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자료=하나금융)
함영주 회장의 임기는 오는 3월까지다. KB금융, 신한금융과 달리 하나금융으로선 ‘지배구조 모범관행(이하 모범관행)’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이에 하나금융 이사회는 지난해 지배구조 내부규범 개정과 함께 경영승계 프로그램 가동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함 회장의 사법 리스크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현재 ‘채용비리’ 관련 소송 최종심을 앞두고 있다. 1심에선 무죄, 2심에선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모범관행에선 ‘비상승계에 대비해 경영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실행가능한 구체적인 비상승계계획을 마련하라’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하나금융은 지난해 3월 이승열 하나은행장과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를 사내이사로 선임, ‘사내이사 3인체제’로 전환했다. CEO 유고 등 비상승계 요건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후임 선임절차가 완료될 때까지 직무대행 체제가 가동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모범관행에선 또 ‘승계절차가 촉박하게 진행되거나 형식적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경영승계절차를 조기에 개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에 맞춰 하나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오는 3월 개최 예정인 정기주주총회일 90일 이전부터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 돌입했다. 지난해 12월 초 회의를 열고 내부 6명, 외부 6명 등 총 12명의 후보군(Long List)을 선정한 것.
하나금융은 “지난해 12월 중순 공정하고 투명한 심의와 투표를 통해 롱 리스트 가운데 최종 후보군(Short List)을 내부 3명, 외부 2명 등 총 5명으로 압축했다”고 밝혔다. 내부 후보 3명은 이변 없이 함영주 현 회장과 이승열·강성묵 부회장 등 사내이사 3명이다. 외부 후보 2명은 당사자 요청에 따라 공개하지 않았다.
하나금융 회추위는 다음 달 최종 후보를 결정할 예정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최종후보 선정 과정과 방식이다. 기존에는 최종 후보군 발표 후 1주일 정도 지나 면접(PT)을 실시하고 최종후보를 결정했지만 이번부터는 ‘단계별로 면밀하게’ 검증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모범관행에선 승계절차와 관련, ‘CEO 후보는 단계별로 면밀하게 평가·검증해야 하며 이를 위해 각 단계별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세부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지난달 23일 ‘숏 리스트’ 발표 이후 약 한 달간 후보들에게 최종면접 준비 시간을 부여했다.
후보 선정 과정에서 평가주체 및 평가방식도 다양화했다. 다면평가, 외부 자문기관을 통한 외부 후보 추천, 심층 평판조회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참고해 숏 리스트를 뽑아낸 것. 특히 평가 방법이나 시기가 외부 후보들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외부 후보만을 위한 간담회를 금융권 처음으로 열었다. 간담회서 외부 후보들은 사외이사인 회추위원들을 만나 최종면접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사항을 직접 물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2019년부터 7년째 하나금융 사외이사를 맡아 온 이정원 회추위원장(이사회 의장)은 “하나금융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 외부 후보들을 배려해 하나금융그룹을 설명하고 도움을 드리기 위해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며 금융당국의 모범관행을 성실히 수행 중임을 강조했다.
모범관행에선 또 ‘대면평가·검증 시기 간의 충분한 시일을 확보해 후보자가 평가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도록 하며, 이를 위해 승계절차가 개시되는 경우 후보임을 알리고 이사회 간담회 등에 참석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세부기준을 뒀다.
아울러 ‘경영승계절차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단계별 평가 결과에 관한 기록을 유지·관리해야 하며, 이에 관한 내용을 내규에 명시하고 이를 공시해야 한다’는 원칙도 제시하고 있다.
당국의 모범관행 발표 이후 금융지주 가운데 처음 경영승계 절차를 진행하는 만큼 하나금융 사외이사들은 모범관행의 30개 원칙에 최대한 근접하기 위해 별도의 회의와 토론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전언이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2016년 ‘지배구조 내부규범’ 제정 이래 거의 매년 개정이 진행돼 왔지만 지난해의 경우 모범관행에 맞춰 새로운 조항이 생겨나는 등 내용이 크게 바뀌었다”며 “특히 최고경영자 경영승계와 관련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하고 구체적인 내용이 보강됐다”고 설명했다.
2022년 ‘영업통’인 함 회장 취임 이후 하나금융은 실적 개선은 물론 내부 화합 측면에서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이변이 없는 한 이번 회추위에서 함 회장이 최종후보에 선정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CEO 유고에 대비해 이승열·강성묵 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임명해 뒀기 때문에 사법 리스크가 함 회장의 연임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란 반응이다.
다만, 함 회장 이후 수장을 두고선 오리무중이다. 손님 중심, 영업 중심인 하나금융의 기업문화를 고려하면 영업 부서에서 잔뼈가 굵은 강성묵 대표가 유리해 보이지만 은행장 경험이 없는 점이 마이너스 요인이다. ‘재무통’ 이승열 부회장은 은행장을 거치긴 했지만 현장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물음표가 붙는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 하나은행장 인사에서 이승열 행장이 연임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트래블로그 돌풍의 주인공인 이호성 하나카드 대표가 깜짝 발탁됐다”며 “신임 이호성 행장 역시 함 회장처럼 상고 출신의 영업통인 점을 감안하면 함 회장 이후로도 영업맨의 강세가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하나은행 회추위는 이 달 기업가정신, 비전 및 경영전략, 전문성 등 4개 분야 14개 세부 평가기준에 따라 숏 리스트 5명 후보의 PT 발표, 심층면접을 거쳐 투표를 통해 최종 후보를 선출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2023년 12월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을 발표했다. ‘셀프 연임’ 등 국내 은행의 지배구조가 글로벌 기준과 비교해 미흡하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였다. 5대 금융지주는 당국이 제시한 ‘모범관행’을 준수하기 위해 지난 한 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며 정기인사를 마무리했다. 발표 이후 1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각 금융지주들이 ‘모범관행’에 얼마나 근접했는지 점검해 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자료=금융감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