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 스틸 여성 감독의 숫자가 많아지고,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선 영화의 숫자도 늘어나는 등 국내 영화계에서도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내실을 따져보면 한계는 여전하다. 멀티캐스팅이 이뤄지는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여성은 여전히 소수이며, 이마저도 제한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최고 성수기로 손꼽히는 여름 시즌과 추석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한국 영화들이 다수 개봉했다. 여름에는 ‘나랏말싸미’를 시작으로 ‘사자’ ‘엑시트’ ‘봉오동 전투’ 등 총 4편의 한국 영화가 출격했으며, 추석 연휴에는 ‘힘을 내요, 미스터 리’를 비롯해 ‘타짜: 원 아이드 잭’ ‘나쁜 녀석들: 더 무비’가 극장가를 찾았다. 이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여성 캐릭터는 ‘엑시트’의 의주(임윤아 분)뿐이다. 나머지 작품에서는 주요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하지 않거나, 주인공으로 나오더라도 반복되는 문제들을 재현하는 데 그친다. ‘나랏말싸미’와 ‘사자’는 남자 배우들이 투톱으로 나섰다.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를 소재로 한 역사 영화로, 세종(송강호 분)과 신미 스님(박해일 분)이 의기투합해 한글을 만드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려냈다. 소헌왕후(전미선 분)의 역할이 컸다. 소헌왕후는 극 중에서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세종의 한글 창제를 돕는다. 남편이자 왕의 결정을 헌신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닌, 생각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그럼에도 메인 포스터와 시놉시스 등에는 소헌왕후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움을 남겼다. ‘사자’는 격투기 선수 용후(박서준 분)와 구마사제 안 신부(안성기 분)가 함께 구마를 하는 과정이 스펙타클하게 그려진 오컬트 블록버스터다. 용후와 안 신부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성장하는 과정이 중점적으로 그려진 이 영화에서는 눈에 띌 만한 여성 캐릭터가 전혀 없다. 악마에게 빙의된 빙의자로 등장하거나, 용후가 번개처럼 나타나 안 신부를 구해줄 때까지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는 수녀만이 여성이다. 사진=영화 '나랏말싸미' '나쁜 녀석들: 더 무비' 스틸 ‘타짜: 원 아이드 잭’은 정 마담(김혜수 분)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남긴 ‘타짜’의 세 번째 이야기라는 점에서 기대가 있었다. 남성 중심 도박판에서 여성 캐릭터들을 대상화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섹시함을 이용해 도박판을 누비는 영미(임지연 분)나 어떠한 설명 없이 독특한 분위기를 흘리며 갈등을 유발하는 마돈나(최유화 분) 등 어떤 여성 캐릭터도 단독적인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한다.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며 남자들을 움직이려는 팜므파탈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 영화에서 혹평을 받은 최유화는 ‘봉오동 전투’에서도 유일한 여성 독립군으로 등장했다. 그동안 여성들의 독립 운동 참여를 다루지 않았던 여느 영화들보다는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럼에도 제 역할을 소화하지는 못했다. 주인공에게 죽은 누이가 남긴 반지를 전달하는 역할 외에 그에게 부여된 역할은 거의 없었다. 결정적인 전투에는 참여하지도 못한 채 약자인 아이들을 데리고 현장을 떠나야 했다. 두 영화에서 존재감을 남기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은 최유화지만, 그에게 부여된 서사가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마냥 개인의 능력만으로 치부하기는 힘들다. ‘나쁜 녀석들: 더 무비’는 진일보한 모습을 단 하나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가장 심각하다. 오구탁(김상중 분), 박웅철(마동석 분), 고유성(장기용 분) 등 경찰과 조폭 등 거친 남자들 사이에서 사기 전과 5범의 화려한 곽노순(김아중 분)은 눈에 띄는 존재다. 그러나 등장부터 철저히 대상화돼있다. 교도소 호송차량 안에 있던 범죄자들은 경찰에 체포되는 곽노순의 미모를 보고 환호하며 소리를 지르고, 카메라는 그들의 시선에서 곽노순을 포착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곽노순을 몸매를 훑어내는 카메라는 철저히 남성적 시각에서 그를 다룬다. 뿐만 아니라 곽노순이 이 영화에서 단독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은 하나도 없다. 사기 전과 5범이라는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 곽노순은 영화 내내 투덜거리며 전력 외 평가를 받거나 뜬금없이 액션신을 소화하며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거친 남자들 틈에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할 말을 하며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척 하지만, 정작 그가 스스로 해결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View 기획┃영화 속 여성 캐릭터②] 블록버스터 속 여전한 한계

장수정 기자 승인 2019.10.20 12:45 | 최종 수정 2019.10.21 09:29 의견 0
사진=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 스틸


여성 감독의 숫자가 많아지고,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선 영화의 숫자도 늘어나는 등 국내 영화계에서도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내실을 따져보면 한계는 여전하다. 멀티캐스팅이 이뤄지는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여성은 여전히 소수이며, 이마저도 제한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최고 성수기로 손꼽히는 여름 시즌과 추석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한국 영화들이 다수 개봉했다. 여름에는 ‘나랏말싸미’를 시작으로 ‘사자’ ‘엑시트’ ‘봉오동 전투’ 등 총 4편의 한국 영화가 출격했으며, 추석 연휴에는 ‘힘을 내요, 미스터 리’를 비롯해 ‘타짜: 원 아이드 잭’ ‘나쁜 녀석들: 더 무비’가 극장가를 찾았다.

이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여성 캐릭터는 ‘엑시트’의 의주(임윤아 분)뿐이다. 나머지 작품에서는 주요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하지 않거나, 주인공으로 나오더라도 반복되는 문제들을 재현하는 데 그친다.

‘나랏말싸미’와 ‘사자’는 남자 배우들이 투톱으로 나섰다.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를 소재로 한 역사 영화로, 세종(송강호 분)과 신미 스님(박해일 분)이 의기투합해 한글을 만드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려냈다. 소헌왕후(전미선 분)의 역할이 컸다. 소헌왕후는 극 중에서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세종의 한글 창제를 돕는다. 남편이자 왕의 결정을 헌신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닌, 생각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그럼에도 메인 포스터와 시놉시스 등에는 소헌왕후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움을 남겼다.

‘사자’는 격투기 선수 용후(박서준 분)와 구마사제 안 신부(안성기 분)가 함께 구마를 하는 과정이 스펙타클하게 그려진 오컬트 블록버스터다. 용후와 안 신부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성장하는 과정이 중점적으로 그려진 이 영화에서는 눈에 띌 만한 여성 캐릭터가 전혀 없다. 악마에게 빙의된 빙의자로 등장하거나, 용후가 번개처럼 나타나 안 신부를 구해줄 때까지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는 수녀만이 여성이다.

사진=영화 '나랏말싸미' '나쁜 녀석들: 더 무비' 스틸


‘타짜: 원 아이드 잭’은 정 마담(김혜수 분)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남긴 ‘타짜’의 세 번째 이야기라는 점에서 기대가 있었다. 남성 중심 도박판에서 여성 캐릭터들을 대상화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섹시함을 이용해 도박판을 누비는 영미(임지연 분)나 어떠한 설명 없이 독특한 분위기를 흘리며 갈등을 유발하는 마돈나(최유화 분) 등 어떤 여성 캐릭터도 단독적인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한다.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며 남자들을 움직이려는 팜므파탈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 영화에서 혹평을 받은 최유화는 ‘봉오동 전투’에서도 유일한 여성 독립군으로 등장했다. 그동안 여성들의 독립 운동 참여를 다루지 않았던 여느 영화들보다는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럼에도 제 역할을 소화하지는 못했다. 주인공에게 죽은 누이가 남긴 반지를 전달하는 역할 외에 그에게 부여된 역할은 거의 없었다. 결정적인 전투에는 참여하지도 못한 채 약자인 아이들을 데리고 현장을 떠나야 했다. 두 영화에서 존재감을 남기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은 최유화지만, 그에게 부여된 서사가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마냥 개인의 능력만으로 치부하기는 힘들다.

‘나쁜 녀석들: 더 무비’는 진일보한 모습을 단 하나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가장 심각하다. 오구탁(김상중 분), 박웅철(마동석 분), 고유성(장기용 분) 등 경찰과 조폭 등 거친 남자들 사이에서 사기 전과 5범의 화려한 곽노순(김아중 분)은 눈에 띄는 존재다. 그러나 등장부터 철저히 대상화돼있다. 교도소 호송차량 안에 있던 범죄자들은 경찰에 체포되는 곽노순의 미모를 보고 환호하며 소리를 지르고, 카메라는 그들의 시선에서 곽노순을 포착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곽노순을 몸매를 훑어내는 카메라는 철저히 남성적 시각에서 그를 다룬다.

뿐만 아니라 곽노순이 이 영화에서 단독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은 하나도 없다. 사기 전과 5범이라는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 곽노순은 영화 내내 투덜거리며 전력 외 평가를 받거나 뜬금없이 액션신을 소화하며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거친 남자들 틈에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할 말을 하며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척 하지만, 정작 그가 스스로 해결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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