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제51회 한일경제인회의가 본래 예정된 일자보다 4개월여 보류되다 뒤늦게 열렸다. 초여름부터 시작된 일본제품불매운동 여파였다. 정치나 외교 갈등과 별개로 경제 활성화는 재개되어야 하며 교류 협력이 중요하다는 요지는 필요한 발언이었지만 여론은 일본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라며 한일경제협회 김윤 회장 발언에 반기를 들고 있다.
25일 한일경제협회는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일한경제협회(회장 사사키 미키오(佐佐木幹夫) 미쓰비시상사 특별고문)와 이틀에 걸친 회의에 대한 소회와 함께 경제활성모색방안에 대해 밝히는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김윤 회장(삼양홀딩스 회장)은 일본 불매운동이 경제적 면에서 봤을 때 안타까운 점이 많다면서 “한국 소비자들이 넓은 아량을 가지면 좋겠다”고 밝혔다. 일본불매운동에 대한 의견은 취재진 질문을 받고 시작됐다. 김 회장은 “법을 지키는 공정한 경제 활동과 경쟁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고 일부는 사회에 환원해서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경제인의 임무이며 소비자 권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좋은 품질의 물품을 좋은 가격에 사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라면서 ”불매운동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소비자들도 넓은 아량을 갖고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좋은 가격에 사서 생활을 영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은 한일경제인회의가 양국 국교 정상화 4년 뒤인 1969년을 시작으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진행되다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관련 판결 후 정치 경제 악화로 인해 연기된 데 대해서도 “지금까지 양국 재계 관계는 과거에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탄탄했는데 최근 갈등 국면에서 소원해졌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 솔직한 의견 교환을 통해 좋은 결과를 도출했고, 이같은 양국 경제인들의 활동이 국가 관계 개선에 기여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일본의 사사키 회장 역시 “불매운동으로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이 큰 영향을 받고 있고, 여행 보이콧으로 한국인 방문객이 급감해 일본 지방자치단체들과 관광 산업도 타격을 입고 있다. 지금 왜 이런 일(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의견을 밝히며 “한일관계가 대단히 어렵지만 지금까지 유지해온 매우 양호한 경제 관계가 여기서 무너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이번 회의를 개최했고, 서로 더 깊이 신뢰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경제인회의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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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일경제인회의는 정치적 역사적 이유와 별개로 양국 경제를 협력 발전시켜나가겠다는 재계인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던 자리로 의미가 깊다. 양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겠다는 경제인들의 신념이 양국 경제에 있어 도움이 되지 않을 리 없다. 특히 대화를 통한 관계 복원 소원 역시도 모두가 바라는 일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여론의 안타까움은 2019년 한일관계 악화가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대한 사려 깊은 사고가 수반되지 않았다는 데에서 불거졌다. 여론은 한일경제인회의의 취지와 의지는 깊이 공감한다면서도 양국 관계가 틀어진 원인을 명확히 알고 의지를 다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여론은 한일경제인회의 내용에 대해 “한국은 예수나 부처일 수 없다. 먼저 뺨을 때린 일본에 다른 뺨을 내주면서 경제 활성화를 호소하는 것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요즘 말로 호구로 보일 수 있는 발언들이 나와 안타깝다.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는 국가에 아량이란 단어를 써야 하는지 이해가지 않는다” “나도 경제를 걱정하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양국 관계가 개선되길 희망한다. 그러나 한국 협회 회장 발언은 아베를 비롯한 일본 정치인들, 개념없는 말들을 쏟아내며 국민성을 깎아내린 일본 경제인들에게 했어야 했다”는 등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째서 국내에서 일본불매운동이 시작됐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국내 소비자들에게만 아량을 베풀라 종용한 것 같아 불쾌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다만 한일경제인회의에서 솔직한 의견이 오갔다는 점과 함께 관계복원에 대한 절실함이 드러난 만큼 일본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 기대한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이날 한일경제인회의는 양국정부에 관계복원에 대해 제언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성명을 통해 이들은 “최근 양국 정치·외교 관계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고 경제면에서도, 문화·스포츠 교류 분야에서도 긴장의 연속”이라며 “경제 상호발전에 정치·외교가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양국 정부가 대화 촉진을 통해 한일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길 강력히 요망한다”고 밝혔다.
한일경제인회의는 우려와 희망을 동시에 안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론 역시 경제인 못지않게 양국 경제를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무조건적인 화해, 아량의 태도를 언급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 일본불매운동이 단순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시작된 것이 아닌 만큼 정치 경제적으로 더욱 신중하고 현명한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 한 관계자 역시 “일본과의 관계는 국민정서까지 얽히며 단순히 정치인들끼리, 경제인들끼리 합의한다고 해서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상태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볼 때 무조건 일본을 배제하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깊은 고민이 필요해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