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의 모든 스포츠의 팬이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스포츠 중계를 만나면 관심이 없던 종목이라도 한참을 보게 된다. 기민하고도 박력 있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면, 신체를 잘 쓰는 인간은 보통 사람과는 한 차원 다른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스포츠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로, 내가 가장 즐기는 운동은 ‘걷기’다.
늦은 저녁 동네를 걷기 위해 가뿐한 차림으로 집을 나설 때의 내 기분은 마치 시간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과 비슷하다. 생활인의 머릿속을 묵직하게 누르고 있는 현실의 고민들이 걷는 동안에는 흔들리는 스노우볼 속의 글리터처럼 부유하는 느낌이다.
걷는 중에도 물론 잡념은 쉬지 않고 떠오르지만, 그 무게는 훨씬 가벼워진다.
걷기에 기술적인 몸놀림은 필요 없다. 그저 작은 동작이나마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경험이 상쾌하다. 아마 내가 격한 운동을 하고 있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각이다. 그렇게 움직이는 몸에 집중을 하면서 눈과 코의 신경은 바깥을 향해 열어젖힌다.
골목 모퉁이를 돌고, 가로등 불빛을 만난다.
어느 집 앞에서는 찌개를 끓이는 냄새가 난다.
유난히 눈부신 어느 상점의 간판이 보이는가 하면,
장사 마칠 준비로 분주한 상인도 보인다.
퇴근이 늦은 직장인의 뒤를 따라 걸을 때도 있고,
오가는 사람이 전혀 없는 주택가의 언덕을 만날 때도 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어느새 발바닥이 뻐근하다 싶어 시계를 보면 집을 나선 지 2시간이 지나있다. 이게 시간 여행이 아니면 뭐겠나?
중학생 시절 다리를 다친 적이 있다. 그맘때 남자아이들은 축구가 인생의 주요한 과업이었다. 선수가 될 것도 아닌데 얼마나 과격하고도 진지하게 축구를 했는지 발목 인대가 늘어났다. 엄마에게 등짝을 맞으며 찾아간 병원에서 내 발목을 이리저리 돌려보는 의사에게 나는 누가 들으면 청소년 축구팀의 유망주라도 되는 듯한 질문을 했다.
“저 언제 다시 뛸 수 있어요?”
“왜 굳이 뛰려고 하니? 걷는 것도 충분히 좋은 운동이야.”
추측건대 그는 내 질문을 오해했던 것 같다. ‘축구를 다시 할 수 있는 때’를 물었는데, ‘걸어도 충분하다’는 답변에 나는 잠시 슬렁슬렁 걸으면서 축구를 하는 나와 친구들을 상상했다.
이상하게도 그 후로 오랫동안 의사의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 학창시절 내내 친구들과 운동을 할 때 숨이 차고, 더 이상 못 뛰겠다 싶은 순간 그 말이 떠올랐다. ‘걷는 것도 충분히 좋은 운동’이라니. 그때는 우문현답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스포츠는 기술과 규칙, 점수, 경기의 문제로 훈련을 필요로 한다. 어떤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하고 제대로 된 동작을 취할 줄도 알아야 한다. 즉각적인 대처 능력도 키워야 하고 타고난 재능도 발휘해야 한다. 무엇보다 스포츠는 점수이며 순위이고 성적이다. 그러나 걷는 것은 스포츠가 아니다. 걷는 이에게 성적이나 점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
걷는 사람은 자기가 무슨 길을 걸어왔는지, 어느 산책길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지, 어디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황홀한지를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혁신적인 신발, 매우 튼튼하면서도 가벼운 양말, 다용도 배낭, 기능성 바지 등 새로운 시장을 만들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걷기’에도 소위 스포츠 정신이라는 것을 도입하려고 애를 쓴 것이다.
이제는 ‘걷기’가 아니라 ‘트래킹을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걷기 위해서는 두 다리만 있으면 된다. 다른 건 일체 필요 없다. 더 빨리 가고 싶다고? 그럼 걷지 말고 다른 걸 하라. 걷는 것은 스포츠가 아니다.>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 프레데리크 그로 / 책세상(2014)
나는 ‘스포츠맨’이 아니다. ‘걷기’만으로도 얼마든지 운동의 개운함과 청량함을 느낄 수 있으며 시끄러웠던 마음이 정리되는 것 또한 덤이다.
‘걷기’는 의미를 가진 인간 움직임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고도로 훈련된 스포츠인도 한 걸음을 내딛으면서 경기를 시작한다. 스포츠 선수들에게 생각대로 몸을 움직이면서 느껴지는 자유가 있다면 평범한 내가 산책 중에 걸음을 멈추고 밤의 풍경을 보는 자유도 있다.
쓸데없이 반골 기질인 나는, 그런 의미에서 지금 거세게 부는 러닝 열풍에 절대 올라타고 싶지 않다. ‘러닝’과 ‘걷기’는 다르다. 운동량의 차이가 아니다. 엘리트 스포츠인만 느끼는 몸의 자유로움을 넘볼 수 없어 고작 ‘두 발’만 있으면 되는 운동을 선택했는데 그마저 스포츠라는 영역에 넣으려는 온갖 시도를 정중히 사양하고 싶다.
딸 아이가 잠들었다.
이제 시간 여행을 떠나야겠다.
김선욱 레디투다이브 대표
■출판사에서 10년간 마케팅을 하며 <소행성책방>, <교양만두> 등의 채널을 통해 지식교양 콘텐츠를 만들어왔다. 현재 출판사 '레디투다이브'의 대표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