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원주민 저항 500주년’ 기념 행사가 진행됐다. 멕시코 아즈텍 제국이 스페인 군대에 함락된 지 500주년을 맞아 침략자들에 맞선 원주민들의 저항을 기리는 행사였다.

지난 1521년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스는 600명의 병사와 일부 원주민 동맹군을 이끌고 아즈텍 제국을 공격했다. 석 달 만에 수도가 함락됐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인구 500만의 제국이 겨우 몇 백 명의 스페인 군대에게 무너진 원인은 무엇일까? 훈련된 병사와 화승총 같은 신무기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구대륙으로부터 넘어온 전염병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분석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지 20년이 지나자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천연두가 유행병이 되었다. 정복자 유럽인들은 내버려두고 원주민 인디언들만 골라 전염되는 수수께끼 같은 질병이었다. 16세기 초 2000만명에 이르는 멕시코 인구가 100년 후에는 160만명으로 급감했다.

잉카족의 몰살과 미국 인디언들의 감소 또한 유럽에서 넘어온 전염병 때문이었다. 학자들은 아메리카 대륙 인구 1억명 가운데 90%가 전염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산한다. 신대륙의 인디언 원주민들은 유럽에서 넘어온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페스트 등과 같은 질병에 노출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면역성이나 유전적인 저항력이 전혀 없었다.


신대륙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천연두’는 인류가 해결해야 할 오랜 숙제이기도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피해를 끼쳤던 전염병이 바로 천연두다. 20세기에만 3억~5억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치명률이 30%에 이르는 무서운 질병이다.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는 표현에서 ‘마마(媽媽)’가 바로 천연두의 우리 표현이다.

천연두는 무섭고 끔찍한 질병이었으나 가볍게 한번 걸린 사람은 다시 걸리지 않는 질병이기도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환자의 옷을 덮고 자거나 천연두 딱지를 콧구멍 안으로 넣거나 하는 민간 요법들이 성행했다. 이것이 나중에 인두 접종법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두 접종법도 위험이 따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영국의 의사 제너는 소의 천연두로 불리는 ‘우두’에 감염된 사람들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우두 바이러스를 접종하기 시작했다. 제너는 우두 접종을 라틴어 ‘소’를 뜻하는 ‘vacca’를 활용해 ‘vaccinae’라고 부르자고 했다. 오늘날 예방접종을 뜻하는 ‘백신’은 여기서 시작됐다.

천연두는 20세기 중반까지도 인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을 중심으로 무섭게 창궐했다. 세계보건기구는 1967년 천연두 근절 계획을 추진했고, 여기에는 동서냉전 하에서도 미국과 옛 소련이 적극 참여했다. 미국의 전염병학자 윌리엄 페기와 옛 소련의 미생물학자 빅토르 즈다노프와 같은 헌신적인 학자들의 노력도 있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세계보건기구는 1980년 5월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공식 선언했다. 천연두는 인류가 정복한 최초이자 유일한 전염병이기도 하다.

2020년 미국의 민간연구단체 ‘생명의 미래연구소’는 천연두 박멸에 앞장선 페기와 즈다노프를 ‘생명의 미래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시상식에 참여한 빌 게이츠는 ‘이들은 우리가 질병을 물리칠 수 있음을 세상에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21세기 인류에게 가장 크나큰 시련을 가져다 주고 있는 코로나19. 코로나19 정복에 있어서도 천연두처럼 정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이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