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자 13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제7차 보험개혁회의 및 보험개혁 대토론회가 열렸다.(자료=금융위원회)
2023년, 보험사들의 사업비 집행이 전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35조원에서 40조원으로 5조원이나 늘었다. 같은 기간 수입보험료가 16조원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증가였다. 사업비는 보험사의 영업 경비다. 생명보험사의 경우 인건비·신계약비·유지비·수금비 등이, 손해보험사는 손해조사비·일반관리비·영업비·수수료·모집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사업비가 늘었다는 것은 보험사가 영업에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는 의미다.
보험사가 영업에 갑자기 많은 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회계제도(IFRS17) 시행 덕이다. 보험상품 회계 처리는 일반 상품과는 사뭇 다르다. 다수의 보험상품은 매출(보험료)의 일부를 고객에게 다시 돌려줘야 한다. 매출의 상당 부분이 곧 부채다. 매출이 한 번에 잡히지도 않는다. 길게는 30년 이상 걸린다. 이런 특성 때문에 보험사의 회계 처리는 까다롭고 복잡하다.
보험손익의 경우 과거에는 특정 시점 현금 유·출입만 충실히 따지는 ‘현금주의’로 처리했다. 이 방식은 보험계약 초기에는 이익이 많이 잡히지만 보험금 지출이 발생하는 후기에는 이익이 적게 잡히는 시차 상의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보완한 것이 ‘발생주의’다. 보험계약의 기대이익을 발생한(할) 만큼 균등하게 인식한다. 총 100억원의 이익이 발생하는 10년짜리 보험상품을 예로 들면, 현금주의의 경우 계약 1년차에 가장 많은 이익이 잡히고 10년차에는 이익이 확 줄어든다. 반면, 발생주의는 10년 동안 매년 10억원씩 균등하게 이익을 인식시킨다. 다만, 경험통계가 충분치 않은 신상품의 경우 이익 추정(가정)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단점은 있다.
자료=금융위원회
■ 현금주의→발생주의 회계제도 변경에 사업비 '껑충'
회계방식이 현금주의에서 발생주의로 바뀌면서 사업비 처리에도 변화가 생겼다. 최대 7년에 나눠 비용으로 인식해 오다 계약 전(全) 기간으로 나눠 인식하게 된 것. 인식 기간이 길어지면 사업비 집행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생긴다. 2023년 보험사 사업비가 1년 만에 갑자기 14%(5조원)나 늘어난 배경이다. 생·손보 월간 통계 흐름으로 봤을 때 IFRS17 시행 2년차인 지난해에도 보험사들의 사업비는 전년 대비 크게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업비 증가액의 70% 이상은 CSM(보험계약마진) 확보를 위한 신규 보험계약 유치에 쓰였다. 단기납 종신보험 등 보험사들의 신계약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영업 현장에서는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설계사들은 수수료가 높게 책정된 상품 판매에 열을 올렸고, 이는 불완전판매 등 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설계사 유치 경쟁이 펼쳐지면서 잦은 이직, 계약 갈아타기 권유, 보험계약 유지율 저하, 소비자 신뢰 하락 등의 연쇄 반응이 일어났다. 회계제도 변경에 따른 사업비 증가가 불러일으킨 나비효과다.
2023년 1분기 보험사 실적발표는 IFRS17 시행 후 첫 발표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개별 보험사마다 단기 최대 이익을 추구한 결과 납득 불가능한 수준의 ‘어닝 서프라이즈’가 발생했다. 생보사의 경우 신용등급을 보유한 17개사 중 7개 회사의 1분기 순이익이 전년도 연간 순이익보다 많았다. 단기 성과주의에 매몰된 경영진이 CSM 확보를 위해 특정 상품 판매에 집중했고, 경험통계 부족을 내세우며 유치한 보험계약을 최적의 가정이 아닌, 최상의 가정으로 회계 처리한 결과였다.
■ 금융당국, 보험 사업비 과도한 증가에 '제동'
보험 영업 현장의 다양한 문제는 결국 보험사의 과도한 사업비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사업비 증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보험개발원의 보험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보험료 수입에서 사업비가 차지하는 비중(신계약 기준)이 가장 높은 보험사는 생명보험의 경우 DB생명(20.5%), 손해보험의 경우 메리츠화재(20.3%)였다.
생보사 중에선 DB생명에 이어 신한라이프(19.6%), 흥국생명(19.2%), 한화생명(17.4%) 등이 평균 이상을 기록했다. 업계 1위인 삼성생명은 11.9%를 나타냈다. 손보사의 경우 생보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차가 크지 않았다. 메리츠화재에 이어 롯데손해보험(20.0%), DB손해보험(19.5%), KB손해보험(18.9%), 흥국화재(18.9%), 한화손해보험(18.8%), 삼성화재(17.8%), 현대해상(16.9%) 등 대부분 17~20% 구간에 몰려있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보험금 지출 등 미래 가정을 최대한 낙관적으로 하면 사업비를 크게 늘릴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보험사들이 지난 2년 동안 그렇게 했다. 늘어난 사업비는 신계약 유치에 투입돼 불건전 경쟁 등 각종 부작용을 유발했다. 하지만 보험개혁회의에서 지난해 말 결산 시점부터 당국의 계리 가정 가이드라인 적용을 결정했다. 합리적 가정을 토대로 결산 집계가 완료되면 어느 보험사가 가장 공격적으로 사업비를 늘렸는지 파악이 가능해진다. 비정상적으로 늘렸던 보험사는 올해 대폭 사업비 감축이 불가피하고, 이는 영업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신회계제도 도입 이후 보험업계의 기존 문제점들이 증폭됐다.(자료=금융위원회)
■ 경영진 성과보수 합리화 방안 먹힐까
차분히 생각해 보면 현금주의든, 발생주의든 회계기준에 따라 보험사의 이익이 들쭉날쭉해질 이유가 없다. 보험계약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이익은 거의 고정값으로 정해져 있다. 계약 초기에 이익을 많이 잡으면 후기에는 적게 잡을 수밖에 없다. 떡이 7개 있는데 아침에 4개 먹었으면 저녁에는 3개만 먹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일부 보험사 경영진은 자신의 임기 중에 실적을 돋보이게 만들고 싶어 미래 발생할 이익을 현재로 당겼다. 문제는 떡을 4개만 먹는 게 아니라 5개, 6개까지 먹으려고 덤볐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열린 제6차 보험개혁회의에서 ‘경영진 성과보수 체계 합리화’ 방안이 나온 배경이다.
불건전 경쟁의 원천인 과도한 사업비의 경우 집행 현황을 상시 점검하는 방향으로 대책을 마련했다. 금융당국은 지난 1월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을 개정해 업무보고서 내 보험료, 보험금, 사업비 등을 포함하는 수지차 현황을 신설했다. 이에 따라 보험사들은 지난해 결산 보고서부터 보유계약과 신계약을 구분해 수입보험료와 발생 보험금 등을 보고해야 한다. 수입지출 현황을 세부적으로 미리 보고받으면 과당 경쟁 조짐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고 민원이 다량 접수되고서야 소비자경보를 발령하는 현행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금융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당국은 비합리적 사업비를 집행하는 보험사의 경우 직접 제재하는 방안도 상반기 중 마련하기로 했다. 법령 등 근거가 미비해 제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을 고치려는 취지다. 아울러 사업비 부과 수준에 대한 보험사 자체 심의 강화, 적정 사업비 부과 원칙 마련 등으로 소비자의 보험료 부담 완화를 유도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 관련 소비자경보가 발령될 때마다 보험설계사의 도덕적 해이가 부각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따지고 들어가 보면 사업비 과다 책정 등 원수보험사의 잘못도 상당하다”며 “설계사들의 영업 경쟁 뒤에 숨어서 책임을 미루는 행태가 바로잡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료=보험통계월보(2024년11월)
자료=보험통계월보(2024년11월)
지난해 5월부터 진행된 보험개혁회의가 마무리 수순이다. 금융당국은 마지막 7차 회의에서 미래 대비 방안을 논의한 후 상시개혁 체제로 전환할 방침이다. 그 동안 수많은 이슈가 쏟아져 나왔지만 사실 담당기자 본인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이가 이 정도인데 생업에 바쁜 소비자나 투자자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지난해 9월 진행한 [보험개혁 Why] 시리즈에 이어 [보험개혁 How] 시리즈를 통해 그 간극을 좁혀본다. -편집자 주-