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은 재료에 우선한다는 증시 격언이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개된 국내 수급 상황은 쌍끌이 매도(기관과 외국인 동시 매도)를 개인투자자가 온전히 받아주는 형태다. 과거에는 쌍끌이 매매에 따라 시장의 명과 암이 달리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쌍끌이 매도 공세를 개인들이 소화하는 흐름이 진행되었음에도 국내 주식시장은 기존의 상승 흐름이 유지되고 있다.
12월 27일 종가 기준으로 국내 주식시장은 4%대(2020년 종가지수 대비 KOSPI와 KOSDAQ 각각 +4.39%와 +4.43% 기록)의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시장에 비하면 한국시장의 흐름은 상대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같은 기간 동안 S&P 500지수와 NASDAQ 시장이 각각 25.82%와 21.45% 상승했다.
한국증시가 상대적으로 부진하게 된 근본 원인은 쌍끌이 매도 때문이다. 2020년 1월 이후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64조원과 51조원 정도 매도했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기관은 17조원 정도 팔아 치웠다. 지난 2년여 동안 양 시장에서 기관투자가의 순매도 규모는 80조원이 넘었다. 지난 2000년 이후 2019년까지 20년 동안 유가증권시장에서 연기금이 96조원 매수한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잔인함 그 자체다.
이러한 기관 매도를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이 주도하고 있다. 2020년 6월 이후 기관의 순매도분 57조원 중 31조원을 연기금이 매도했으며, 2021년에도 연기금 중심의 기관의 매도 공세는 그치지 않았다(그림 참조).
(자료=한국거래소)
연기금이 국내 주식을 본격적으로 매도하기 시작한 것은 2020년 6월부터다. KOSPI 기준으로는 2000선을 돌파하는 시점이다. 시장이 50% 이상 추가 상승하는 흐름에 매도일변도로 대응한 셈이다. 이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의 국내 증시에 대한 예측이 잘못됐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주가예측을 잘못한 결과로 2000에서 3000을 돌파하는 동안 국내 주식을 매도한 것이라면 비난받을 만하다. 수익률 제고의 기회를 놓친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라는 것이 꾸준히 기금이 쌓이는 구조인데 굳이 공격적으로 국내 주식을 매도일변도로 대응할 필요가 있었는지 반문하고 싶다. 언젠가는 국내 주식을 재편입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연금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장기투자로 대응해야 하는 전략적 대응이 기본이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에 대한 국민연금의 보유 포트폴리오 역시 각고의 노력이 반영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편입종목이 시가총액 비중 대로 구성되어 있다. 너무나도 단순하다.
2021년에도 국내 주식시장이 상승하고 해외증시가 강세를 연출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운용수익률은 긍정적 결과가 예상된다. 하지만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의 매도공세가 국내 증시의 상대적 약세를 초래함으로 인해 보다 높은 성과를 저해하는 자충수가 되었다. 연기금을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매도공세가 국내 증시의 상대적 약세 현상을 초래한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쌍끌이 매도는 국내외 펀드 시장이 엑티브보다 패시브가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프로그램매도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거래되는 모양이다. 하루 하루의 시장 흐름을 영혼 없는 프로그램매매가 좌우하고 있다. 밤사이 미국시장이 강세를 연출함으로써 국내증시의 상승이 예상됐다고 해도 프로그램 중심의 쌍끌이 매도가 집중될 경우 국내 시장은 기대와 정반대의 상황이 초래되는 현상이 일상화되었다. 시가총액규모를 가리지 않고 프로그램매매가 개별종목의 수급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결론적으로 영혼 없는 프로그램 중심의 쌍끌이 매도가 전체 시장뿐만 아니라 개별기업에도 상대적 부진을 초래한 것이다.
지난 2000년 이후 20년동안 진행된 연기금의 순매수 규모(96조원)를 개인투자자들이 지난 2년만에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20조원 이상을 추가 매수했다. 역으로 해석한다면 기관과 외국인의 수급은 이전보다 여유로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 시장 상황은 녹녹치 않았다. 주식관련 유통시장의 수급을 악화시킬 수 있는 경쟁시장이 만만치 않았다. 즉 발행시장인 IPO시장에서 증시자금을 20조원 이상 흡수했고, 서학개미들의 해외 주식 투자 역시 100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주식이상의 위험자산인 암호화폐시장의 활성화 역시 주식시장의 수급을 위협하는 경쟁시장으로 자리매김된 상황이다. 국내외적으로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있고, 인플레 압력이 심화되면서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기류 또한 만만치 않다. 기업들의 실적 모멘텀 약화 또한 부담스럽다. 결론적으로 2022년 주식시장 역시 쉽지 않은 힘든 상황이 우려된다.
(자료=한국거래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쌍끌이 프로그램매도가 진정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시장의 프로그램매매 동향에 근거(그림 참조)하면 최근에 매도일변도의 흐름이 반전되는 모습이다. 연말이라는 계절적 요인이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연초에는 연말에 유입된 매수가 매도로 돌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난 2년동안 진행된 쌍끌이 매도로 수급상 여유가 있다면 역으로 2022년에는 매수기조가 진행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양호한 개인수급이 2022년에도 지속된다면 쌍끌이의 프로그램매도 공세가 누그러진다면 보다 나은 흐름이 예상된다. 2022년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높지만, 우려와 다른 흐름도 가능해 보인다. 수급이 재료에 우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재열 중부대 겸임교수
<기고자 소개> 오재열씨는 신한증권 삼성증권 SK증권 한국투자증권 IBK투자증권 등 투자분석팀에서 일했으며, HR자산운용 운용부문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아인파트너스 대표이사, 중부대 경영학과 겸임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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