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숙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왼쪽)과 이한준 LH 사장. (사진=연합뉴스)
철근 누락 단지가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건설 사업 전과정에서 손길이 뻗은 '이권 카르텔' 관련 조사가 예고됐다. 국토교통부는 시공사의 불법 하도급 현황을 들여다보고 한국토주지택공사(LH) 직원 등에 대한 전관예우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는 계획이다.
LH는 2일 서울지역본부에서 건설업계 이권 카르텔 근절대책 논의를 위해 임원 및 전국 지역 본부장을 긴급 소집했다. 공공기관 최대 발주기관인 LH가 건설 이권 카르텔을 자초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데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다.
LH는 경기남부지역본부에 반카르텔 공정건설 추진본부를 설치한다. 건설안전기술본부장이 본부장을 맡으며 카르텔 철폐가 이뤄질 때까지 운영한다. 설계, 심사, 계약, 시공, 자재, 감리 등 건설공사 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관예우, 이권개입, 담합, 부정·부패 행위 등 근절을 목표로 한다. 또 고질적인 건설산업의 잘못된 관행을 근절·개선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건설혁신방안을 마련하는 임무도 맡는다.
앞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달 31일 LH의 '전관 특혜' 의혹을 주장하면서 감사원에 공익 감사를 청구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도 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이번에 철근 누락이 된 15개 단지 중 13곳의 설계회사는 LH 퇴직자들이 근무 중이거나 고위급 임원으로 머물렀던 전관 업체다.
설계 업체에 LH 출신이 대거 포진하면서 공공사업 설계 발주와 공모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시공사는 물론 설계사와 감리사까지 발주처인 LH에게 일감을 받아야하는 입장에서는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 철근 누락이 확인된 단지의 시공사 관계자는 "단순도급이더라도 시공사 책임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설계상 미흡이 있던 것도 사실"이라며 "시공사도 설계와 관련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LH의 파워를 감안하면 유명무실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철근 누락이 확인된 15개 단지 중 7개 단지는 설계상 계산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철근이 누락됐다. 이를 지적해야 할 감리의 존재도 LH 출신들이 포진한 정황이 포착됐다.
LH는 정부의 건설업계 이권카르텔 근절 노력에 선제적으로 동참하고자 특단의 개선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문제가 확인된 무량판 주차장 15개 단지의 경우 전관예우 의혹이 제기된 업체들의 선정절차와 심사과정을 분석해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이한준 LH 사장은 "이번에 건설안전을 제대로 확립 못 하고 설계·감리 등 LH 건설공사 전 과정에서 전관특혜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하면 'LH의 미래는 없다'는 각오로 고강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 설계만 문제?…건설사, 시공 오류에 고질병인 불법 하도급 정황도
철근 누락이 확인된 15개 단지 중 설계 도면 대로 시공이 되지 않은 단지도 5곳이 나왔다. 시공을 맡은 건설사가 설계 대로 시공을 하지 않은 '부실 시공'에 해당한다.
이와 함께 민간이 발주한 무량판 구조(보 없이 기둥이 직접 슬래브를 지지하는 구조) 아파트 설계·시공 과정에서는 불법 하도급 정황도 포착돼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에서는 민간 발주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아파트 전수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불법 하도급은 발주처가 인지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이 같은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파장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정부는 지난 5월 23일부터 7월21일까지 불법하도급 의심 현장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총 108개 현장에서 182건의 불법 하도급이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 전반에 퍼진 불법 하도급 관행이 무량판 구조 적용 아파트에서도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는 대목이다.
시공사의 시공력도 문제다. 무량판 구조에 대한 노동자의 시공 숙련도 부족은 물론 본사에서 파견해 현장을 지휘할 이들도 철근 고의 누락을 눈감거나 문제를 지적할만한 업무 역량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부동산 활황기를 거치면서 해외 건설 현장 인력이나 플랜트 담당 인력을 주택사업 쪽으로 배치하면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는 거다.
이한준 LH 사장도 지난달 31일 철근 누락 아파트 명단 공개 당시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시공사의 경우 건설 물량이 많이 증가하는 데 비해 인력 증가가 수반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현장이 가면 시공사의 경우가 본사에서 파견된 정규직 인력은 극소수"라면서 "어느 한 곳의 문제가 아니라 건설하는 전체 시스템, 구조상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기에 맞춰 일을 진행해야 하다보니 전체를 꼼꼼히 들여다 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며 "건설사들이 소화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주택사업 수주를 하면서 관련 인력 수요가 폭증한 것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