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매물이 급감하며 전세의 월세화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 전세의 소멸이 가시화되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공공·민간임대가 주목받는다. 전문가들은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정책적 대응을 강조한다.
서울 시내 한 아파트 모습. (사진=문재혁 기자)
■ 전세의 멸종…월세로 빠르게 이전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이 빠르게 줄며 전세의 월세화 흐름이 가속하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서울 전세 매물은 2만3334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7% 감소했다. 이는 2022년 통계 집계 이후 최저치 2023년 5월(5만5882건)과 비교하면 58.2% 급감한 수준다. 특히 문정래미안(1696가구), 송파더센트레(1139가구), 백련산SK뷰(1305가구) 등은 1000가구 이상 대단지임에도 전세 매물이 전무하다.
전세 품귀의 주요 원인은 공급 부족이다. 세입자들이 전셋값 상승을 우려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서 기존 물량이 시장에 나오지 않고, 올해 하반기 서울 신축 입주 물량도 1만5000가구에 그쳐 신규 공급도 제한적이다. 이로 인해 월세 거래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 임대차 거래 중 월세 비중은 60.1%이며 서울은 63%에 달했다. 국토부에 따르 7월 한달 간 전세를 반전세·월세로 전환한 계약 비중은 5.1%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5% 증가했다.
월세화 흐름은 임대인과 임차인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며 더욱 빨라지고 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 보증금 운용보다 매달 월세 수입이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지난달 기준 전국 전월세 전환율은 5.6%로 기준금리(3.25%)를 상회한다. 세입자 역시 전세사기, 깡통전세 등 보증금 미반환에 대한 불안감으로 월세를 선호하는 추세다. 국토부에 따르면 누적 전세사기 피해는 3만2185건에 이르며 피해자 중 75%가 40세 미만 청년층이다.
발언중인 박상우 전 국토교통부 장관 모습. (사진=연합)
■ "역사적 사명 다했다"…고개 드는 전세 폐지론
이 같은 흐름 속에 전세 폐지론도 힘을 얻고 있다. 박상우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전세 제도는 역사적 사명을 다했다"며 "월세 시장 육성을 위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전세는 한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에서만 운영되는 독특한 제도인 만큼, 월세 중심 구조를 갖춘 선진국형 임대구조로 변화하는 것이 자연스런 흐름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전세 제도는 국제적으로는 보기 드문 임대 방식이다. 스페인,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 일부 지역에서 전세와 유사한 보증금형 임대 제도가 존재하나, 보편적으로 운영되는 국가는 한국, 볼리비아, 인도 등 소수에 그친다. 선진국 대부분에서는 월세 중심 구조가 보편적이다.
하지만 전세 폐지는 세입자의 주거 사다리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기존에는 전세를 통해 월세보다 낮은 주거비로 자산을 축적하며 내 집 마련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이행이 가능했지만, 월세 중심으로 전환되면 매달 고정비 부담이 늘어나 주거 자립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
서울시 공공주택건설사업 투시도. (자료=서울시)
■ 대안은 임대주택?…민간 위탁형 공공임대 주목
이러한 상황에서 전세와 월세의 대안으로 공공임대와 민간임대가 부각되고 있다. 공공임대는 정부가 직접 공급·운영하는 임대주택으로 시세 대비 저렴한 임대료와 장기 거주를 보장해 주거 안정성이 높은 주거 방식이다.
대표적인 공공임대주택인 국민임대주택은 시세 대비 60~80% 수준의 임대료, 1000만원대 보증금, 최대 30년까지 거주를 보장한다. 이에 수요자들도 높은 선호도를 보이고 있다. 올해 공급된 행복주택 일부 물량은 190가구 모집에 약 5만7000여명이 몰리며 경쟁률이 314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다만 공공임대는 청약 자격 요건이 까다롭고 대부분의 물량이 수도권 외곽 중심으로 공급돼 교통 접근성과 생활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한계도 있다. 이로 인해 입지가 좋지 않은 공공임대주택은 저렴한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공실률이 높다.
민간임대 중에서는 일정 기준을 충족해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공공지원 민간임대'와 '장기일반 민간임대'가 전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공공지원 민간임대는 민간사업자가 정부의 금융·세제 혜택을 받는 대신, 임대료 인상률 연 5% 제한과 최대 10년 거주 보장 등 공공적 기준을 수용하는 구조다. 일부 유형에 소득 요건이 적용돼 실수요자 중심의 공급이 가능하다.
장기일반 민간임대는 정부의 직접 지원 없이 민간이 자율 공급하되 일정 요건 충족 시 세제 혜택을 제공받는다. 임대료 인상률과 계약 기간 제한은 공공지원 민간임대와 유사하나 입주자 요건은 훨씬 유연하다.
이처럼 공공지원·장기일반 민간임대는 시장성과 공공성을 절충한 형태로, 정부가 직접 운영하지 않지만 일부 공공성을 반영해 민간 위탁형 공공임대 기능을 수행한다. 공공성과 시장성을 절충한 모델로써 전세가 사라지는 임대 시장의 공백을 메우는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 "월세화 가속, 주거 안정 위협"…정책 대응 시급
전문가는 전세의 월세화 흐름이 주거비 부담을 늘릴 것을 우려하며 국가차원에서 이를 위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월세로 전환되면 세입자들이 종잣돈을 모으기 힘들어져 내 집 마련하기 더욱 어려워진다"며 "국가적으로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서 월세화 흐름이 가속되는 점에 우려를 갖고 대비해야한다"고 말했다.
임대시장에서 월세가 중심이 될 경우에 대해서는 "전세 제도가 없는 선진국의 경우 매매가와 월세가 연동돼 급등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도 집주인이 월세를 지나치게 올리지 못하도록 제한을 두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월세 인상을 과도하게 억제하면 임대사업자의 수익성이 악화돼 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며 "월세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모범 임대인에게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해 균형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세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공공·민간임대에 대해서는 "공공·민간 임대주택을 늘려 공급 기반을 강화하면 주거비 부담을 일정 부분 낮출 수 있으나 주거의 질적 하락은 피할 수 없다"며 "단순한 물량 확대보다 품질·입지·관리 수준을 함께 끌어올릴 수 있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