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한 가전업체가 광고에 사용했던 이 슬로건은 우리나라 광고사에 남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누구나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 이전에 경영자와 임직원은 수 많은 고민과 검토, 논의를 거듭한다. 그렇게 결행한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 등 경영 판단은 10년 후 기업을 바꿔놓는다. Viewers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업들이 지난 10년 전 내렸던 판단이 현재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추적하고 아울러 앞으로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KGC인삼공사 R&D 연구원. (사진=KGC인삼공사)
해외 사업 주춧돌을 다진 KT&G와 KGC인삼공사는 ‘미래 먹거리’ 마련을 위해 새로운 형태 제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담배와 건강기능식품 소비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다변화된 제품을 선보여 소비자 수요를 선점한다는 전략이다. 지속적인 투자로 구축한 탄탄한 연구개발 역량은 기존 틀을 깬 신제품 개발을 뒷받침했다.
24일 KT&G에 따르면 이 회사의 지난해 해외 궐련형 전자담배 전용 스틱 판매수량은 83억4000만 개비로 2021년 37억2000만 개비 보다 124% 성장했다. KT&G는 궐련형 전자담배를 NGP(Next Generation Product, 차세대 제품)로 분류하고, 핵심사업이자 미래 성장동력으로 적극 육성하고 있다. 지난해 NGP 매출은 7840억원으로, 담배사업부문 매출 중 20%를 차지했다.
궐련형 전자담배는 담뱃잎이 포함된 스틱을 전용 기기에 꽂아 가열한 증기를 흡입하는 방식으로, 실제 담뱃잎을 사용해 일반 연초와 가까운 풍미를 내면서도 유해물질이 기존 궐련보다 덜 배출돼 국내외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흡연 인구는 감소세지만, 궐련형 전자담배 이용율은 증가하고 있다. KT&G는 지난 2016년 7월 마케팅본부 산하에 제품혁신실을 신설하며 NGP 개발을 시작한 이래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2019년에는 제품혁신실을 NGP사업단으로 확대 개편하고 산하에 NGP개발실을 신설했으며, R&D본부에도 플랫폼별 스틱 개발 부서를 확대했다.
KT&G가 ‘편리하면서 유해성도 덜한 담배’로 NGP에 주목했다면, KGC인삼공사는 다양해진 건강기능식품 수요를 겨냥한 맞춤형 제품 개발에 뛰어들었다. 특히 매출 대부분이 홍삼에서 발생하는 만큼, 연구개발을 통해 과학적으로 홍삼 기능성을 입증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2008년 ‘혈행 개선’, 2009년 ‘기억력 개선’, 2012년 ‘항산화 작용’, 2014년 ‘갱년기 여성 건강’의 기능성을 인정받은 데 이어 2022년에는 홍삼오일의 ‘전립선 건강’ 기능성, 2024년에는 ‘혈당조절’ 기능성을 추가로 인정받았다. 이 같은 홍삼 효능은 특화 제품 개발로 이어졌다. KGC인삼공사가 올해초 선보인 혈당조절 건기식 ‘지엘프로(GLPro)’는 두달만에 40억원 매출을 기록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KGC인삼공사는 홍삼 기능성 확대와 함께 전통적인 홍삼 제품 제형에서 탈피한 다양한 형태 제품을 선보이며 소비층 확대를 꾀하고 있다. 특히 2012년 선보인 스틱형 홍삼제품 ‘정관장 에브리타임’은 간편한 섭취로 2030세대에게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 12월 기준 누적 매출이 1조5600억원에 달했다. KGC인삼공사는 아이들을 겨냥한 ‘홍이장군 젤리스틱’, 구미젤리 형태 ‘찐생홍삼구미 석류’ 등 홍삼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춘 제품은 물론, 필름 한장으로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는 ‘홍삼정 에브리타임 필름’도 선보이고 있다.
■제품 다변화 주춧돌은 연구개발 역량…투자 지속 확대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에서 KT&G는 명백한 후발주자였다. KT&G가 첫 궐련형 전자담배 ‘릴(lil)’을 론칭한 2017년 당시, 국내 궐련형 전자담배 점유율은 2.5%에 불과했다. ‘아이코스’를 앞세운 필립모리스는 점유율 87.4%로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고, BAT로스만스 ‘글로’도 점유율 10.1%로 KT&G의 4배에 달했다. 하지만 KT&G는 2018년 점유율 18.9%를 차지하며 곧바로 시장 2위에 뛰어오른 뒤, 2022년 점유율 49%로 필립모리스마저 제치고 1위 자리를 차지했다. 2020년 8월부터는 러시아를 시작으로 수출을 시작해 현재 전세계 33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이 같은 성과의 밑바탕에는 연구개발 투자를 통한 독자적 기술력 확보가 있었다. KT&G는 2015년부터 담배 산업에서 융합 기술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식재산 중심 기술 개발 전략을 추진했다. 2016년엔 지식재산권을 전담하는 조직을 신설하고 연구원 대상 직무발명보상 제도를 확대해 특허 출원을 장려하는 등 정책 지원도 강화했다. 2018년에는 독자적인 전산 시스템을 구축해 회사의 모든 지식재산권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체계적인 지식재산권 관리를 통해 KT&G는 NGP 사업 본원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NGP 개발 인프라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연구 성과를 달성하는 한편, NGP 시장 내 선 도적 입지 및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연구 성과에 대한 특허권 확보에도 나섰다. 지난 2016년 43건이었던 KT&G 특허 출원은 2024년 2977건으로 69배 늘었다. 지난해 기준 KT&G 누적 지식재산권은 1만4400건에 달한다. 지식재산권 경쟁력은 다변화된 제품 개발의 양분이 됐다. KT&G는 릴 하이브리드, 릴 솔리드, 릴 에이블 등 세분화된 소비자 취향에 맞춰 제품을 다양화하며 점유율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KGC인삼공사도 연구개발 투자를 거듭해 홍삼 관련 세계적인 수준의 공인 시험기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2010년 KOLAS(한국인정기구)로부터 인삼 및 홍삼분야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국제공인시험기관으로 인정받은 것을 시작으로 2016년에는 세계 최초로 ‘인삼 진세노사이드 성분’ 분석에 대한 인정을 받았다. 또한 2020년 6월에는 인삼 진세노사이드 및 작물보호제 분석규격 추가와 식품 무기성분 분석에 대한 KOLAS 신규인정을 획득하기도 했다. KGC인삼공사는 홍삼 기능에 대한 인정 결과를 다른 건강기능식품 업체와 조건 없이 공통으로 사용함으로써 업계 자산으로 삼고 있다.
홍삼과 관련한 독보적인 기술력은 KGC인삼공사가 다양한 현지화 제품을 선보이며 글로벌 브랜드 영향력을 확대하는 원동력이 됐다. KGC인삼공사는 전세계 허브 건강보조식품 시장에서 매출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미국·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도 입지를 다지고 있다. 2013년 중국 상하이, 2023년 미국 LA에 각각 설립한 현지 연구개발센터는 현지 맞춤형 제품 개발뿐만 아니라 현지생산 제품 공정 및 품질까지 관리하는 거점이 됐다. 여기에 더해 홍삼 기능성 관련 현지 임상 연구를 추진하고, 글로벌 건강기능식품 소재 시장정보수집도 함께 한다. 현지시장에서 선호하는 소재와 기능성을 담아낸 제품을 개발한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KGC인삼공사는 미국 소비자들이 혈액순환 기반 에너지 부스팅과 신진대사에 관심이 많은 점을 고려해 ‘에브리타임 2000mg’, ‘에브리타임 파워풀 녹용’, ‘에브리타임 에너지부스트’ 등 제품을 개발·판매 중이다. 중국 시장에서도 스틱형 제품 ‘에브리타임’을 통해 ‘뿌리삼’ 중심이던 기존 홍삼 시장을 제품 중심 시장으로 전환했다. 특히 빠르게 증가하는 1~2인 가구를 겨냥해 ‘에브리타임’ 규격과 함량을 다양화한 제품을 선보이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기준 ‘에브리타임’ 중국 수출액은 전년 대비 44% 상승했을 정도다.
KGC인삼공사 관계자는 “과학적 연구개발과 시장 맞춤형 전략이 정관장 글로벌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제품 혁신과 현지화 전략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사랑받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