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솔로입니까?”라는 질문은 보통 ‘애인의 유무’를 묻는 의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폭을 넓힌다면 홀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 즉 1인가구도 솔로다. 이처럼 여러 각도의 솔로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가리켜 우리는 ‘솔로사회’라고 말한다. 그 과정에는 ‘연애 혹은 결혼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앞으로 풀어나갈 글은 “솔로들이여, 일어나라!”와 같은 찬양이 아니다. 단지, 솔로(싱글)이라 불리는 이들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현상의 재확인이다. -편집자주
[뷰어스=이소연 기자] 자의로 선택한 비연애·비혼주의, 씁쓸하게도,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의 청춘도 여전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다. 환경을 바꿀 수 없으니 생각을 바꾸자는 태도를 취하는 이들이 많아졌을 뿐이다.
그가운데 찾아낼 수 있는 유의미함은 ‘주체성’과 ‘선입견 탈피’다. 어쨌든 사람들은 결혼을 못 하는데서 나아가 ‘안’ 하는 입장을 취하며 과도기에 올라탔다. 요즘의 젊은 세대는 무력한 현실이 슬플지언정, 제도와 그를 둘러싼 입장에 떠밀리지 않고 행복의 가치를 어디에 둬야할지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 이하 내용은 각 인터뷰이의 답변을 토대로 임의 구성한 좌담회입니다.
<참가자>
A(여·30) B(여·28) C(여·30) D(남·31)
■ 연애? 결혼? 내가 알아서 할게요
이소연 기자(이 기자): 다들 결혼을 안 하겠다는 이유가 뭐야?
A: 결혼하고 싶은 상대가 없기도 한데 사실 굳이 노력하고 있지도 않아. 내가 하고 싶은 걸 참아가며 연애나 결혼을 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까지 해온 연애가 힘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더 이상 하고 싶지는 않더라고. 최근에도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고민 끝에 관계를 시작하지 않기로 했어.
B: 사실 결혼을 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출산이야. 여자들은 아이 낳으면 건강, 사회적 지위 등 많은 걸 잃잖아. 여기에 맞벌이에 살림, 육아까지 하라고? 생각만 해도 피곤해. 아무리 남자가 돕는다 해도 성에 차지 않을 거야. 만약 돈이 많다면 결혼을 하겠지. 사랑이름으로 여자들을 희생시키는 이 사회에서,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위안 받을 건 돈 뿐이야. 내가 계산적이라고? 생각해 보면 자식도 저절로 자라는 게 아니잖아. 분유, 기저귀도 다 돈이라고.
C: 마찬가지야. 나는 웨딩 판타지를 쉽게 버리지 못하면서도 현실적인 이유로 결혼을 못 하고 있는 쪽에 가까워. 특히 30대에 접어드니 더 하더라고. 인연을 만나는 것부터 내가 주체가 되어 살림을 꾸리는 것, 아이가 자란 후 경력단절을 극복하는 것까지, 모든 일에서 자신감을 잃어가. 20대에 비해 새로운 만남의 기회가 적은 것도 사실이고. 게다가 이제 상대를 결혼상대로 간주하게 되니 더 신중해져.
이 기자: 사회적인 부당함 때문에 결혼을 못 하는 상황도 없잖아 있는 거네. 그로 인해 결국 결혼을 안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 거야?
B: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고 처음 생각한 건 중학생 때였어. 그 때는 자식 잘 키우는 게 전부인, 자식의 성공이 부모의 성공인 삶이 많았지. 자식이 기대에 못 미치면 화풀이도 자식에게 하고. 당장 우리 어머니도 나에게 ‘조건부 희생’을 하고 계신데, 나라고 ‘무조건적인 희생’을 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해서 자식 중심으로 사는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아.
D: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통념이 아닐까? 꼭 결혼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잖아. 오히려 결혼을 준비하면서 양쪽 집안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정작 연인에게 소홀해지는 것 같아.
■ 비연애·비혼이 삶에 미치는 영향
이 기자: 비연애 혹은 비혼을 결심하고 난 뒤 생활에서 달라진 게 있어?
A: 오롯이 나의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게 좋지.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 이성인 경우가 많아서 남자친구와 많이 다투기도 했는데 이제 그럴 일도 없고. 남자친구는 남자친구고 이성 친구는 이성 친구 아니야? 난 친구들과의 시간도 소중해. 이런 소소한 행복을 구태여 하는 노력 없이 지킬 수 있어서 지금이 좋아.
C: 아까도 말했듯 연애나 결혼을 결심하지 않은 적은 없어. 하지만 연애나 결혼을 하고 있지 않은 지금,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생각은 들어. 원할 때 언제든 먹고 마시고 떠나고 일탈하는 일상이 소중해. 부모님 생일 선물을 챙길 때나 저축을 유동적으로 할 때도 모두 나의 자유의지로 결정되고. 이런 것들이 혼자인 삶에서 가치 있다고 여겨.
D: 같이 살 집 마련, 혼수, 결혼 준비 등 껄끄러운 절차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잖아. 그 덕분에 조금 더 여유로운 나만의 삶을 꿈꿀 수 있고 스스로에 집중할 수 있게 됐어. 연애를 하고 있더라도 그 사람의 가정환경, 모아놓은 돈, 가족 병력 등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 우리를 ‘이상한 취급’하는 이들에게
이 기자: 다들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혼자 살아가겠다는 입장을 이해해?
B: 나는 상황이 바뀌게 되면서 주변 의견과 내 신념과 충돌한 케이스야. 원래 부모님도 나의 비혼을 지지해주셨거든. 그런데 형제가 사망하고 난 뒤에는 “손주는 누구한테 보니?”라는 말을 하기 시작하셨어. 부모님마저도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주지 않는 느낌을 받았지. 내 인생을 평생 책임져주지도 않을 거면서 왜 아이를 낳으라고 말하는 걸까?
D: 맞아. 나는 비혼·비연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거든. 다만 결혼을 원하는 부모님들을 설득하는 게 힘들어.
(사진='비정상회담' 화면 캡처)
이 기자: 부모님 세대는 비연애, 특히 비혼을 받아들이기 힘드실 거야. 아무리 삶의 형태가 다양해진다고 해도 모두가 이를 존중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연애하고 결혼하고, 이 수순이 당연해진지 너무 오래 됐으니까. ‘평범해져라’라는 말 많이 들었지?
B: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결혼 이야기할 때마다 가슴이 턱턱 막히지. 주변에 본인의 욕심을 강요하고, 결혼을 안 한다고 하자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해. 하지만 결혼을 종용받은 당사자가 막상 결혼을 한다고 해서 행복해질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부모가 되는 게 더 이기적인 일일 텐데 말이야. 비연애·비혼을 이야기할 때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게 너무 지겨워.
C: 나도 가족들이 남자친구가 있는지 꾸준히 물어봐. 습관처럼 “왜 애인이 없어? 결혼 안 해?”라고 묻는 지인들도 많아. 결혼이 의무도 아니고 내가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뿐인데 말이야. 이런 질문을 한 두 번은 참아도 계속 반복하는 사람에게는 대놓고 짜증을 낼 수밖에 없어. 다만 지인들의 경조사에 혼자 참여하면 눈치가 좀 보이더라고. 누가 눈치를 주는 건 아니지만 어울리는데 한계를 느껴. 다들 연인이나 남편과 참석을 하니까.
A: 다들 그렇구나. 나는 주변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있어. 그만큼 인식이 많이 바뀐 건지, 내 주변에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은 건지 오히려 공감하고 격려(?)하는 사람들도 있어. 부모님도 “너만 좋다면 혼자 살아도 괜찮다”면서 딱히 연애나 결혼을 재촉하지 않고. 그동안 부모님이 투자한 축의금이 아까울 뿐이야.
[솔로시대] ①비연애·비혼,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솔로시대] ②솔로가 세상을 바꾼다
[솔로시대] ③삼포세대, ‘혼자인 삶’을 말하다
[솔로시대] ④홀로 살아갈 자유, 인정 아닌 존중 받아야 할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