드러운 풍미와 세련된 디자인은 ‘에쎄’를 해외에서 ‘프리미엄 제품’으로 각인시켰다. 동남아시아나 중아아시아 등에서는 ‘에쎄’를 피우는 게 ‘멋’으로 여겨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KGC인삼공사는 홍삼이 지닌 기능성을 적극적으로 휘둘렀다. 앞서 KGC인삼공사는 2008년 ‘혈행 개선’, 2009년 ‘기억력 개선’, 2012년 ‘항산화 작용’, 2014년 ‘갱년기 여성 건강’ 등 홍삼의 기능성을 식약처로부터 공식 인정받았다. ‘정관장’ 브랜드를 통해 과학적으로 검증된 홍삼 효능을 강조하면서 ‘믿고 먹을 수 있는 제품’이라는 인지도를 구축했다. 이는 혈액순환과 신진대사에 관심이 많은 서구권 소비자 수요를 저격했다. 특히 ‘홍삼원’은 카페인을 함유하지 않은 ‘건강한 에너지 드링크’라는 점을 내세워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KT&G는 제품력과 더불어 브랜드 현지화 전략, 유통 관리 시스템 개선 등 해외 궐련 사업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2011년 진출한 인도네시아는 해외궐련 판매량 중 24.2%를 차지하는 핵심 권역이 됐다. KT&G는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공장 인근에 신공장 건립을 진행하는 등 '생산-유통-판매'가 전부 가능한 현지완결형 법인으로 추가적인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KGC인삼공사도 지난해 미국에서 한국 기업 최초로 ‘스프라우츠’에 입점하는 등 해외 유통망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홍삼오일의 전립선 건강 기능성을 추가로 입증하는 등 다양한 홍삼 효능을 앞세워 ‘K홍삼 알리기’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KT&G 관계자는 “현지 생산거점 확보를 통한 공급망 다변화 전략이 안정적인 수출 확대 기반이 되고 있다”면서 “인도네시아, 튀르키예 등 주요 생산기지 운영을 통해 해외 공급 효율성을 강화하고 있으며 진출 국가 확대에 따라 주요 권역별 생산능력을 확보해 생산 및 물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