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앞두고 건설업계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반복되는 산업재해로 국회가 대형 건설사 최고경영자(CEO)를 국정감사 증인으로 불러내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도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과징금과 퇴출까지도 고려한 고강도 대책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건설사들의 압박은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다.

■ 현대엔지니어링·포스코이앤씨 등 잇단 사망사고

올해 상반기 국내 대형 건설사 현장에서는 중대재해가 잇따르며 총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세 차례 사고로 6명이 사망했다. 가장 큰 사고는 지난 2월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서울세종고속도로 9공구 청용천교에서의 교량 붕괴이다. 이 사고로 작업자 10명이 추락, 매몰돼 4명이 사망했다. 국토안전관리원 조사 결과 거더 전도방지용 스크류잭 임의 제거와 런처 이동 기준 미준수 등 관리 소홀과 안전규정 위반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돼 인재로 판정됐다.

3월10일에는 경기 평택시 화양지구 힐스테이트 평택화양 아파트 신축현장에서는 갱폼(거푸집) 해체 작업 중 타워크레인 운용 실수로 50대 하청 근로자가 6m 높이에서 추락해 사망했고 동료 한 명도 부상을 입었다. 또한 3월 중에는 충남 아산시 오피스텔 신축 현장에서도 작업자 1명이 사망했다.

지난 3월13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대표가 출석해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

포스코이앤씨에서는 4명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3월 경기 광명 신안산선 터널 붕괴 현장과 5월 경남 함양~울산 고속도로 현장에서 각각 사망 사고가 이어졌다. 주요 원인은 현장 안전관리 미흡이 관련 기관과 정부로부터 지적됐다.

9월 들어서는 GS건설, 대우건설, 롯데건설 등 주요 건설사 현장에서도 추가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에는 현대건설 17명, 롯데건설 14명, 대우건설 13명 등 주요 건설사 대부분이 두 자릿수 산재 사망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잦은 사고로 인해 현대엔지니어링과 포스코이앤씨 대표 등 건설사 CEO들의 국회 국정감사 증인 출석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정부는 벌점과 영업정지, 입찰 제한 등 강도 높은 행정제재 정책을 발표했다.

■ 정치권, CEO 책임 들어 소환 가능성

여야 모두 이번 국감을 앞두고 건설사 CEO 소환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사망자 수가 줄지 않는 현실이 법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기 때문. 국회 환노위는 "현장의 소장이 아닌 경영진 차원에서 책임을 묻지 않으면 개선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앞서 건설사 CEO의 국회도 이뤄진 바 있다. 지난 2023년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로 GS건설 임병용 당시 대표가 국토위 증인으로 출석했다. 또한 DL이앤씨 마창민 대표도 중대재해 관리 소홀로 환노위에 불려 나왔다. 2022년 광주 학동 철거 참사 때는 HDC 정몽규 회장이 직접 국감장에 나서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산업재해예방 태스크포스(TF)와 안호영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의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

특히 이번 국감은 정치적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소위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한 직후 열리는 첫 국감이기 때문에 국감에선 산재 문제를 핵심 쟁점으로 삼을 것이 유력하다.

지난 8월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법을 어기는 것이 기업에 유리한 구조를 반드시 바꿔야 한다"며 강력 제재를 지시했다. 당시 대통령은 입찰 자격 영구 박탈, 금융 제재, 안전 미조치 사업장 신고 활성화와 포상금 제도까지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이러한 대통령의 강경 발언 이후에도 지속 사망 사고가 이어진 만큼 올해는 CEO 망신주기에 그친 국감이 아닌 실질적 대책을 찾기 위한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정부, 폐업까지 고려한 강경 정책…"대외신뢰도 하락, 수주에도 영향 우려"

앞서 정부는 최대 건설사 폐업까지도 고려할 수 있는 강경한 정책을 내놨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5일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내놓으면서 최근 3년간 두 차례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건설사가 또 다시 중대재해를 일으킬 경우 등록 말소까지 가능하게 한 점이다. 사실상 기업 퇴출을 제도화한 셈이다.

재무적 제재도 강화됐다. 연간 사망자가 3명 이상 발생한 법인은 영업이익의 최대 5% 또는 최소 30억원의 과징금을 내야 한다. 또한 중대재해 발생 사실은 지체 없이 공시해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금융권 신용평가, ESG 평가, 기관투자자 투자 판단 등에 불이익이 갈 수 있다. 안전 관리 실패가 기업 경영 전반에 파급력을 미치도록 한 것이다.

건설사 CEO가 국감장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기업 이미지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공공 발주처와 정비사업 조합들이 안전 이력을 주요 평가 기준으로 삼는 만큼 사고 이력이 드러난 건설사는 수주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현대엔지니어링의 교량 붕괴 사고처럼 관리 부실이 명확히 드러난 사례는 입찰 심사에서 치명적 약점이 된다. 안전관리 벌점이나 제재 이력은 공공 입찰 참여 제한으로 직결될 수 있다. 조합원들은 브랜드보다 안전 이미지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민간 정비사업에서도 신뢰도 하락은 피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그룹 회장이나 대표가 증인석에 서면 대외 신뢰도가 추락하고 주가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수주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안전에 수천억 들여도 미준수 사례 나와…정부, 발주처 함께 책임 분담해야"

국감이 정부가 참여하는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감장이 대기업 CEO를 대상으로 한 국회의원들의 질책장이 아닌, 진정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자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만난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수천억원이 넘는 안전 투자와 하청사 지원을 하고 있지만 전국 수백여 곳 현장 통제에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며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특성상 개인의 안전규정 미준수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공사 단위로 인력이 교체되기 때문에 직접 고용과 지속적 교육이 어렵다"며 "영국의 사례처럼 발주처와 설계자, 정부가 모두 안전 책임을 분담하고 적정 공사비와 공기 확보를 보장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작성한 '영국 건설산업의 안전보건관리제도'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의 건설안전 체계는 시공사 단독 책임 구조에서 벗어나 발주자, 설계자, 시공사가 함께 책임을 분담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공사 기간이 부족할 경우 시공사의 '공기 연장 요구'가 정당한 권리로 인정되고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